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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5] 아시시, 티볼리

Onepark 2024. 5. 18. 19:00

이번 한진관광 여행상품이 돋보인 것 중의 하나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당을 찾아간다는 것이었다.

아시시의 성인 성 프란치스코 (Francesco d'Assisi, 1182~1226)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음에도 평생 청빈을 모토로 작은 형제회를 통해 탁발을 하며 봉사 활동을 하였기에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건축에 관심이 많은 친구는 로마와 피렌체를 자동차로 다닐 때 중간에 있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당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음을 아쉬워했다. 그는 미국 서부에 있는 소크 백신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 건물이 몇 차례의 수정 끝에 아시시 성당의 단순소박미(Simplicity)를 모티브로 하여 지어졌다고 말했다. 나는 직접 가볼 참이었다.

 

프란치스코 수도사는 정식으로 사제 서품을 받은 적은 없으나 교황을 알현하고 사랑과 청빈에 대해 설파하였다. 그가 이끌던 작은 형제회는 1210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로부터 프란치스코 수도회(the religious order of the Franciscans)로 승인을 받았다(최종승인은 극단적인 청빈의무를 완화한 회칙(Regula Bullata)을 1223년 교황 호노리오 3세가 인준함으로써 이루어짐). 프란치스코는 그가 태어난 아시시에 묻혔고 그의 무덤이 있는 곳에 성당(Basilica di San Francesco d'Assisi)이 세워졌다. 그의 기도 중에 나타났던 그리스도 십자가의 상흔을 인정 받아 사후 2년 만에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프란치스코의 사상은 중세 이탈리아와 유럽 각국에 큰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에도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 아시시의 얕은 산 중턱에서도 토스카나의 평원이 시원하게 보였다.
* 아레쪼에서 성 프란치스코는 사람들의 마음을 분열시키는 사탄을 기도로 쫓아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성당 소장.
* 우리 일행은 아시시의 주차장에서 버스에서 내려 본격적으로 아시시 관광을 할 채비를 하였다.
* 프란치스코의 첫 제자가 된 키아라 성녀를 기리는 성 키아라 성당
* 나는 걸어 돌아다니는 것보다 토스카나의 평원을 '멍' 때리며 보는 것이 더 좋았다.

 

* 아시시의 Chiesa Nuova (새 교회) 성당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숱하게 많은 성당을 외관만 보거나 직접 안에 들어가보기도 했다.

크리스천으로서 나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무엇을 기원하였는가.

일단 아내를 비롯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그런대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무사히 귀국하는 것을 빌고 또 빌었다.

비록 진통제에 의존하고 있지만 상태가 나날이 크게 나빠지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 이탈리아는 어느 마을이나 그 중심에는 성당과 광장, 이같은 분수대가 있다.
* 아시시 시청 앞의 시계탑이 있는 성당은 본래 넵튠 신을 모신 사당이었으나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되었다.
*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Catherine)가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를 안고 있다.

 

이번 여행의 중요한 목적지 중의 하나인 프란치스코 성당 앞에 이르렀다.

다리를 절뚝이며 걷다 보니 관광객이 아니라 절로 구도자(求道者)의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사실 단순 관광이 목적이라면 다른 사람의 말만 들어도, 구체적인 것을 원하면 여행기를 읽거나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사진 길을 힘겹게 걸어서 온다는 것은 그 장소의 외양 뿐만 아니라 그 분위기까지 느껴보고 싶어서 오는 것 아니겠는가? 

전에 시각장애인으로서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에 유학, 백악관 고위관료를 지낸 강영우 박사가 한 말이 생각이 난다. "눈도 안 보이는 사람이 관광을 가서 뭘 보냐"고 힐난하지만 자기는 정상인보다 더 많은 것을 뺨을 스치는 바람결과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나 역시 성당 내부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부터 단념하였지만 성당 앞 잔디밭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타고 가는 젊은이의 동상이 서 있는 것을 여기 와서 보고 처음 알았다.

그것은 부유한 가정을 배경으로 무공을 세우고 기사(騎士)로서 명예를  얻기 위해 참전을 했던 젊은 프란치스코의 모습이었다. 그는 "전쟁터에서 뭘 하고 있느냐"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홀연히 회심(回心)을 하여 고향 아시시에 돌아왔다.  하나님은 세상 일에 낙심한 사람에게 더 중요한 무엇인가 할 일을 그에게 일깨워 주시는 분임을 보여준다.

나로서도 성당 건물 외관 뿐 아니라 그 정신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고 이를 무료로 공개하여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장애를 면할 수 있게 한 조너스 소크 박사도 이 자리에 와서 나와 같은 생각을 품었을 것이다.

 

* 전쟁터에 나가 있던 프란치스코는 "지금 뭘 하고 있느냐"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 프란치스코 성당은 밀라노와 피렌체, 시에나의 성당과 비교해보면 단순하고 소박하기 그지 없다.
* 아시시의 상가를 통과하지 않고 주차장에서 성당까지 한 달음에 간단하게 올 수 있다.

 

프란치스코 성당 구내에 잠시 체류하였을 뿐임에도 회랑이 있는 이 널찍한 공간은 걸으면서 기도하고 묵언수행하는 용도로 쓰일 수 있음을 알았다.

베트남 출신 틱낫한 (Thích Nhất Hạnh / 釋一行, 1926 - 2022) 스님이 강조한 것도 침묵 속에 걸으며 명상하라는 것이었다. 

틱낫한 스님은 월남이 패망한 후 프랑스 보르도에 플럼 빌리지(매화 마을)를 세우고 제자들과 함께 걸으며 수행을 하고 일상 속에서의 구도생활을 강조했다.

