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감소와 고령화 추세로 인해 '지방소멸 시대'가 임박했다고들 한다.
단풍이 물들기 시작할 때 충남 청양군에 있는 조그만 농촌 교회로 교회 공동체 식구들과 아웃리치를 다녀왔다.
교인이 채 열 명도 되지 않는다고 하여 제대로 된 목회는 고사하고 교회 자체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마저 있었다.
10월의 마지막 주일날 30명 가까운 우리 성도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니 비로소 그곳 예배당이 꽉 차는 듯했다.
농촌 교회의 현장을 가서 보고, 아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농촌 마을의 현장을 돌아본 다음 느낀 소감을 적어보고자 한다.
우리 교회공동체의 아웃리치 팀이 방문한 곳은 충청남도 칠갑산 아래 분지에 자리잡은 고즈넉한 농촌마을이었다. 마을 이름부터가 '지금을 즐겨라'(Carpe Diem)는 뜻의 낙지리(樂只里)로 특용작물인 청양고추와 구기자 외에 벼농사도 짓는 비교적 농가 소득수준이 높아 보였다.[2]
가까이에 칠갑산과 천장호가 있어서 산 너머 관광지에는 주말이면 등산과 호수 구경, 강변 오토캠핑을 하러 수많은 사람들이 놀러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을 주민들의 평균 연령은 70세가 넘고 40대 이하의 젊은 사람이 없어서 동남아에서 온 이주민 여성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니 이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도 대부분 일흔이 넘으신 할머니들이라는 게 이해가 갔다.[1]
그렇다면 교회 부흥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1박 2일 이 교회에 머물면서 우리 공동체 식구들은 첫 날 저녁식사 후 세미나 같은 분위기에서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농촌 교회가 당면한 문제는 거대담론에 속하는지라 언급 자체를 회피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서울 대형교회 다니는 우리가 할 일이 시골교회에 와서 고작 풀뽑기와 마을주민 위안잔치나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아웃리치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올 때까지 이것저것 생각하는 게 많아졌다.
문득 우리(여기서는 교회 공동체 남성 교인들을 지칭함)의 화제에 올랐던 로제가 부른 "아파트"가 떠올랐다.
블랙핑크의 멤버인 로제가 오래 전의 히트곡 "아파트" 노래가사를 가지고 술집에서 젊은이들이 하는 게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여기에 미국의 인기가수 브루노 마스가 콜라보하여 간단한 율동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동영상을 찍었다. 이것이 쉽고 재미있어 중독성이 강하고 세계 곳곳에서 따라하는 쇼츠가 잇따르면서 YouTube에 올리자마자 최단 시간에 1억 뷰를 달성했다고 한다.
여기서 인구감소 시대의 농촌교회, 좀더 범위를 넓혀 MZ세대가 외면하는 한국 교회의 현황과 보다 현실적인 대응방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마을 주민을 한 분이라도 교회에 모시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분들도 연세가 많아서 세상을 떠나면 교회도 문을 닫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전도 대상을 찾아 이 사람들을 교회로 유치해야 한다. 교회의 존립을 위해서는 무엇이 그들의 관심을 끌고 교회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할 것인지 머리를 짜낼 필요가 있다.[1]
첫째는 MZ세대가 좋아하는 것,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을 교회 안에 갖추어 놓을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교회에서 인스타그램이나 쇼츠 동영상으로 올릴 만한 이벤트와 오케이전을 만들고 이를 SNS를 통해 적극 홍보하는 게 좋을 것이다. 지역 특용작물의 경작과 수확 과정을 SNS에 올리고 이것을 한두 가지 스토리텔링(이것을 meme이라 함)으로 만들어 젊은이들이 많이 보는 인터넷 사이트에 소개해야 한다. 그것이 입소문으로 퍼져 젊은이들이 한두 번이라도 교회를 찾아온다면, 그들이 진짜 소문을 듣고 인증샷을 찍으러 이곳을 찾아온다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3]
이젠 목회자들도 휴대폰과 SNS를 통해 세상의 젊은이들과 소통하지 않는다면 지금은 아무리 교인 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MZ세대에게는 어려운 신학 이론을 들먹일 필요가 없다. 쉽게 피부에 와닿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예배가 아니라 관광용으로 문을 열고 있는 텅 빈 공간의 서유럽의 큰 교회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가 방문한 지역도 청양고추, 구기자, 밤 등의 주산지[4]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인근에 칠갑산과 천장호 출렁다리가 있어서 깨어있는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겠다 생각되었다. 다행히 이 교회는 큰 교육관이 있어서 20명 이상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지금 교회에 필요한 것은 큰 예배당과 파이프 오르간이 아니라 소형 회의실과 키보드와 드럼, 농구대, 커피/차 도구 세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MZ세대를 가르치려 들기보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5]
지금 우리나라가 이만큼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BTS와 블랙핑크를 비롯한 K팝 아이돌이고, K드라마 오징어게임, 웹툰 등의 스토리텔링 덕분이 아니던가! 삼성전자 반도체와 휴대폰, 현대 자동차가 수십 년 쌓아올린 명성(reputation)을 우리 MZ세대의 K컬쳐는 단숨에 세계인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우선 MZ세대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인근 칠갑산 천장호 출렁다리, 금강변 오토캠핑장을 찾아오는 젊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것,
둘째, 이들이 쉽게 접근(access)할 수 있는 SNS나 모바일 기기, 심지어는 인공지능(AI) 같은 뉴미디어까지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셋째, MZ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대의(大義, cause)와 가치(value)에 부합하는 깃발을 내걸어야[5] 하는데 이는 개(個) 교회가 아닌 교단 차원의 공동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Note
1] 누가 됐든지 남성 교인이 출석한다면 농촌 교회의 모든 중책이 그에게 맡겨질 것임이 명약관화하다. 그런데 옆에서 도와줄 사람도 없이 농사일만으로도 바쁜 터에 누가 교회 일까지 도맡아 할 수 있겠는가! 현재의 농촌 상황에서는 복음전도와 개인 신앙 문제를 떠나 현실적인 여건이 너무 열악해 보인다. 우리가 같이 예배를 본 주일 날에도 할머니 성도들은 농사일 때문에 우리와 단체사진 찍을 시간도 없다는 말들을 하셨다.
