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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Day] 폭염에도 안전한 도시

Onepark 2024. 7. 13. 13:00

G : 한더위 장맛철에 안녕하셨어요? 뉴스를 보면 우리나라가 덥다 해도 폭염에 시달리는 중국이나 미국, 그리스 같은 나라에 비하면 비교적 견딜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P : 네, 우리나라도 예전에 비하면 겨울엔 덜 춥고 여름엔 더 더웁고 비도 더 많이 오는 것 같아요. 한 마디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때문인데 오늘은 때가 때인지라 폭염에 관한 책을 두 권 골라봤어요.

하나는 2018년에 출간된 『폭염사회』(에릭 클라이넨버그 저, 홍경탁 역, 글항아리, 2018. 8)이고, 또 하나는 폭염 살인 (제프 구델 저, 왕수민 역, 웅진지식하우스, 2024. 6)라고 하는 제목에 폭염(暴炎, Heat)이 들어가는 책들입니다.

 

G : 그럼 지구온난화를 늦추기 위해 시급히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내용인가요?

P : 아니요. 두 책의 공통점은 저자가 직접 폭염을 겪고 나서 열사병 등 희생자가 속출했던 여러 도시의 문제점을 파헤친 후 그 대책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그동안 몰랐거나 관심을 갖지 않았던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1995년 시카고에서는 기온이 섭씨 41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이 일주일간 지속돼 70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구급차는 모자랐고, 병원은 자리가 없어 환자를 거부했으며, 시민들은 갑자기 죽은 이웃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사실 이 일이 있기 전 무더위는 사회적 문제로 취급된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폭염이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내는 것도 아니고 홍수나 폭설처럼 스펙터클한 장면을 연출하지도 않을뿐더러 그 희생자는 대부분 눈에 잘 띄지 않는 노인, 빈곤층, 1인 가구에 속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현지 조사활동을 벌였다. 폭염 사망자들이 실려온 한 시체부검소에서 시작해 오랜 기간 차분히 여러 스펙트럼을 따라 진행했고, 기존 사회학이 간과해 우리 시선에 붙잡히지 않았던 이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가 주의 깊게 살펴본 것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폭염에 의한 사망이 ‘사회 불평등’ 문제라고 진단을 내렸다.   『폭염사회』 책소개

 

P :  『폭염사회』의 저자인 에릭 클라이넨버그(Eric Klinenberg)은 뉴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데 Public Culture (대중문화)의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첫 저서인 Heat Wave: A Social Autopsy of Disaster in Chicago (시카고 폭염 재난의 사회적 해부)는 시카고 트리뷴에서 ‘올해의 우수도서’로 선정되는 등 학계와 출판계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고 해요. 이 책의 성격이랄까 주제가 무엇일지 이해가 가지요?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기상이변이 발생했을 때 다른 곳보다 회복력이 강한 지역과 취약한 지역의 환경을 조사하는 것은 사회학자들이 온도가 점점 올라가는 지구에서 삶과 죽음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관한 사회과학 조사를 학계에서만 할 필요는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최근 많은 학자가 기획자, 엔지니어, 건축가와 협업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함께 극단의 시대를 피하는 것은 물론 앞서 대비하려는 도시의 시도를 돕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나는 시카고에 살면서 이 책 작업을 할 때 이러한 노력에 동참하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허리케인 샌디가 내가 살고 있는 뉴욕에서의 삶을 바꾼 후에야 사회과학 연구가 기후변화 완화에 관한 학제간 연구와 대응 프로젝트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 정부들은 '기후 안전', 즉 기후 관련 참사에 맞서 사람과 기업, 중요한 기간시설을 보호하는 계획을 추진하는 데 투자해왔다. 이 일의 많은 부분은 엔지니어들이 ‘생명선 시스템’(재난이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전력망, 교통, 통신 등 중 요 시설)이라 부르는 시설들을 업그레이드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일부 해결책에는 자본이 많이 들어가고 첨단 기술이 동원된다. 또 다른 해결책은 공동체를 조직하여 주민들이 몸 약한 이웃을 파악하고 그들을 어떻게 도울지 알게 만드는 것처럼 기술 수준이 낮거나 혹은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론 인간에게 근본적인 위협을 가하는 것은 우리가 탄소 배출을 줄이지 못해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추는 데 실패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당장 내일부터 지구에서 탄소 배출 증가를 가까스로 막아낸다 해도, 수 세기가 지나면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 위험한 기상이변은 더 자주 나타날 것이다. 도시가 살아남으려면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회과학자들은 그 과정을 이끄는 과학자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힘을 합쳐야 한다.

