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People

Travel

[이탈리아 6] 소렌토, 카프리, 나폴리

Onepark 2024. 5. 18. 19:30

오늘 아침에는 이태리 가곡 " 돌아오라 소렌토로"(Come back to Sorrento)로 유명한 나폴리 근교의 소렌토로 갈 참이었다.

그런데 어제 저녁 버스 안에서 자그마한 소동이 벌어졌다. 오늘 이탈리아 역전(驛傳) 자전거 경주대회(Giro d'Italia, giroditalia.it 웹사이트)가 열리므로 로마를 기점으로 9시를 기해 통과 예정인인 주요 도시의 도로가 시간대 별로 차량통행이 통제된다는 것이었다. 버스 기사가 알려준 정보였으므로 우리도 교통이 막히는 시간을 피해 로마를 떠나야 했다.

당연히 이런 중대한 정보를 미리 파악해서 알려주지 않았느냐는 불평이 터져 나왔다. 하는 수 없이 일단 6시에 버스를 출발하기로 하고, 아침 식사는 도시락을 준비하여 나눠준다고 했다.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오늘부터 새로 배차된 버스 기사가 EU의 타코 규정상 의무적으로 휴식을 취해야 하므로 처음 도착하는 휴게소에서 40분 이상 정차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은 참 점잖기도 하시지 -- 모두 아침 6시에 인솔자가 나눠준 도시락 종이백을 받아들고서 버스에 탑승했다. 

동이 터오는 고속도로에서 나폴리로 가는 차량은 별로 많지 않았다.

휴게소 안으로는 도시락을 들고 갈 수 없으니 버스 안에서 참치 샌드위치와 주스, 사과 등으로 요기를 하였다.

 

* 상당히 긴 시간을 보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리나라의 화장실과 세부적으로 비교해 보았다.

 

어쨌든 좋았다.

날씨는 쾌청하고, "돌아오라"고 애타게 부르는 사람은 없지만 소렌토로 가는 길도 순조로웠다.

해안 가까이 가자 길은 좁았지만 도로 변의 밭에는 오렌지와 레몬이 탐스럽게 열려 있어 우리 마음까지 넉넉해졌다.

카프리 행 페리를 타는 부두까지 대형 버스를 갈 수 없으므로 우리 일행은 일단 버스에서 내렸다. 소렌토 거리와 시장을 구경한 다음 현지 가이드를 따라 계단을 이용해 부두로 가기로 했다.

나는 계단을 걸어내려가기 어려우니 카페에 앉아 시내 구경을 하다가 택시를 타고 선착장으로 곧바로 가면 되었다.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며 인솔자 오병섭 팀장이 우리 내외와 택시에 동승하였다.

 

*소렌토 시내의 좁은 도로. 주차된 차들이 대부분 소형이고 오토바이는 따로 세우도록 했다.
*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계단도 깊고 가파르리라 여겨졌다.
* 시내 가로수에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렸다.

 

소렌토에서 카프리 섬으로 가는 페리는 쾌속선으로 약 40분간 지중해 푸른 바다를 물살을 가르며 달렸다.

우리 일행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예약해 둔 식당으로 갔다.

바닷 바람을 쐬며 현지에서 잡은 생선으로 조리한 점심 메뉴 음식은 일미가 아닐 수 없었다.

화장실도 편하게 이용했다. 

 

* 우리나라 같은 백사장이 아닌 게 흠일 뿐 작열하는 태양, 시원한 바닷물 해수욕을 하기에 딱 좋았다.

 

우리는 카프리 섬 정상까지 1인용 리프트를 타고 갈 예정이었다.

나의 걸음걸이가 늦은 만큼 다른 사람보다 일찍 리프트를 타러 가자고 아내가 재촉했다.

시원한 바람을 쐬며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지만 스테이션까지 가는 길은 경사가 있고 꼬불꼬불 많이 걸어야 했다. 피렌체나 시에나보다는 거리는 비교도 안 되게 짧았어도 여러 날 피로가 누적된 탓에 발을 디딜 때마다 욱신욱신거렸다.

결국은 해 냈다. 놀이동산에서 많이 타 본 경험이 있어서 리프트 타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다만, 내릴 때 오른발로 착지하는 게 문제였는데, 친절하게도 오병섭 팀장이 나보다 먼저 타고 올라가 내가 착지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천신만고 끝에 올라오니 하늘과 바다의 구분 없이 눈 부신 쪽빛이 눈에 한가득 찼다.

