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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윤석철 지음 「삶의 정도」를 읽다

Onepark 2011. 3. 10. 10:04

독서의 즐거움은 누군가의 지적 체험을 공유하고 자기 것으로 삼는 데 있다.

하물며 저자가 10년에 한 번씩 발표하는 노작(勞作)을 은퇴(교수정년) 기념으로 내놓은 것이라면 꼭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윤석철 서울대 경영대 명예교수의 [삶의 정도](위즈덤하우스 2011)는 그 이상이었다.

 

사냥하는 매의 지혜와 사이클로이드 곡선

 

"윤석철 교수" 하면 1981년에 출간된 [경영학적 사고의 틀]에서 처음 접하였던 물리학의 개념 '사이클로이드 곡선'이 생각난다.

저자는 30년 만에 내놓으신 이 책에서도 사이클로이드 곡선이야 말로 "삶의 정도"라고 강조한다. 바로 우리의 인생이 오랜 기간 비축한 에너지를 순식간에 발산하여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것을 사이클로이드 곡선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매가 먹이를 사냥할 때의 모습과 흡사하다. 매가 먹이를 발견하면 일단 수직 방향으로 낙하하여 중력가속도를 받아 속도를 높인다. 이렇게 운동 에너지를 최대화하여 가장 빠른 속도로 사냥감을 낚아채는 것이다. 이러한 매의 지혜는 오늘날 공군 전투기 사이의 공중전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한다.

 

사이클로이드(cycloid) 곡선이란 동그란 굴렁쇠 상의 한 점에 표지를 만들어 놓고 굴렁쇠를 직선 위에서 굴릴 때 이 표지가 움직이면서 그려내는 곡선을 말한다. 3차원 공간에서 높이가 다른 두 점을 최소 시간에 이동하는 경로는, 물리학자들의 실험결과를 통해서도 입증된 바와 같이, 직선이 아니라 사이클로이드 곡선이다. 왜 그럴까?

 

직선 위에서는 어느 점에서나 기울기가 같으므로 처음 정지 상태에 있던 물체가 중력에 의해 가속되면서 속도가 커진다. 목표점에 도달할 때 최대 속도가 되지만 그 시점에서 운동이 종료되므로 축적된 운동에너지는 활용되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된다. 그러나 사이클로이드 곡선 위에서는 그 위치에 따라 기울기가 다르다. 기울기가 급한 부분에서 중력가속도를 효율적으로 많이 받아 속도를 증가시키면서 그것을 운동에너지로 축적한다. 그리고 기울기가 완만해지는 부분에서 축적된 운동에너지를 발산하므로 목표점에서 최대 속도가 되는 것이다. (262∼263쪽에서 간추림)

 

처음에는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도 역량을 비축하였다가 목표를 더 빨리 달성하는 것이 그 비결인 셈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늘 학생들을 상대해야 하는 필자는 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 책은 시종 스토리텔링으로 저자의 사상과 신념을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토리텔링과 문제중심의 학습법

 

이 책에서는 수많은 사례와 스토리텔링에 바탕을 둔 문제중심의 학습법(Problem-based Learning)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윤석철 교수는 자기가 무슨 계기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으며 독문학에서 물리학 다시 경영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는지 옛날이야기처럼 술회하고 있다. 노학자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아니라, 마치 삽화가 들어 있는 소설책을 읽는 것 같았다.