 

G : 한국에서도 거의 매년 폭염과 폭우를 겪게 되는데 새로운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합니다.

P :  이 책은 기후변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훨씬 전부터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네덜란드 로테르담과 싱가포르 등  외국의 여러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있어요. 

 

2005년 로테르담 시는 제2회 국제건축 비엔날레를 개최했다. 주제는 '홍수'였다. 전 세계에서 온 설계사들은 미래에 도시가 어떻게 홍수에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기획을 제안했다. 그리고 전시가 끝나자 몰레나르의 팀은 실제로 가치 있는 기획들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로테르담 시는 이제 수용의 건축을 실험하고 있다. 도심지에서 테니스장 4배 크기의 전시 공간을 갖춘 세 개의 은빛 반구로 만들어진 물에 뜨는 가건물, 평소엔 놀이터로 사용되지만 엄청난 비가 내리면 물을 저장하는 시설로 변환되는 워터 플라자, 운하를 따라서 지어진 물이 넘칠 수 있는 테라스와 조각공원, 건물 정면과 차고 그리고 1층이 물에 견디도록 지어진 건축 등이 그것이다.

영리한 설계 덕분에 네덜란드의 주요 기반시설의 여러 문제가 개선되었다. 통신망은 유럽에서 인터넷 속도가 가장 빨랐고, IBM과 함께 물과 에너지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한 전력망은 강한 바람과 폭우에도 견디도록 탄력적으로 설계되었다. 미국에서 대다수 전력가공선은 나무 기둥 위까지 높게 올려져 있어 늘어진 나뭇가지에 노출되어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선이 주로 지하에 있고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파이프로 감싸놓는다. 네덜란드의 전력망은 중앙 집중형 시스템이 아니라 순환식이어서, 한쪽 방향에서 전기가 나가면 작업자는 다른 곳에서 전원을 가져와 전력을 복원할 수 있다. 그리고 전력망은 이웃 나라와 연결되어 있어 지역에 문제가 생길 때 시스템 용량을 추가적으로 제공해줄 수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 구조는 평상시에도 탄력적으로 운영된다. 네덜란드에서 연간 총정전 시간은 23분으로 뉴저지, 펜실베이니아와 뉴욕의 214분(재난으로 인한 정전은 제외했다)과 대비된다.  위의 책, 17-18쪽

 

G : 이런 것을 잘 살펴보고 배울 수 있도록 실무 담당 공무원들을 해외에 자주 내보낼 필요가 있어요.

P : 맞습니다. 그런데 해외시찰도 실무자보다도 높은 자리에 앉은 고위 관리와 국회의원들이 먼저 나가는 것은 문젭니다. 싱가포르 사례 를 한번 볼까요?

 

*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 스카이파크 전망대에서 바라본 저녁 풍경

 

섬나라인 싱가포르(710㎦의 땅에 520만 명이 모여 사는데 국토 대부분의 해발고도가 위험할 정도로 해수면에 가깝다)는 반대 사례 를 제공한다. 싱가포르는 30년 전 우기에 계속되는 폭우로 인해 저지대 도시 중심부에 홍수가 반복되자 위험한 날씨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는 늘 물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우기마다 비가 쏟아져 내렸고 잦은 홍수에 취약했으면서도 식수가 충분한 적은 없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의 수원에 의존하는 문제 때문에 정치적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기후변화는 해수면 상승과 폭우 증가로 도시국가의 안정을 위협하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이것을 또 다른 기회로 보고 있다.

