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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탐방] 베트남에 대한 새로운 관점

Onepark 2014. 2. 15. 23:05

 

2월 7일 우리 증권법학회 회원들은 호치민(구 사이공)에 도착했다.

곧바로 호치민 증권거래소(HOSE)를 방문하여 체제전환국에서 자본시장이 어떻게 정착되고 있는지 현지 거래소 직원으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개혁개방 직후 준비기간을 거쳐  2000년 7월에 처음 개장하였으며, 2009년부터는 우리나라의 지원을 받아 한국식 온라인 증권거래 시스템을 도입하였다고 한다. 

호치민 거래소에서는 일반기업과 펀드 등 380여개 종목이 상장되어 거래되고 있고, 하노이 증권거래소에서는 중소기업, 벤처기업 종목이 거래되고 있는데 양 거래소를 통합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설명도 있었다.

거래소 현관 앞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듯이 곰(약세장)을 황소(강세장)가 쓰러뜨리는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증권시장을 이끄는 경제의 활력은 시민들의 잘 살려는 의지와 활기찬 시장거래활동에서 나오는 것이다. 

 

베트남의 구정 연휴기간과 겹친 이번 여행에서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인적 교류가 매우 활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항공기의 좌석도 거의 만석이었지만, 친정/처가에 다녀오는 다문화 가정이 많았다.

시골의 어려운 가정에서 "효녀 심청"이 가족 생계를 위해 한국인과 국제결혼을 하는 일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이 베트남 사회의 주류는 아닌 데다 최근 들어 베트남 신부가 한국에 가서 학대 받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국이 결혼해서 살기 좋은 나라라는 이미지는 아직 한류 드라마 속에 그쳐 있는 것 같았다.

2월 9일 마지막 날 우리 일행이 저녁식사를 했던 사이공 항구의 유람선에는 한국인 사위/사돈을 맞은 베트남 가족들의 테이블이 여럿 보였다. 또 인천공항에 도착한 항공기에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태우고 온 수많은 유모차가 함께 실려온 것을 보았다.

 

배 위에서 쇼를 보면서 저녁식사를 했다. 정말 우리 민족은 노래와 춤에 능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선상 쇼에서도 한국인의 참여가 있어야 노래와 춤이 아연 활기를 띠었다. 아니 한국 사람들에 의한 한국 노래와 춤이 판을 휩쓸었다. 여기에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추가가 되니 사이공의 밤 분위기가 후꾼 달아 올랐다.

 

들째날과 셋째날의 일정은 관광으로 채워졌다.

2월 8일 오전 우리는 배를 타고 메콩 델타의 미토섬을 찾아갔다. 메콩강은 인도차이나의 여러 나라를 구비구비 돌아 베트남에는 아주 너른 곡창지대를 선사하였다. 우리가 배를 타고 가는데 햇볕이 뜨거워 베트남식 원뿔형 갓을 사서 써야 했다.  

미토섬의 농장에서 우리 일행은 벌꿀차 대접을 받은 후 메콩강에서 잡은 도미 모양의 생선구이를 쌈을 싸먹는 점심식사를 했다.

현지인들의 합창 메들리를 들으며 냄새는 고약하지만 맛 좋은 두리안도 먹고 휴가 기분을 만끽했다.

그리고 조각배를 타고 수초지대를 통과하는 뱃놀이를 즐긴 후 앞뒤의 노잡이에게 1달러씩 사례했다.

 

호치민 시내에 들어올 때 신흥 부유층이 많이 산다는 푸미흥 신도시를 방문했다.

한국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어 곳곳에 한국어로 된 간판이 눈에 띄었다. 한국 건설업체가 조성한 단지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얼핏 보면 서울 교외의 신도시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베트남에서 한국 기업의 위상은 매우 커 보였다.

일례로 삼성전자가 이곳에 휴대폰 조립공장을 두고 있는데 여기서 생산한 휴대폰 수출액이 베트남 총 수출액의 4분의 1이 넘는다고 한다.

베트남은 ASEAN의 중심국가인 데다 우리와 같은 유교 전통을 갖고 있고 국민들의 교육열이 높아 양국간에 국제협력을 강화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되었다.

우리 일행은 심야 귀국편 항공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밤거리를 쌍쌍이 타고가는 오토바이 행렬이 베트남의 앞날을 보여주는 듯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전거를 타던 사람들이 이제는 누구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처럼 이들의 소득수준이 놀라가면 승용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것은 탄손누트 공항청사 밖에서 가족과 친지를 배웅하러 온 많은 인파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기차역에 가서 멀리 떠나는 꿈을 꾸었던 것처럼 그들도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고대하는 해외여행을 하고 외국으로 일하러 가는 날이 올 것임에 틀림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