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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백야기행] 모범 강소국의 다른 면: 헬싱키

Onepark 2013. 7. 16. 12:30

6월 26일(수) 저녁이 다 되어 우리나라에 '모범 강소국'으로 잘 알려진 핀란드 헬싱키에 도착했다.

핀란드는 노키아의 나라, 사우나와 자이리톨의 나라, 시벨리우스 "핀란디아"의 조국, 그리고 복지경제가 완성된 나라가 아닌가!

생전 처음 밟아보는 핀란드 땅이 신기할 정도였다. 심지어는 헬싱키 역앞에 늘어서 있는 자전거들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핀란드식 디자인이나, 심지어 홀리데이인 호텔에 투숙하였을 때 객실에 걸려 있는 캠벨 토마토 캔 포스터를 그린 팝아트는 그러한 기대와 어긋나지 않았다.

 

아직 해도 지지 않았고 8시를 갓 지난 시각이므로 우리 가족은 프런트 데스크에서 약간의 정보를 얻어 시내로 향했다. 호텔 앞 지하철 역에서 표를 끊고 무작정 도심으로 갔다.

헬싱키 역 한 정거장 앞 큰 쇼핑 몰에서 내렸는데 역시 광장에는 오가는 사람이 많았고, 광장 한편의 펍에서는 젊은이들이 왁자지껄하게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었다.

 

광장 한 켠에는 이상한 까만 아기 조형물이 앉아 있었다. 제목이 Angel-Demon #4 (2009)라 되어 있었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우연의 일치였다. 올 여름 헬싱키 현대 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전시회 홍보를 위해 엊그제 외국에서 빌려다가 이곳에 설치한 조각이 잠깐 스쳐 지나가던 우리 여행자의 눈에 띈 것이었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는 천사의 모습이지만 어깨에 박쥐날개가 있고 도마뱀 꼬리가 달려 있는 것은 악마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였다.  

 

6월 27일(목) 아침 우리는 헬싱키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저녁에는 스톡홀름 행 크루즈를 타야 했으므로 서둘러 체크아웃하였다. 여성 가이드가 첫 목적지인 원로원 광장으로 가면서 간략하게 핀란드의 정치경제 상황을 설명하였다.

항구의 대형 크레인 중의 몇 개는 한국의 STX 소유라고 하면서 핀란드 경제가 나빠지고 있어 총리가 경제외교를 하러 중남미를 방문하고 돌아왔다고 전했다. 

 

원로원(상원) 광장에 도착하여 맨 처음 한 일은 무료 화장실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관광객들의 일반적인 행동패턴이 1시간 정도 구경하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것이므로 도중에 낭패를 보지 않으려면 목적지에 도착하여 무료 화장실부터 이용할 필요가 있다. 이곳에서는 부두 어시장 앞 시청 화장실이 개방되어 있다고 했다.

 

언덕 위의 하얀색 루터 교회 앞 광장 중앙에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 차르 동상이 서 있었다. 말하자면 시청 앞 광장에 일왕의 동상이 서 있는 셈인데 핀란드 사람들은 알렉산드르 황제가 핀란드에 광범위한 자치를 허용하고 핀란드어까지 자유롭게 사용하게 해 주었으므로 전혀 적대감이 없다는 말이었다. 이를 입증하듯 동상 주변은 예쁜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계단을 올라 언덕위 루터 교회(Rutheran Church)로 갔다. 다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국민이 루터교 신자인데 교회은 부활절, 크리스마스 같은 때나 출석할 뿐이라 했다. 종교세를 납부하고 성직자는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는다고 했다. 기독교가 생활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와 같은 전도와 선교는 꿈도 꿀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랫동안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으니 러시아 정교회 성당도 있었다. 여느 정교회 건물과 내부구조가 똑 같았고 밖에 나오니 오늘 저녁 우리가 타고 갈 크루즈선이 부두에 정박해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핀란드에 온 지 20년이 넘은 여성 가이드는 핀란드에서의 생활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 따로 있으며, 겨울이 길고 실내에 거주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가족의 가치를 최고로 여긴다. 이웃이 까닭없이 잘 산다고 여기면 어김없이 사직당국에 고발장이 들어간다. 