 

온 국민이 끼니를 잇지 못하고 고생하던 시절, 충남 공주군 탄천면 어느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할아버지 손님이 찾아오자 옆집에 가서 쌀을 꾸어다 밥을 지어 대접하고 밥이 남으면 손자를 준다고 했다. 밥공기를 비우고 떠난 손님 때문에 기대가 어긋나서 우는 손자를 업고 그 집 할머니가 밥을 먹고살 만한 어느 집을 찾아가서는 아무 말 없이 그 집 마당을 쓸어주었다. 눈치를 챈 그 집 안주인은 열 식구 밥에서 조금씩 덜어내어 밥 한 그릇을 만들어(十匙一飯) 주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그 집 소년은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했다.그 소년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에도 ‘보릿고개’ 가난은 계속되었으나 서독제 약병이 정교하고 예쁘게 만들어진 것을 보고 그는 독일로 유학을 갈 결심을 단단히 하고 독일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독일 소설책을 읽으면서 매일 저녁마다 노을이 잘 보이는 언덕에 올라갔다. 소년은 서쪽 하늘을 보면서 상쾌한 아침을 맞고 있을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상상했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저녁노을을 비추는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조서현(照西峴)’이라 지었다.  (16∼18쪽에서 간추림)

 

조서현은 ‘가난 퇴치’라는 목적함수를 달성하기 위해 ‘라인 강의 기적’을 배우려고 서울대 독어독문과를 선택했다. 비트겐슈타인의 <파리통 철학>을 배우는 기쁨도 누렸다. 파리통 밑의 음식을 탐하다가 위로 날아올라 결국 투명한 유리통 안에 갇히고 마는 파리들을 관찰하면서 소년 비트겐슈타인은 전지전능하신 절대자의 눈에 비친 인간의 모습도 파리통 속의 파리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나의 언어의 한계가 나의 세계의 한계다”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언어철학을 전개하였다.  (37쪽)

 

파리통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던 청년 조소현은 물적 수단매체를 개발하려면 자연과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고민에 빠졌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과학기술의 힘이 경제력을 낳았고, 경제력이 군사력을 나았다는 깨달음 속에 물리학으로 전과하였다.  (83∼84쪽에서 간추림)

 

한국전쟁 이후 전 세계는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나뉘어 냉전 체제로 대치했고, 1960년대에 이르자 양 진영은 대륙간 탄도유도탄(ICBM), 인공위성 같은 고도의 군사무기를 개발하기 위해서 대학 물리학과에 막대한 연구비를 쏟아 부었다. 그리고 이들 연구실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물리학 분야의 대학원생들이 대거 필요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 동안 공부에만 전념해 온 조서현에게 미국의 일류 대학(U. Penn.)에서 전액 장학금을 주겠으니 유학 오라는 입학통지서가 날아들었다. 국민소득 100달러 미만의 가난 속에서 미국 유학이라는, ‘별을 동경하는 불나방’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190∼191쪽)

 

이 대목을 읽으면서 필자 역시 장래 진로문제로 고민을 하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1. 조소현은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가?

2. 어떤 계기로 결심한 것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3. 조소현이 생각하는 수단매체란 무엇이었는가? 학생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적 수단매체를 무엇이라고 보는가?

 

윤석철교수는 라과디아 뉴욕시장(1934∼1945)의 판사 시절 에피소드를 통해 현정부의 통일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위와 같은 문제중심의 학습법으로 생각해 보자.

 

미국에서 한 노인이 빵을 훔쳐 먹다가 잡혀서 뉴욕의 치안판사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노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사흘을 굶었더니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고 말했다. 판사는 이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빵을 훔친 절도 행위는 벌금 10달러에 해당됩니다”라고 방망이를 두드렸다.그런데 판사가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더니, “그 벌금은 내가 내겠습니다. 그동안 내가 좋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죄에 대한 나 스스로의 벌금입니다” 하면서 벌금을 대신 내주었다. 판사는 이어 “이 노인은 법정을 나가면 또다시 빵을 훔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방청객 중에서 그동안 좋은 음식 드신 분은 조금씩이라도 돈을 기부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에 감동을 받은 방청객들이 호주머니를 털어 모두 47달러(1920년대 당시)를 모아줬다.  (43∼44쪽)

 

4. 만약 라과디아 판사가 ‘가난한 노인 돕기’ 같은 표현을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노인과 방청객의 입장에서 이야기해보시오.