2] 마을회관에서 같이 식사를 하면서 이곳 어르신 농민들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농사 인력의 부족으로 벼농사도 트랙터를 이용하며, 농약살포에도 농협을 통해 드론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쌀농사에는 일정 비용이 고정적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이젠 경운기도 사람이나 물건의 단거리 운반용으로 쓰일 뿐이라며 농민들은 쌀값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농촌인구의 감소 못지 않게 기후변화로 인해 경작할 수 있는 농작물이 크게 바뀌고 있으므로 앞으로 10년 후에는 농촌 풍경이 사뭇 달라질 거라고도 말했다. 따라서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농촌은 미래가 없다"라는 두려운 말씀도 하였다.
3] 이에 관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몇 가지 있다.
#1 강원도에서는 감자가 많이 생산되는 만큼 산지에서는 제값 받기가 힘들다. 더구나 못생기고 작은 감자는 잘 팔리지도 않았다. 이에 감자 농사꾼의 딸이 아이디어를 냈다. 그 감자를 활용하여 빵을 만들어 팔기로 했다. 못난 감자 모양으로 빵을 디자인하고 이름도 '못난이 감자빵'이라고 붙였다. 이런 스토리가 있는 사연을 SNS를 통해 여러 가지 올렸다. 입소문을 타고 언론에도 보도가 되자 한 사람 당 3개로 판매수량을 제한해야 할 정도로 감자빵을 찾는 이가 많아졌다. 이제는 강원도 여러 곳에 감자가 내용물로 들어가는 빵 제조공장을 세우고 제과점을 통해 사연 있는 여러 종류의 빵을 팔고 있다.
김성윤 기자, [아무튼 주말] "강원 춘천서 '감자빵' 개발해 대성공 서른한 살 이미소 '농업회사 밭' 대표", 조선일보, 2023.11.15.
#2 강릉의 명물 테라로사 커피는 스페셜 커피 원두를 공장에서 직접 로스팅하고 공장 옆 카페에서 손님의 주문을 받아 즉석에서 분쇄하여 커피를 내린다. 이렇게 '공장에 붙어 있는 카페'라는 컨셉과 '맛과 향'으로 젊은 커피 애호가들의 미각과 후각을 사로잡았다. 그러자 많은 젊은이들이 먼길을 무릅쓰고 강릉 외곽의 논밭을 지나 테라로사 본사를 찾는 수고를 마다 하지 않았다. 이들은 여기서 사진을 찍어 자신의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올림으로써 만족감과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 그러므로 테라로사는 굳이 임대료 비싼 도심에 고급스러운 매장을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4] 생각이 깨어 있는 마을 주민은 청양에서 생산하는 고추, 구기자, 밤의 품질이 아주 좋음에도 가격이나 지명도 면에서 타지 생산물에 뒤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예컨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매운 맛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음에도 농부들은 병충해에 약하고 재배하기 어려운 청양고추 대신 덜 매운 고추를 키우려고 하여 갈수록 재배면적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대신 캡사이신을 첨가한 인공 핫소스가 더 싸고 이용하기도 쉬워 청양고추 자리를 빼앗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밤 역시 청양産이 알이 굵고 맛있음에도 인근 공주사대 교수가 조림한 밤나무 단지, 논산의 '송종의 밤나무 검사'가 조성한 유실수 단지에서 생산된 밤이 훨씬 지명도가 높아 더 좋은 값에 많이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5] MZ세대가 적극적으로 호응할 수 있는 대의와 가치는 무엇일까? 수 차례 언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20-30대는 사회에 진출하면서 환경보호와 기후변화, 성차별 이슈, 인권보호, 건강과 웰빙에 특히 민감하고 이런 일에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고 했다. 현재 미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성차별과 낙태권 보장을 둘러싸고 여성들이 기성세대와 큰 의견차를 보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른바 20대女가 보수적인 교회를 멀리하는 이유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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