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수) 드디어 [북유럽 백야기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덴마크 코펜하겐 항에 당도했다. 오늘 저녁 파리에서 대한항공편으로 갈아타고 12일만에 귀국하는 것이다.
매우 익숙하게 짐을 꾸려 출구 앞 시웨이즈 5층 데크에 모여 있다가 차례로 하선하였다.
DFDS 터미널 밖에는 현지 여성 가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코펜하겐에서의 한나절을 같이 보낼 버스에 탑승하고 첫 번째로 코펜하겐의 상징물 인어공주(Little Mermaid)를 찾아갔다.
안데르센(현지 발음으로는 아네르센)의 동화 이야기 하나가 이렇게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것이었지만, 그 조각 건립비용을 덴마크의 맥주회사 칼스버그가 댔다는 것이 이채로왔다. 엊그제 비겔란트에서 수많은 조각상을 보고 왔기에 당시의 인기 발레리나를 모델로 하였다는 등신대의 인어 조각상은 조금 시시해 보였다.
우리는 각자 독사진, 가족사진도 찍고, 영철이는 이번 여행기간 내내 한 방을 썼던 정광진 인솔자와 한 컷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늘 오후 정 인솔자는 매우 혼잡한 코펜하겐 공항에서 한 몫 단단히 해주었다.
우리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시내 관광을 계속했다.
"덴마크는 자전거가 상용화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덴마크 국민들은 헬스장이 아닌 시내에서 늘 운동을 하므로 건강합니다. 어느 길이나 자전거 전용도로가 따로 있고, 언덕이 없이 평탄하여 자전거 유모차도 돌아다니는 자전거의 낙원이랍니다. 고급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도 고급승용차 말고도 자전거가 여러 대 있지요. 길거리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대기업 사장님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코펜하겐 부두 옆 국세청 청사 맞은 편에 있는 덴마크 건국신화를 묘사한 황소 분수대를 찾아갔다.
덴마크의 조상 게피온(Gefion) 여신은 스웨덴 왕이 황소로 갈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주겠다는 말에 자기의 4아들을 황소로 만들어 밭을 갈았다고 한다. 그래서 얻은 땅이 덴마크에서 가장 크고 왕궁이 들어선 셸렌 섬이 되었다는 것이다. 덴마크 사람의 국민성은 바로 저 여신의 결연한 표정과 닮아 있었다.
이러한 국민의 심성 때문인지 덴마크 국왕의 동상도 매우 겸손한 자세로 서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왕궁 앞 광장에 가서 보니 국왕은 상징적인 존재이고 국민과 거리감이 없어 보였다.
근위병도 드문드문 한 명씩 지키고 서 있었으며 어떤 권위나 위압적인 인상이 전혀 없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덴마크 디자인도 결국은 자연의 모습에서 유래하지 않은가 생각되었다.
곳곳에 가꿔놓은 정원의 화단에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화초가 잘 가꿔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작은 나라에서는 세계를 뒤흔든 사상과 사조가 여럿 탄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린이를 존중하여 동화집을 만든 안델센, 4H운동을 창도한 그룬트비히 목사, 조림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몸소 실천한 달가스 대령, 실존주의 철학을 발전시킨 키에르 케고르, 양자역학의 기초를 세우고 현대물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닐스 보어 등 여럿이었다.
이러한 사상적 기초는 코펜하겐 대학에서 다져졌다고 한다. 1922냔 노벨상을 받은 닐스 보어는 이 대학 교수로서 칼스버그 재단의 후원을 얻어 이론물리학연구소를 세우고 나치 독일을 탈출한 과학자들을 영입했다. 전에 서울대 유달영 교수가 덴마크 체조, 덴마크식 건강법을 널리 알렸었는데 지금 우리나라에는 덴마크 전문가가 별로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덴마크 사상의 뿌리는 중상주의 실용주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코펜하겐의 도시 이름부터가 "상인들의 항구"라는 뜻이니 말이다. 대형 선박이 해상물동량의 대부분을 처리하는 오늘날 코펜하겐 항은 소형 유람선이 뜨는 관광명소일 뿐이지만 옛날 이곳에서 대서양과 발틱해를 오가는 해상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덴마크의 교육제도는 학생들에게 경쟁이 아니라 질서와 배려, 상호협력을 중점적으로 가르친다고 한다. 장수국가인 이 나라에도 노인인구가 많은데 9시부터 5시까지는 나들이를 삼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젊은이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한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어른을 존경하고 좌석을 양보하라고 호통치지 아니하고 세대간 배려심을 엿볼 수 있는 사례가 아닐 수 없었다.