5. 북한 당국에 남측이 제안하는 대로 하면 “북한의 국민소득을 3천 달러까지 올려주겠다”는 공약은 무엇이 어떻게 거슬리는가?

6. 북한 주민이 굶주리는 것을 알면서도 “북한 측에서 요청하지 않는 한 식량 지원을 않겠다”는 고위 공직자의 발언을 라과디아 식으로 고쳐 말한다면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파나마 운하 건설을 둘러싸고 프랑스는 실패한 반면 미국이 성공하게 된 비결이나 2010년 하반기 전세계를 가슴 졸이게 만들었던 칠레 광산의 매몰된 광부 구출 사례도 이와 같은 문제풀이 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프랑스가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의 굴착을 시작한 1880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열대성 전염병 말라리아가 퍼지면서 건설 인력이 수없이 죽어갔다. 그러나 당시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매개체가 개미인줄 알고 개미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애썼다. 10년의 건설기간 동안 공사는 10분의 1도 진척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력 손실이 증가하자 프랑스 건설팀은 공사를 포기하고 철수했다.그 뒤 말라리아는 개미가 아니라 모기가 옮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미국 정부가 군사적 필요에 따라 1904년 파나마 운하 공사를 떠맡았다. 모기는 물속에 알을 낳아 번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국 팀은 모기를 박멸하기 위해 그 지역의 모든 물웅덩이에 기름을 뿌렸다. 그리고 파나마 지역의 지형적 특성을 고려하여 해수면 높이의 운하를 포기하고, 갑문을 여닫는 방식으로 수면의 높이를 통제하는 개념의 운하를 건설했다. (28∼29쪽)

 

2010년 8월 칠레 산호세 광산이 붕괴했을 때, 칠레 정부는 매몰된 광부들을 크리스마스에나 구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고, 이것은 광부들에게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그래서 ‘구출 시간 최소화’를 목적함수로 하였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매체로서 드릴(drill) 공법만이 아닌 망치(hammer) 공법이 채택되었다. 그 결과 구출시간이 두 달 이상 단축되었고 매몰 광부 모두가 구출되었다. 코스트 절감 같은 복잡한 문제는 제거되고, ‘단순화’된 목적함수와 그에 필요한 수단매체라는 이진법적 구조로 문제가 간결화되면서 인명 구조가 성공한 것이다.  (서문 2)

 

7. 1880년대에는 말라리아의 발병원인을 몰라 개미를 퇴치하기 위해 침대 밑에 물 대야를 놓은 것이 오히려 화를 불렀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자.

8. 파나마 운하 공사를 실패에서 성공으로 바꾼 전기는 무엇과 무엇이었는가?

9. 일반적인 광산 붕괴 사고와 칠레 광산 사고를 비교하여 구조작업의 목적함수를 달리 한 것이 실제 구조작업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10. 이진법적 구조가 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시오.

 

삶의 간결화와 상생을 위한 노력

 

이 책에서 윤석철 교수는 우리의 삶이 단순 간결(simplicity)해져야 한다고 설파한다. 요즘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의 머릿속 생각이 복잡해지고, 욕망과 가치관이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기업도 조직이 복잡해지면 경영 이념과 목표가 혼란에 빠지고, 의사결정의 기준도 모호해진다. 문자(letters)의 역사를 보면, 6천 자가 넘는 쐐기문자와 상형문자들의 복잡한 체계가 (한글처럼) 20 내지 30개의 글자로 간결화하면서 문명개화의 가속화가 시작되었다. 숫자도 마찬가지이다. 10개의 숫자를 사용하는 십진법 대신 2개의 숫자만을 사용하는 이진법의 간결성 덕분에 디지털 컴퓨터가 탄생했다.