소득에 대한 세금을 많이 내므로 스타팅 샐러리로 보면 전문직이나 단순 노무직이나 손에 쥐는 것은 비슷해 보여도 시간이 지날수록 전자는 직급이 올라가고 대부분 맞벌이를 하게 되므로 소득의 격차가 점차 벌어진다. 이를 반증하듯 아무리 평등사회라 해도 전문직 고소득층이 사는 아파트 단지와 중산층, 서민층이 사는 아파트 단지가 확연히 구별된다.

그 만큼 인건비가 비싸고 국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을 져주므로 어디 아프거나 실직을 하거나 걱정을 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시키는 일은 무엇이나 비싸서 옷은 세탁기로 돌릴 수 있는 것만 사 입게 마련이고, 교포의 입장에서 큰 일이 생기면 한국에 가서 해결하는 것을 상책으로 여긴다. 이웃과 소통이 별로 없으므로 긴긴 겨울에 자칫하면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가이드의 진솔한 경험담을 듣고 보니 보통의 한국 사람이라면 이곳에서는 내가 번 돈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뺏기는 게 아깝고, 인건비가 턱없이 비싼 것도 이해가 안 가고, 이웃 사람과 정을 나누기는 커녕 감시를 당하며 사는 것 같아 불편하고 남 보란 듯이 폼나게 살 수 없으니 너무나 답답할 것 같았다.

 

우리는 헬싱키의 명물 암석교회(Temppeliaukion Kirkko)를 찾아갔다.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던 중 큰 암반을 만났는데 아이디어를 공모한 결과 교회를 만들자는 제안이 채택되어 루터교회를 세웠다는 것이다. 암석을 그대로 노출시켰는데 음향 효과가 기가 막히게 좋아 종종 음악회도 열리고, 호기심 많은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는 교회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아이디어는 도심 철길을 체증이 없는 자전거도로로 개조한 것이나 도로 곳곳에 곡선형 방음벽을 설치해 놓은 것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해변가의 시벨리우스 기념공원은 고급 아파트 단지에 면해 있었다. 자그마한 숲 속에는 청둥오리 같은 새들이 노닐고 있었고 크루즈 선을 타고 온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인솔 하에 열을 지어 찾아왔다.

시벨리우스 공원에서는 파이프 오르간을 추상화한 금속 파이프 조각과 시벨리우스의 심각해 보이는 두상이 눈길을 끌었다. 파이프 오르간에서 금방이라도 그의 교향시 "핀란디아"가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전차 박물관에서 다시 한 번 화장실을 이용하고, 남는 시간 동안 벼룩시장을 구경했다. 잔뜩 구름으로 덮여 있는 바다를 바라보다가 유명한 실야라인 크루즈 선을 탈 준비를 하였다.

 

나로서는 처음 타보는 크루즈 선이 하나에서 열까지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선내 활동은 자유로운가? 식사는 어떠한가? 저녁마다 쇼가 열린다는데 볼 만한가? 면세점 상품은 품질이나 가격 면에서 믿을 수 있는가? 무엇보다도 2-3년 후에 큰 돈을 들여 카리브해나 지중해 크루즈를 이용해도 될까? 

 

5시 정각 헬싱키 항을 출항한 후 마치 탐험하듯이 선내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일찌감치 저녁 뷔페 식사를 마치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시사이드 선실이 인사이드 선실보다 비쌌지만 조그만 창으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발틱 바다 뿐이었다. 선실에서 잠깐 졸다가 밤 11시가 다 되어 갑판 위로 올라가니 그제서야 석양이 수평선 아래로 지고 있었다.

자정 무렵에는 5인조 밴드의 공연과 스칸디나비안 댄스 공연을 구경하였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밴드의 공연목록에도 들어 있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가운데 도중에서 우리와는 반대로 스톡홀름에서 헬싱키로 가는 바이킹 라인 크루즈 선과 조우(crossing)했다.

아침이 되어 선내에서 간단히 조식 뷔페를 마치고 얼마 안 있다가 9시 50분 심포니호를 하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