일순 발이 아픈 것도 잊고 방패연처럼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Borderless blue between the sky and sea
Shoots me to the sky like a kite.

 

문득 영화 〈웨일〉의 엔딩 신이 생각났다.

과다체중으로 거동이 자유스럽지 못한 주인공은 반항적인 딸, 이혼한 전처, 실직 위기의 대학 강사직 등 걱정거리가 끝이 없다. 절망 적인 상황에서 그는 딸한테서 일루의 희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가 줄곧 추구해온 모비딕 흰고래처럼 하늘로 솟구치듯 붕 떠오른다. 주인공이 암담한 현실을 뚫고 나오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작년 프랑스 여행 중 니스에 갔을 때 힘들게 에즈(Eze) 식물원에 올라갔던 일도 떠올랐다.

이국적인 다육식물과 신비스러운 조각상이 지중해 남빛 바다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릴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갔다.

그럼에도 하늘도 바다도 온통 잿빛이니 모든 사물이 무채색으로 무표정하게 보였다.

그렇구나~! 사람이 하는 일이란 인간의 노력만이 아니고 주어진 환경 내지 여건과 타이밍(天時)이 맞아야 하는 것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 

 

* 살아 생전에 이런 절경을 볼 수 있다니 발 아픈 것도 잊고 감격스러웠다.

 

걸어갈 때 힘들어서 그렇지 내려오는 길은 힘든 줄 몰랐다.

카프리 섬 정상의 엑스터시가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선착장 앞 카페 레스토랑에서 나폴리 행 페리를 기다리면서 자축의 의미에서 레몬 주스를 음미했다.

 

 

페리 선실에서 점점 다가오는 나폴리 항을 바라보았다.

AD 79년 산 정상부의 절반을 날려버릴 정도의 대폭발로 폼페이 도시를 일거에 화산재로 묻어버린 베수비오(Mount Vesuvius 1,281m) 화산이 병풍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그 당시 풍향이 조금만 달라졌어도 폼페이가 아닌 나폴리에 유독 가스와 화산재가 불어닥쳤을 거라고 한다.  

지금은 쌍봉 낙타 등처럼 쉬고 있지만 베수비오 산은 1906년과 1944년에도 화산이 폭발하여 적잖은 피해를 입힌 활화산으로 분류되어 있다.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라는 나폴리 항에 내렸다.

우리 인생이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에선 비극이라더니 나폴리 항은 부두나 거리가 지저분하고 혼잡했다.

나폴리 항에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버스가 몹시 반가웠다. 버스로 숙소인 항구 부근 호텔까지는 10분 거리였으나 퇴근시간 트래픽까지 겹치는 바람에 1시간 가까이 걸렸다.

 

한친관광 측 영업전략인지 여행 일정의 뒤로 갈수록 호텔의 급이 높아졌다.

우리가 투숙하는 로열 컨티넨털 호텔은 바다에 면한 데다가 결혼식 피로연 같은 이벤트가 열리는지 세련된 차림의 젊은이들이 호텔 로비를 오고 갔다. 메자닌 Floor A에서는 가끔 환호성과 웃음소리고 들렸다.

작년 프랑스 일주 여행 때도 거의 마지막 일정인 니스에서 해변의 고급호텔에 묵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 퇴근시간의 양보 없는 무질서 속에서 차량들이 조금씩 이동하는 게 신기했다.
* 우리가 투숙한 방에서도 건물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Note

1]  Come Back to Sorrento (伊 Torna a Surriento)

Verse 1

Sunlight dances on the sea  Tender thoughts occur to me

I have often seen your eyes  In the nighttime when I dream

Chorus (refrain)

Come back to Sorrento  Bring me back to life

Oh, how I long to see you again  My love, my heart, my wife

Verse 2

When I pass a garden fair  And the scent is in the air

A perfume so fine  It goes into my heart

Chorus (refrain)

Bridge

Look, the sea in Sorrento  What treasures it keeps on the bottom

Who travelled all over the world  Didn't see something like here

Chorus<(refrain)

Outro

Don't leave me, don't give me such torments.  Come back to Sorrento Make me alive.

 

가사를 보면 소렌토를 떠난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어서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내용으로 애향심을 촉구하는 대표적인 이태리 가곡이다. 이 노래가 널리 알려진 것은 소렌토를 방문한 이태리 총리에게 소렌토의 하수도 시설을 갖춰달라며 하소연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이탈리아 7.  폼페이, 포지타노, 아말피

 

이탈리아 5.  아시시, 티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