 

2008년에 개장한 마리나 댐과 저수지는 싱가포르의 배수시설을 개선하고 상습 침수지역의 범위를 줄이며 삶의 질을 높이는 20억 달러 규모 캠페인의 중심에 있다. 0개의 독마루 수문과 잇달아 연결된 대형 캠프들 국토 크기의 7분의 1에 달하는 1만 헥타르 크기의 저수 지역으로 구성되어 폭우 기간 중 저지대 도시의 홍수를 막아줄 뿐 아니라, 주변 해수에 미치는 조류의 영향을 제거해 현재 싱가포르가 필요로 하는 물의 10퍼센트를 충당시키는 빗물을 이용한 담수를 제공한다. 더욱이 마리나 유역의 수위가 안정되어 수상 스포츠를 하기에도 좋다. 조각공원과 물놀이터, 인상적인 도시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옥상정원, 지속 가능한 갤러리 등이 갖추어진 마리나 공공지역은 관광수익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마리나는 싱가포르의 적응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대량 고속 수송 시스템은 지하철로의 접근점을 최고 홍수위보다 최소 1미터 이상 높였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익위원회는 배수 시스템을 개선했다. 1970년대에는 상습 침수지역이 3200헥타르였지만, 현재는 49헥타르에 불과하다. 싱가포르는 해수를 담수화하는 새로운 시설을 건설하고 기간시설에서 재생 및 처리된 폐수를 이용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물 수입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낮추고 있다. 싱가포르 건설청은 모든 새로운 건축물에 낮은 온도를 유지하도록 단열 자재를 사용하길 권장한다. 오늘날 싱가포르는 기상이변뿐 아니라 인구증가로 인한 전력과 물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준비를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위의 책 20쪽

 

G :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는 우리나라의 쌍용건설이 시공한 샌즈 호텔로도 유명하잖아요! 이곳은 관광지로 개발되기 전에 그러한 홍수대비책으로 건설된 곳이군요. 관광 목적이 아니라 홍수 대비의 관점에서 돌아보아도 좋겠는데요.

P :  그렇지요. 이런 일은 자연재난이 닥친 다음에 손을 쓰기로 하면 너무 늦고 희생이 크거든요. 저자는 자자체, 공기업일수록 중앙정부에만 매달리지 말고 통찰력을 갖고 대처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로테르담과 싱가포르처럼 간단히 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야심과 통찰력은 본받을 만하다. 2012년 10월 말 미 동부 해안을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로 인해 뉴욕 시는 대비가 미비했던 데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전력 가스회사 같은 공익 기업들(public utilities)은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어느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미국의 모든 전력회사의 연구개발 투자액은 7억 달러에 불과한 데 비해, IBM은 63억 달러, 화이저는 91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에너지부는 2009년 전국의 지능형 전력망(smart grid) 프로젝트 100개에 보조금 34억 달러를 투입했다. 거기에는 폭염과 허리케인에 취약한 여러 지역이 포함됐다. 그 전해에 허리케인 아이크가 휴스턴의 200만 인구가 소비하는 전력시설을 강타해 그 피해를 온전히 복구하는 데에만 거의 한 달이 걸렸다. 휴스턴시에서 지능형 전력망을 설치하기 위한 연방 보조금 2억 달러를 받자 직원들은 빠르게 업무에 돌입했다. 휴스턴의 거의 모든 가구는 새로운 전력망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새로운 전력망은 다음 태풍이 닥칠 때에는 좀더 안정적일 것이다.

 

 

G : 얼마 전 신문에서 미국의 어느 지방정부에서는 폭염 문제를 전담하는 직책을 신설했다는 기사를 보았어요.

P : 네, 2021년 미국 플로리다주 최대 도시 마이애미를 끼고 있는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에서는 세계 최초의 '최고폭염책임자(Chief Heat Officer·CHO)'를 임명했습니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허리케인이 상륙하여 강풍과 호우, 쓰나미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지요.

