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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백야기행] 노르웨이의 자랑: 비겔란트

Onepark 2013. 7. 17. 17:30

 

7월 2일(화) 오늘도 8시에 오따 호텔을 출발하여 일로 오슬로로 향했다.

10가 넘도록 버스가 쉬지 않고 달리자 뒷자리에서 고속도로 휴게소가 어디 없느냐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한국만큼 고속도로 휴게소나 화장실이 잘 갖춰진 나라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릴리함메르를 지날 무렵에야 Marche 레스토랑이 있는 휴게소가 나타났다.

 

북해에서 나오는 원유 덕에 1인당 국민소득이 9만5천불에 달하는 노르웨이는 여행 다니면서 보았던 천혜의 관광자원은 물론 여러 면에서 인프라가 잘 갖춰진 나라라 할 수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붙어있는 관광안내지도 기호를 보아도 그러했다.

긴 겨울에 대비하여 목초를 갈무리하는 것은 기본이고 전력, 도로, 철도는 물론 오페라하우스, 요트 마리나 같은 문화체육시설, 쓰레기 분류 시스템, 환경친화형 버스 운행 심지어는 도심 가로변의 자전거 거치대까지 시민들에게 불편이 없어야  한다. 길거리에서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주부가 그 기준이라고 생각되었다. 

 

오후에 코펜하겐 가는 크루즈 선을 타기에 앞서 한식을 먹어야 한다. 김신희 가이드가 안내하여 도심에서 가까운 타이완 사람이 경영하는 동양음식점 후지(Fuji)에 갔다. 그리고 모처럼 된장찌개를 배불리 먹었다. 역시 한국 사람은 김치나 된장찌개를 먹어야 힘이 나는 모양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오슬로의 자랑거리 비겔란트(Vigeland) 조각공원을 찾아 갔다.

무명의 젊은 조각가 비겔란트가 오슬로 시청에 조각공원 설립을 제안했을 때 시에서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러나 비겔란트의 재능을 눈여겨 보았던 신문기자가 그 경위를 상세히 보도하는 바람에 오슬로 시는 그와 계약을 맺고 그가 요구하는 대로 도심 한쪽에 공원을 만들어 주었다.

그의 조각공원은 디즈니랜드가 아니라 비겔란트이다. 조각상을 보면서 걷노라면 인간의 희로애락과 남녀노소가 운명에 맞서는 자세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보여준다.

 

비겔란트가 암석 하나로 되어 있는 원통 속에 담고자 했던 인간 군상은 무엇일까 돌아가며 아래서 위로 시선이 닿는 데까지 관찰하였다. 수많은 남녀노소가 서로 포개어져 있었는데 아래 쪽 등을 돌리고 있는 남자의 모습에서 현재의 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비겔란트 공원 관람을 마친 우리는 오슬로 관광을 마무리하기 위해 시청사에서 일을 보고 칼 요한슨 거리로 향했다. 국립극장 앞에는 노르웨이의 문호 입센 동상이 서 있었다. 그 건너편에는 국립 오슬로 대학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현재 리노베이션 공사 중이었다.

칼 요한슨 거리는 가로 공원의 분수가 시원하게 물줄기를 내뿜는 등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었다.

때마침 한 차례 소낙비가 지나갔다. 그러나 하늘은 푸르게 개어 있었다.

 

우리는 김신희 가이드와 작별하고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가는 DFDS Seaways 크루즈 선에 올랐다.

스톡홀름 갈 때 탔던 Silja Line 심포니호보다는 작았고 선실도 창이 없는 인사이드로 배정 받았는데 오히려 심포니호보다 공간이 널찍하고 사용하기에 편리했다.

출항할 때쯤 상부 갑판 위에 올라가니 중국 단체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데 사람마다 카메라를 내놓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점을 불편하게 여긴다면 한 사람이 잘 찍어서 그대로 공유하는 WiFi 카메라를 사면 된다. 

갈매기 한 마리가 우리를 환송하듯 (먹이를 받아 먹으려는 것이었지만) 뱃전에 날아와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뷔페식 저녁식사를 마치고 이번 여행기간 동안 좋은 이야기를 해주셨던 광주의 노 교수님, 중견기업을 경영하시는 김송백 회장님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것을 "우연히 만난 동반여행자"(accidental tourist)라 하지만 앞으로도 좋은 인연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기원하였다.

그리고 밤이 깊어갔고 백야의 태양이 수평선 아래로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