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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새삼 그리운 대광고 시절 (2)

Onepark 2011. 4. 17. 14:46

고전을 가르쳐주시던 B 선생님은 “그러-엏지”하고 대답을 잘 한 학생을 격려해주시곤 했다. 늘 조용하기만 하셨던 역사를 가르쳐 주신 고3 담임 김웅남 선생님 생각도 난다. 고3 때 몇 년 동안 서울법대 합격한 졸업생이 없었음에도 내 희망대로 대입 원서를 써주신 담임선생님께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세계사를 가르치신 이환일 선생님은 꼼꼼하게 역사 공부를 시켜주셔서 그 덕분에 고3 때 경희대 경시대회에 나가 사회과목의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 때만 해도 경희대를 별로라 여겼으나 필자는 지금 바로 그 학교를 천직이라 생각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광 23회 졸업생들이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에 합격한 성과를 계속 올릴 수 있었다면 국내 최고의 명문교가 되었을 것이다.

 

자랑스러운 23회 동창들의 면모

 

대광 23회 동기들의 면면을 보면 정말 자랑스럽다. 국내 아니 세계 최고기업의 CEO (권오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공학박사 (김용민, 강신후, 박찬경), 유명 교회의 목사님 (박득훈, 최루톤) 등 여럿이 배출되었다. 동창회에는 잘 나오지 않지만 재벌기업의 총수 (김석준), 세계적인 병원의 원장 (차광열)도 있다. 동창회에 나가보면 목사하는 동기의 기도와 축도로 시작과 끝을 맺고, 사회적 지위보다도 목사, 장로 등 교회에서의 직분이 더 중시된다. 동기들 중에 3분의 1 이상이 미국 등 해외에서 살고 있어서 매년 11월 23일에 열리는 동창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아니 반장을 했던 C처럼 사고를 당해 너무 일찍 하늘나라로 간 친구도 있다.

 

* 대광의 교훈인 "경천애인"과 이사장 한경직 목사

대광의 선생님들은 학교 교훈인 ‘경천애인’(敬天愛人)을 몸소 실천하시곤 했다. 교목 김창걸 선생님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곧 예수님이 보혈을 흘리신 십자가의 정신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이웃 사랑에 있어서는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교실 앞에는 교단이 없었고, 매주 토요일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의논하여 결정하는 HR(홈룸)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1968년 입학할 때 우리 모두 전기 시험에 실패하고 후기로 입학하여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입학식 예배 때 이사장이신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이 “하나님의 섭리로 여러분이 대광고에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하셔서 나를 포함하여 많은 친구들이 바로 그 날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겨울철에는 난방이 잘되지 않아 몸이 얼어붙을 것 같았던 강당에서는 사운드가 우렁찬 파이프 오르간이 있었다. 찬송가 작곡자이시기도 한 김두완 선생님의 오르간 연주 덕분에 우리는 채플 시간이면 저절로 은혜가 되는 것 같았다. 지금도 비가 올 때면 “빈들에 마른 풀 같이 메마른 나의 영혼” 찬송가를 부르게 된다. 고1 음악시간에 김두완 선생님은 우리 모두에게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을 부르게 하셨는데 그게 바로 대광 합창단을 뽑는 오디션이었다. 대광 합창단과 체임버의 활약으로 가을에 열리는 개교기념 음악회는 항상 성황을 이루었다. 그 때 선발된 친구들은 교회 성가대를 도맡아 했고, 지금까지도 합창을 취미로 한다고 들었다. 바로 그 강당에서 창문에 커튼을 치고 종종 ‘건전영화’를 보았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유로운 미술'을 가르쳐주신 홍종명 선생님은 알고보니 유명 화가이셨다.

 

대광 덕분에 사춘기 시절에 고입 실패라는 좌절을 겪고 자칫 방황하기 쉬웠는데도 착실하게 고교 시절을 보낸 것 같다. 이러한 견지에서 바로 대광고에서 학교의 일방적인 기독교 교육에 반기를 들고 재판까지 벌여 승소한, 종교부장을 지낸 강의석 후배를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고등학생은 지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시기이므로 우선 성경말씀부터 배우는 것이 결코 해롭지 않은 것이다. 불교도나 다른 종교 아니 종교가 없는 사람도 나중에 지혜롭게 결정할 수 있는 시기가 오기 때문이다.

 

야구나 골프 같은 운동에서는 임팩트 후의 팔로우쓰루가 좋아야 공이 똑바로 나가는 법이다. 우리는 오래 전에 대광의 문을 나섰지만 지금도 힘차게 스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졸업생들이 잘해야 대광고등학교도 발전할 것임에 틀림없다. 최근 들어 자율사립고로 변신을 꾀한 우리의 모교가 “하나님의 은혜로”(Amazing Grace) 날로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