 

2021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의 CHO로 임명된 제인 길버트의 임무는 극심한 더위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기상 당국과 협의해 마이애미 지역에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를 내리는 기준을 3도씩 낮추는 작업을 주도했다. 또 시내에 나무 그늘을 늘리는 일도 하고 있다. 폭염 대피소 설치, 냉방 장치를 갖춘 도서관 운영 시간 연장, 고용주와 의료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폭염 교육도 길버트가 담당한다. 무더위에 대비해 지난겨울 미리 1700여 채의 공공주택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는 의료계, 정책 기관, 근로자 등 다양한 관계자를 한데 모아 의논하기 위해 폭염 문제에 집중하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CHO 직제를 도입한 도시는 마이애미뿐만이 아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피닉스, 호주 멜버른, 그리스 아테네, 칠레 산티아고, 시에라리온 프리타운, 방글라데시 북다카에서도 CHO 임명이 이어졌다. 폭염이 가끔 찾아오는 재난이 아니라 일상이 됐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적응할 수 있도록 폭염 대비용 컨트롤 타워를 둔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CHO가 속속 등장하는 이유는 폭염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를 느끼기 때문이다. 지난달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실린 한 연구는 지난해 유럽에서만 6만1천여 명이 폭염과 연관돼 사망했고, 적절한 적응 대책이 없으면 2040년 무렵엔 유럽의 폭염 사망자가 9만4000명을 웃돌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폭염은 저소득층과 여성·노인·어린이에게 더 치명적이다. 미 경제지 패스트컴퍼니는 “기후 변화로 인한 이재민의 80%가 여성으로 추정되고 많은 여성이 냉방 장치가 없는 곳에서 가사 노동을 한다”며 “세계 각지에서 임명된 CHO 대다수가 여성인 것도 이런 대표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CHO가 등장한 도시들에서는 폭염 피해를 줄이는 제도적 변화가 가시화됐다. 그리스 아테네는 시민들에게 무료 식수대와 무더위 피난소<, 공원, 분수 위치를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을 활용하고 있다. 앱에 사용자 나이를 입력하면 연령대에 맞춰 맞춤형으로 폭염 위험을 경고해준다. 이동할 때 최대한 그늘로 이동할 수 있도록 추천 경로를 안내해주는 기능도 있다.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의 CHO인 유지니아 카르그보는 노천 시장 3곳에 차양막을 설치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대부분 여성인 시장 상인들과 손님들을 태양으로부터 보호하고, 시장에서 파는 식품이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마이애미의 길버트 CHO는 TV·휴대폰이 없는 주민이나 영어에 능통하지 않은 이민자들을 위해 폭염 경보 알람을 보내는 언어와 채널을 다양화했다.

조선일보 성유진 기자, "최고폭염책임자 'CHO' 등장, 이상 기후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왔다",  WEEKLY BIZ, 2023.08.24.

 

* 파리 에펠탑 부근 트로카데로 분수에서 더위를 식히는 젊은이들. 출처: AFP=연합뉴스

 

G : 사실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는 폭염 뿐만 아니라 폭우와 홍수에 대한 대비책도 필요하지 않나요?

P :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상시화되고 있는 만큼 호우와 홍수, 폭염에 대비하여 주민의 안전과 지속적인 도시 기능을 위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언제까지 100년 만의 폭염, 50년 만의 폭우 타령만 해선 안됩니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어요.

 

뉴욕시는 2023년 6월 철길을 녹지와 산책로로 만든 퀸스 라커웨이 지역 도로에 물이 잘 빠지는 투수성 도로포장재를 사용했다. 홍수에 대비해 배수 능력을 키운 것이다. 뉴욕시는 “새로운 도로는 매년 약 130만갤런의 빗물을 땅으로 흡수해 홍수 피해를 줄이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영국 런던은 최근 템스강 방어 시설을 개선하는 작업을 당초 계획보다 15년 앞당겨 2050년까지 마치기로 했다. 홍수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영국 환경청은 “템스강 어귀에서 해수면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아예 주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기도 한다. 미국 버몬트주는 연방재난관리청(FEMA)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홍수 취약 지대에 있는 주택을 매입하고 있다. 집주인이 해당 집을 팔고 홍수 발생 시 좀 더 안전한 고지대로 이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150채 정도 주택이 매입·철거됐다. FEMA는 현재 미국 전역에서 이런 매입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홍수, 산불 같은 기후 재난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알려 피해를 최소화하는 기술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 2018년 홍수 예측·알람 서비스를 출시했다. 인공지능(AI) 기술로 일기예보와 위성 사진을 분석해 최대 7일 전에 특정 지역의 침수 위험을 미리 경고해준다. 미 캘리포니아주는 올여름부터 산불 감지 AI 프로그램을 시범 사용하고 있다. AI가 주 전역에 설치한 1038대의 카메라 영상을 분석해 산불 발생을 초기에 알린다.   위의 조선일보 기사, 2023.8.24.