이 나라에서도 국민들이 세금을 많이 내지만, 부자나 기업은 돈을 벌어 기부 봉사를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맥주를 만들어 파는 칼스버그 같은 기업도 이러한 점에서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덴마크 젊은이들이 가치 있는 단어라고 꼽은 것은 "정직, 관대, 가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어린이가 대우를 받으며, 이 같은 자산을 물려준 자기네 조상이 '장사하는 뱃사람'이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국 교포가 통틀어 70여 명에 불과한 이 나라에서 한국에서 입양된 사람은 9천명이 넘고 벌써 정치인, 학자, 변호사, 의사가 많이 배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덴마크의 명물은 400개의 중소기업이 전세계를 상대로 제조판매하는 기막힌 상품들이라고 한다. 이를 테면 호밀 씨눈에서 배양한 효소로 만든 코엔자임Q, 블루베리에서 추출한 건강보조식품도 인기였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선물가게에서 몇 가지 선물을 마련한 우리 일행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가장 번화한 광장 한 켠의 하이쿠 일식당으로 갔다. 그리고 식후에 주변을 산책하면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광장 한 구석의 지방법원 건물이 그 위용을 자랑하였다. 단스크 은행 건물 앞의 설치물은 무엇인가 가서 보니 남성용 화장실이었다. 암스텔담의 가로변에 서서 용변 보는 변기보다는 나았다.
번화가에서 과일과 꽃을 파는 노점상도 당당히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 나라에서는 패스트푸드나 담배에 세금이 중과되는 반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과일은 아예 세금이 없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정부가 매우 "스마트하게" 국민들의 건강생활을 유도하고 있었다.
낙농국가인 덴마크의 시골로 가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렇지만 이 나라에서는 건실한 중소기업, 중견기업이 많고 건강과 환경을 우선시 하는 경영이념을 갖고 있다고 했다.
가이드는 굴뚝이 있는 공장은 쓰레기 처리장이며 인접국에서 받아다 돈 받고 처리해준다고 설명하였다.
아쉽기는 하지만 주마간산 격으로 아주 모범적인 강소국 덴마크 관광을 마치고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코펜하겐 공항으로 이동했다.
코펜하겐 공항 구내는 매우 혼잡하였다. 신속하게 체크인을 하기 위해서는 장사진을 이룬 카운터 대신 자동화된 키오스크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했다. 정광진 인솔자가 키오스크에 예약번호를 입력하여 우리 대신 발권을 해주었다. 짐은 인천 공항에서 찾을 수 있도록 그룹으로 부쳤다.
유럽내 단거리 노선이므로 에어로브리지 대신 버스를 타고 주기장으로 이동하여 MD80/81기의 꽁무니로 탑승하였다. SAS 기내에서는 생수를 제외한 음료수, 맥주, 포도주, 샌드위치 뭐든지 다 유료였다.
약 2시간 반만에 파리 드골(CDG) 공항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정신 없이 2E 터미널을 이동하였다. 오랜만에 와 본 파리 공항의 신청사는 매우 넓어졌고 건물의 내외벽이 나무 무늬를 하여 색다르게 보였으며, 터미널 사이는 지하철도로 이동해야 했다.
처음 와 보는 나 같은 여행객에게 드골 공항의 신청사는 휑 하게 크기만 하고 별로 아기자기하지 못했다. 외벽이나 천정은 긴 나무조각을 이어붙인 듯한 디자인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출국수속을 밟고 나서야 비로소 면세점(DFS)에서 아이 쇼핑을 할 여유를 되찾았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 대한항공 여객기가 기다리고 있는 게이트 앞으로 갔다. 이미 러시아와 북유럽 5개국에서의 백야기행을 완료하고 벌써 마음은 서울에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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