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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우] 부산에서 농사짓는 치과의사 친구

Onepark 2011. 1. 23. 20:04

나에게는 부산에서 치과의사 하는 "L"이라고 하는 고등학교 절친이 있다.

새로 개통된 KTX도 타볼 겸 부산에 내려가 친구를 만났다. 산천어를 닮은 신형 KTX는 서울에서 논스톱으로 불과 2시간 8분만에 부산역에 데려다줬다. 해운대 K식당에서 개운한 복국도 먹고 센텀시티의 대형 찜질방에도 가보았다.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는 낮에는 치과 진료를 하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주말 농장'을 하려니 싶었는데 본격적으로 1천여 평 땅을 가꾸고 있다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농사짓는 애환을 들려줬다.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땅에 씨를 뿌린다고 저절로 싹이 트고 잎이 자라 거둘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농부가 일일이 끊임없이 돌봐주고 가꾸어야 한다. 잡초 뽑고 거름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들짐승도 막아내야 한다.

 

우리가 매일 먹는 쌀과 채소, 고기가 농부들의 피땀 어린 소산이란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더욱이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살처분한 소, 돼지, 닭, 오리가 벌써 3백만 마리가 넘었다니 그 농부들의 마음이 어떠할지 이루 상상할 수도 없었다.

 

 

농사일과 마음 다스림

 

2011년 1월 16일 부산은 영하 12.8℃로 96년 만에 가장 낮은 기온을 보였다. 내가 사는 철마는 부산 시내보다 3∼4도 낮으니까 새벽에는 영하 18℃를 기록했을 것이다.

2003년 말부터 기장군 철마면과 인연을 맺었는데 그해 봄에 누가 내게 새로운 일거리가 생기겠다고 하였다. 그 일이란 농사짓는 일이었다.

 

농부의 아들이라 어릴 때 농사일을 거들었지만 웬걸 농사란 게 흉내 내기도 너무나 어려웠다. 지속가능한 농업, 유축농업을 생각하고 닭을 키우기 시작했다. 너른 데 풀어 놓으니 오소리와 족제비 등이 와서 잡아먹기도 하고 병에 걸려 죽기도 하였다. 더 큰 문제는 닭들이 시도 때도 없이 시끄러우니까 이웃집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었다. 수탉을 저녁부터 아침까지 마대 속에 가두었는데 한 달쯤 지나 죽고 말았다. 어리석은 주인을 만나 죽게 되었으니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그 다음엔 수탉만 밤에 큰 통으로 덮었는데 소리가 약간 적게 들리긴 한다. 마리 수가 적으니 계분이 많이 나오지도 않았다.

 

평일 낮에는 치과 진료하고 틈날 때마다 소처럼 농사일을 했지만 수확이 시원치 않았다. 해마다 실패의 핑계거리가 있었다.

첫 해엔 묵힌 땅이어서 거름을 안 주어도 심은 게 잘 자라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풀, 즉 자생식물만 잘 자라고 내가 심은 작물은 풀 속에 파묻혀 녹아버렸다.

그 다음엔 파종기 또는 수확기를 놓치거나 제 때 심어도 벌레에게 다 먹혀버렸다. 배추의 경우 5년차 때에 맨 처음 뿌리는 농사용 독약가루를 조금 뿌리고 거의 밤마다 벌레를 잡는 수고를 하고서야 알이 반쯤 찬 배추를 수확할 수 있었다. 목초액도 뿌려보고, 담배꽁초를 맥주에 타서 놓아두기도 했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새 한 입, 벌레 한 입, 사람 한 입”이라고 하지만 새도 벌레도 세 입 다 먹으려고만 한다. 작년에는 콩을 모종내어 심고 풀도 제법 뽑아주었는데 벌레가 먹어 구멍이 숭숭 나니 콩잎 한 장 딸 게 없고 결국 빈 콩깍지뿐이었다.

 

도토리가 달린다는 가시나무를 열 그루 심었는데 풀숲에 살아남은 게 두 그루이고 그것마저 귀여운 고라니가 잎을 거의 다 따먹었으니 올봄에 살아날지 의문이다.

몇 년 동안 무거운 퇴비랑 사료 포대랑 들고 설쳤는데 결국 허리가 고장이 나서 다리에도 방사통이 생겼다. 검사를 하니 요추 전방전위증과 척추협착증이라는데 이게 농부마다 안고 사는 골병이란다. 한참을 미루다가 가을부터 한방치료를 받았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잠자리에 누워서 농사일, 치과 일,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어떤 땐 잠이 안 와서 밤새 뒤척이기도 한다. 가급적 새해부터는 농사일을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 지혜롭게 마음을 다스리려고 애를 쓰고 있는 중이다.

 

부산에서 L (벽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