 

G : 다시 폭염 이야기를 해주세요. 금년 라마단 기간 중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메카 순례자 1천여 명이 사망했죠. 또 그리스에서는 관광객 사망 사고가 속출하자 파르테논 신전의 관람시간을 제한했다고 들었습니다.

P :  최근 미국의 기후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Jeff Goodell)이 폭주하는 더위에 대한 정밀한 현장 르뽀 ‘폭염살인(The Heat Will Kill You First)’ 책을 냈어요. 아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그가 체험한 열사병이 책을 낸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수은주가 47.2도까지 오른 2018년 여름이었다. 나는 피닉스 시내 호텔에 머물고 있었고 20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서 미팅이 있었다. 택시나 우버를 타는 대신 걸어가기로 하고 늦지 않으려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몸의 이상을 느꼈다. 심장이 심하게 요동치고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났다. 만약 내가 20블록을 더 걸어야 했다면 큰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그 순간 더위가 얼마나 위험한지 체감했다. 마치 벌레를 잡는 전기 포충기처럼 불볕더위가 사람을 순식간에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동안 10년 넘게 해수면 상승을 취재하며 기후변화 글을 썼지만, 피닉스에서 그 더위를 맞닥뜨리기 전까지 폭염의 시급성과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른 많은 사람은 더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폭염은 태풍이나 쓰나미처럼 한순간에 도시를 휩쓸고 사람들을 쓰러뜨린다. 2021년 여름, 폭염이 포틀랜드를 강타했다. 대양에서 발산되는 열이 한데 모여 열돔이 형성되자 24시간도 되지 않아 포틀랜드 시내 기온은 섭씨 24.4도에서 45.5까지 치솟아 147년 관측 역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여기저기 사이렌이 울리고 응급실엔 헐떡이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산맥 꼭대기의 눈이 녹아 토사가 되고 따뜻한 강물이 불어나자, 거슬러 오르던 수만 마리의 연어 떼는 숨도 못 쉰 채 폐사했다. 음향 증폭기가 있다면 더위 때문에 둥지에서 뛰어내리는 어린 새, 파열된 나무의 비명을 들을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혀를 찼다.

열기는 동네마다 달랐다. 포틀랜드 최악의 빈민가인 렌츠의 측정 온도는 51.5도였지만, 녹지가 조성된 부자 동네 웰래밋 하이츠는 15도나 더 낮은 37.2도였다. 그렇게 실내 온도는 새로운 계급이 되고 더위는 더 많은 죽음과 더 잦은 전쟁을 몰고 올 것이다.

20세기 미국의 최대 발명품 중의 하나인 에어컨은 에어컨의 인기는 무더운 기후로 외면 받던 미국 남부로 북부 인구를 대거 이주시킬 정도였다. 1940~1980년대 민주당 텃밭이었던 선벨트에 보수 성향의 은퇴자들이 대거 몰려 대선 판도를 뒤엎기도 했다.

그러나 에어컨은 엄청난 전기를 잡아먹으며, 도시를 헤어 나올 수 없는 폭염의 블랙홀로 밀어 넣는다. 안락한 냉방 문화는 순식간에 전 세계적인 중독으로 자리 잡았다. 2022년 월드컵을 개최한 카타르는 심지어 야외에서도 냉방을 틀었다. 2050년 에어컨은 45억 대가 넘어 스마트폰을 따라잡을 것이다.

