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7일부터 호치민(구 사이공)시에서 열린 증권법학회 해외 학술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베트남에 다녀왔다.
주말을 이용한 짧은 일정이었지만, 최근 들어 우리와 훨씬 가까와진 나라 베트남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 질문에 답을 해보자.
o 베트남은 아직도 월남전의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o 월남전에 파병했던 우리나라는 관계개선을 위해 베트남에 사과해야 한다?
o 수많은 베트남 신부가 우리나라에 시집을 왔으니 베트남은 '사돈'의 나라이다?
o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경제교류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국에 훨씬 못 미친다?
o 도시마다 넘치는 오토바이의 물결을 보면 베트남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승용차보다 더 좋아한다?
현지에 가 보니 위의 질문에 대한 정답은 모두 "아니오"였다.
우리는 "베트남전"하면 B-52 전략폭격기의 폭탄 세계, 베트콩과 땅굴, 고엽제(Agent Orange)가 생각나지만 사이공 북쪽 교외지역의 구찌터널에서나 전쟁의 상흔을 엿볼 수 있을까 호치민 시내는 곳곳에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경제가 좋아지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베트콩은 땅굴에 숨어지내며 엄청난 물량을 앞세운 미군의 후방을 교란하여 결국 호치민과 지압 장군이 이끄는 북베트남군은 마침내 미군을 몰아내고 사이공에 입성하였다.
그네들로서는 디엔비엔푸에서 막강한 프랑스 군대를 물리친 데 이어 세계 최강의 미국 군대까지 굴복시킨 완벽한 승리였다.
그러니 한국군이 파병되어 싸운 것은 그 중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마음의 여유가 있기에 호치민 - 옛 사이공 시에는 프랑스의 건축문화가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위의 사진은 차례로 프랑스 식민시대에 세워진 노트르담 성당과 프랑스 총독부 청사, 그리고 중앙우체국의 내부이다.
중국인들도 베트남에 많이 정착하여 중국풍 건물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인접한 중국과는 영토분쟁을 겪었기에 별로 사이가 좋지 않고 공산당 정부에서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서방자본을 더 선호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가장 볼썽 사나운 것은 공산당 집권 후에 일률적인 사이즈로 축조된 전면이 좁고 길다란 건물들이었다.
월남전이 끝난 지 오래이고 지금은 "도이모이" 개방정책 하에 경제협력이 중요한 만큼 우리는 베트남에 미안해 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했다.
호치민 시의 랜드마크 빌딩의 고층부는 현지 건설회사와 협력하여 한국의 현대건설이 완공했다고 한다.
도심 곳곳에 서 있는 동상에서 볼 수 있듯이 베트남 사람들은 매우 자부심이 강해 보였다.
도심 번화가에는 쇼핑객들과 외국 관광객들이 많았다.
아직은 구정연휴기간이라 거리가 한산하다고 했음에도 오토바이의 물결로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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