 

‘0’과 ‘1’이라는 2개의 숫자만으로 모든 숫자를 다 표현할 수 있는 이진법의 위력에서 영감(inspiration)을 얻은 필자는 (이진법처럼) 2개의 요소(elements)만으로 삶의 복잡한 세계를 분석하고, 삶에 필요한 모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목적함수와 수단매체라는 방법론을 연구했다. (서문 1쪽)

 

그는 대표적인 인물로 관자(管子)를 들었다. 관자는 제자백가와 군웅이 할거하던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 자기의 주군인 환공을 천하의 패자로 만들려는 목적함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매체로서 경쟁자(군주)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보통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이 복잡해 보인다. 그러나 관자와 같은 현인은 전국 시대 같은 복잡한 세상을 목적함수와 수단매체로 단순하게 파악하는 능력을 가졌던 것이다.

 

윤석철 교수는 무슨 일을 이룩하려면 영국의 시인 쉘리가 말한 “별을 동경하는 불나방(The desire of the moth for the star)”처럼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궁핍한 국가재정 속에서도 원자력산업의 기초를 놓은 이승만 대통령, 울산의 허허벌판 백사장에 현대조선소를 건설한 정주영 회장이나 반도체 산업의 불모지에 반도체 공장을 세운 이병철 회장은 “영락없이 별을 동경하는 불나방 같았다”며 여러 일화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1956년 미국과 원자력 협정을 맺고, 원자력을 사용하여 발전된 미래를 구상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41달러 정도로서, 한국민 대다수가 미국의 잉여 농산물 원조를 받아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1959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큰돈인 35만 달러를 들여서 교육용 원자로를 들여왔다. 1956년 4월 한국의 젊은 물리학자들이 국비유학으로 1인당 학비가 6천 달러에 달했던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에 파견되었다. 어느 장관이 “이렇게 원자력에 투자하면 언제 원자력 발전이 가능해집니까?”하고 묻자 이 대통령은 “내가 듣기로는 20년 뒤쯤으로 알고 있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 이미 80세를 넘긴 노 대통령은 자신의 생애를 추월한 20년 뒤의 한국을 위해 적극적 기다림을 펼친 것이다. 그가 육성한 원자력 인력들은 그의 사후 한국형 원자로 모델까지 개발하며 한국을 세계 원자력 경쟁의 선두 계열에 서게 하였다.  (66∼67쪽)

 

별을 동경하는 불나방은 삼성전자의 역사 속에도 존재했다. 삼성전자에게 1983년 9월 12일은 ‘암울한 날’로 기록되어 있다. 그날 기흥에서는 암울한 분위기 속에 삼성반도체의 첫 생산라인의 기공식을 올렸다. 당시 선진국과 10년 이상 기술격차가 나는 반도체 산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삼성그룹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병철 회장을 제외한 임직원 모두가 너무 걱정을 한 나머지 암울해 하였던 것이다. 당시 삼성의 재무능력과 기술수준에 비추어 수백, 수천억 원을 투자해 만든 시설이 바로 구식이 되어버릴 판이니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자멸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도체를 동경하던 그 불나방의 정열이 삼성을 세계 정상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63쪽)

 

끝으로 老교수님은 당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인생의 교훈을 한 마디로 요약해서 말씀하신다.

 

아무리 수단매체가 훌륭해도 목적함수가 모호하다면 수단매체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목적함수는 부단한 자기 수양과 미래 성찰을 통해서 축적된 교양과 가치관의 결정이다. 목적함수가 정립되었다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매체는 우회축적의 방법으로 형성 및 축적해야 한다. 수단매체는 축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아픈 부분은 약육강식이 판치는 생존경쟁의 장이라 하겠다. 생존경쟁 속에서 인간이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려면 ‘너 살고 나 살기(相生)’의 생존모형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삶의 정도]는 물리학적으로 풀이한, 가슴이 훈훈해지는 인생경영의 지침서라고 하겠다.

 

* 출처: 박훤일, Book Review, 국제법무연구 제15권 1호,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2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