 

여름철에는 도시가 열섬이 되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것은 에어컨의 가동이 중단되는 정전이다. 정전과 폭염은 매우 위험한 조합이다. 옛날 사람들은 더운 지역에 자연 환기 시스템을 갖춘 건물을 짓기 위해 공기의 흐름, 태양의 위치, 심지어 건물 자체의 색까지 고려했다(멕시코나 그리스처럼 덥고 햇볕이 잘 드는 지역의 건물을 흰색으로 칠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식 건물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에어컨만으로 모든 작업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졌다.

전기가 끊기지 않는 한 괜찮다. 정전되는 순간 현대식 건물은 순식간에 치명적인 대류식 오븐이 된다. 내가 책에서 인용한 한 최신 연구에서 피닉스에서 극심한 불볕더위로 5일간 정전이 발생했을 때를 조사한 결과는 첫 48시간 동안 13,000명 이상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했다.

어느 누구도 에어컨 없이 살자고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에어컨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사람이 에어컨을 극심한 더위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으로 간주해서 에어컨을 설치하기만 하면 괜찮아질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단언컨대, 우리는 괜찮지 않을 것이다.

첫째, 전 세계 7억 5천만 명의 사람들이 에어컨은커녕 전기조차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기온이 41도까지 오른 어느 날 애리조나주 전기회사는 51달러의 전력요금을 연체한 폴먼 씨 집의 전기를 차단했다. 일주일 뒤 사망한 채 발견된 그의 사인은 '열 노출'이었다. 둘째, 에어컨을 가동하는 전력은 온난화의 주요 원인인 화석 연료에서 나온다. 셋째, 우리는 바다, 숲에까지 에어컨을 설치할 수 없다. 그러니 대기와 바닷물의 운도를 낮출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김지수 작가의 제프 구델 인터뷰 , "폭염살인… 에어컨이 나를 지켜줄 거라는 착각은 버려라", 조선일보, 2024.06.29.

 

G : 우리나라에서는 폭염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나요?

P : 네, 며칠 전 조선일보가 최근 10년간 각 지자체에서 폭염 대응 예산을 어떻게 썼는지 보도했어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전국 17개 광역 지자체 중 13곳에서 받은 2015~2024년 폭염 대비 예산’을 분석했다고 하는데요, 지자체 13곳의 폭염 예산 합계는 2015년 18억 4000만원에서 2024년 166억 9800만원으로 10년 새 9배나 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폭염이 재난으로 인식된 것은 대략 2018년부터다. 2018년은 폭염 일수가 역대 최고인 31일을 기록한 해로, 낮 최고기온이 서울 39.6도, 강원 홍천 41도를 찍었다. 최악의 폭염으로 한 해 동안 48명이 사망하고 온열 질환자가 4515명 발생했다. 2018년 9월 정부는 폭염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상 법적 자연 재난에 포함하고 지자체 등이 대응에 나서도록 했다. 그 후론 대부분 지자체가 매년 수억~수십억 원을 폭염 예산으로 배정하고 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덥다고 여겨진 수도권이나 충청도에서도 폭염 대응 예산을 크게 늘리고 있다.

서울시는 도심 도로 온도를 낮추기 위한 물청소차 투입에 올해 7억2000만원을 쓴다. 이 밖에 그늘막이나 쿨링 포그(인공 물안개) 설치, 쪽방 주민과 독거노인을 위한 냉방용품 지원, 에어컨을 상시 가동하는 ‘무더위 쉼터’ 운영 등이 폭염 예산에 포함됐다. 농촌 지역에서는 가축 폐사를 막기 위해 축사에 냉방 시설을 설치하거나 피해 보상 보험을 들면서 관련 예산 지원이 늘었다. 충남도는 올해 평년보다 높은 수온으로 양식장 피해가 우려되자 액화산소공급기, 수차(水車) 등 지원에 약 8억원을 사용하기로 했다.

조선일보 김윤주 기자, "돈 먹는 더위… 폭염 대응 예산, 10년새 9배 늘어", 2024.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