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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탐방] 상하이 역사기행

Onepark 2014. 3. 25. 09:26

 

상하이는 인구가 24백만 명이 넘는 세계 최대의 도시이지만, 150년 전만 하더라도 조그마한 어촌에 불과하였다.

발전의 계기는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이 이곳에 조차지(Concession)를 얻고 황포강변에 제방(Bund)을 쌓아 유럽풍의 도시를 건설하면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상하이는 홍콩과 함께 중국의 물자가 세계로 들고나는 무역항과 금융센터로 발전하게 되었다.

20세기 전반 상하이 조계는 일종의 해방구였다. 일본 강점기 하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프랑스 조계에 청사를 마련하였고, 1930년대에는 러시아와 유럽의 유태인들이 소련과 독일 나치의 박해를 피해 대거 이주하였다.

당시 상하이에 거주하는 유럽인의 인구는 거의 10만 명에 육박하였다고 한다.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 있었던 임시정부 청사를 돌아보았다. 백범 김구 선생의 체취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서 윤봉길 의사 등 애국청년들이 기거하였다는 한인 애국단 숙소도 찾아가 보았다.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곳이라 보존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시급해 보였다.

   이곳은 서민들 거주지역이라 거리에 빨래 건조대가 즐비하였다.

 

 

   내친 김에 지하철 10호선을 타고 일본 강점기에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자들의 묘소가 있는 외국인 묘지 송원(宋園)을 찾아갔다. 지금은 한국으로 이장하였지만 역사가 박은식 선생도 이곳에 묻혀 있었다.

   마침 이곳에는 쑨원(孫文)의 부인이자 장제스(蔣介石)의 처형인 송경령 묘소가 있는 곳이어서 단장이 잘 되어 있었다. 중국이 공산화된 후에도 중국을 떠나지 않았기에 이렇게 추앙을 받고 있었다.

 

 

 

오늘날 상하이는 세계적인 대도시에 걸맞게 양쯔강 이남의 문화유물을 수집 전시하는 박물관으로도 유명하다.

층별로 주제를 정하여 선사시대의 토기와 철기 유물로부터 도자기와 서화, 옥공예품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전시되고 있어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유유안(豫園)은 휴일 관광객들로 초만원이었다.

옛날 어느 부자가 효성이 극진하여 어머니를 위해 아기자기한 건물과 연못, 조각을 만들어 놓고 살았다고 한다.

지붕만 쳐다보아도 삼국지, 서유기 같은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올 것 같았다.

꽃나무 한그루에도 그의 효심이 서려 있는 것 같다. 해태 석상은 애교를 부리기까지 하였다.

 

중정에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공연을 위한 무대도 있었는데 그 천장은 음행을 증폭시킬 수 있는 둥근 구조로 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다시 2014년의 상하이로 돌아왔다.

지하철 10호선을 타고 롱바이신춘(龍溪新村)역에 내리면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한인타운에 이른다.

그곳에는 한글 간판을 내건 한국인 업소가 즐비하였는데, 북한식당 선봉관도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소개된 뒤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는 치맥 전문점 앞에 중국젊은이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하이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 일행은 푸동지구에 있는 쇼핑몰의 식당가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비록 2박 3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타임라인 상으로는 1천년 이상은 오간 것 같았다.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워 우리를 대접해 준 박기동 선생(상하이 연수 중)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다.

숙소에서 짐을 챙긴 후 휴일 오후의 차량들로 붐비는 고가도로를 거쳐 홍차오 공항으로 갔다.

상하이 갈 때는 인천공항에서 푸동 공항으로 갔지만 귀국할 때는 시내 가까운 김포공항에 내릴 수 있으니 훨씬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