 

 

아시시 버스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그만 몇 분 만에 속세로 내려온 기분이 들었다.

일정에는 없었으나 일행 중 주부들의 열화같은 요청에 따라 현지 가이드가 여러 사람이 들어가 선물을 구입할 수 있는 수퍼마켓으로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가정주부라면 수퍼마켓 진열대만 둘러보아도 이곳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사는지 알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현지 가이드는 이탈리아 캐시어는 일처리가 한국인만큼 빠르지 않으므로 복잡한 것은 시키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 성당으로 올라갈 때 번잡한 상가(세상 유혹?)를 거치지 않고 주차장에서 곧바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 아시시에서 점심을 먹기 전에 CONAD라는 수퍼마켓에 들렀다.
* 아니나 다를까 수퍼 출구에서는 난민 청년이 동전을 구걸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쉬운 대로 짧은 시간 수퍼마켓 견학(?)을 마치고 예약해 둔 중국 음식점으로 갔다.

수북한 쌀밥에 우리 입맛과는 다르지만 미역국, 마파두부, 탕수육, 야채 요리가 여러 접시 테이블 위에 차례차례 올려졌다. 중국집 원탁 테이블에 있는 회전판이 없어서 옆사람의 도움을 받아가며 이탈리아에서 먹는 중국 음식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런 대로 맛있게 먹었다.   

 

* 이탈리아에 와서 젊은이들이 팔과 다리에 태투를 많이 한 것을 보고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탈리아를 여러 날 여행하는 동안 이 나라가 당면한 여러 문제가 눈에 띄었다.

제일 심각한 문제는 남부와 북부의 GDP와 소득수준이 배 이상 차이가 나는 남북갈등의 문제였다. 이 문제를 코믹하게 다룬 영화 〈웰컴 투 사우스〉(2010)가 이탈리아에서 크게 화제와 인기를 모았다고 한다.

둘째는 시칠리아에서 일어난 마피아 조직이 각 분야로 세력을 뻗침에 따라 법치주의가 위협을 받고 모럴해저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였다.

셋째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난민이 계속 유입되고 이들이 사회불안 요인이 되고 있는 점이었다. 이탈리아 젊은이들의 실업률도 높은 터라 난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좀더 잘 사는 나라로 떠나는 것을 목표로 하니 당국에서도 적극적인 난민대책을 세우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로마제국 시대부터 황제와 귀족들의 별장지로 각광을 받았던 로마 근교의 티볼리에 있는 빌라 데스테(Villa d'Este) 였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귀족들의 호화로운 저택과 정원을 엿볼 수 있고 특히 이곳 정원의 분수가 유명하여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다. 이 저택의 주인은 '金수저'과로 교황 선거에서 진 후 이곳에서 살았던 이폴리토 추기경(Cardinal Ippolito II d'Este, 1509-1572)이라 했다.

 

우리 일행은 미리 온라인으로 예약하였으므로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입장하였으나 나의 오른쪽 발목이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내일의 일정을 위해 전망이 좋은 개선문 같은 건축물 앞에 앉아 다른 일행이 정원과 분수를 보고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물론 아내도 가이드를 따라 일행과 함께 계단을 내려갔으나 우리는 이미 러시아 황제의 여름궁전에서 이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분수 쇼를 구경한 바 있었다. 또한 분수 쇼로 말할 것 같으면 두바이나 LV 벨라지오 호텔은 차치하고 필라델피아 근교 롱우드가든에 있는 듀퐁 정원의 분수 쇼만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이폴리토 추기경의 개인 예배당 치고는 화려해 보였다.

 

빌라 데스테의 자랑거리 중의 하나인 빌라 데스테 중정에 있는 비너스 분수도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조각을 하나 하나 뜯어 보니 이 빌라 주인의 성격과 면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직자라서 그런지 비너스의 누드상은 아래 감춰진 듯 비스듬히 누워 있었고 날개를 편 독수리와 주위를 경계하고 먹이감을 찾는 독수리가 여러 마리 자리하고 있었다. 중앙의 정원에는 낙원에 있음직한 온갖 기화요초가 심어져 있음을 볼 수 있었다.

 

* 상당히 경사진 언덕 위에 이렇게 큰 예배당과 빌라, 분수가 있는 정원을 조성했다는 게 놀라웠다.
* 나이든 외국의 관광객들도 나와 같이 백장미꽃 그늘 아래 의자에 앉아서 쉬는 것을 택했다.

 

* 이폴리토 추기경이 벽감에 모셔놓았을 정도라면 플라톤의 두상이라고 추정된다.
* 정원에 내려간 아내가 찍어온 정원과 분수대 밑 통로에서 바라본 분수의 낙하 모습
* 전형적인 중세 성곽의 모습을 보여주는 티볼리의 Rocca Pia 성채

 

티볼리 관광을 마친 우리 일행은 로마 교외에 있는 셰라톤 리조트 호텔(Sheraton Rome Parco de Medici)로 갔다.

그런데 1관, 2관, 3관으로 나뉘어 있어 약간의 혼선이 생기는 바람에 버스에서 짐을 내렸다가 다시 싣는 해프닝도 있었다.

우리가 투숙한 3관도 시설이 아주 모던하고 모두 지상층에 방이 배정되어 짐을 싣고 오르내릴 필요가 없었다. 마침 중국 전기차 업체 BYD가 신차 발표회를 준비하고 있어서 중국의 젊은 회사원들이 회의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또 한 가지 이탈리아의 청원경찰인 카라비니에리(carabinieri) 본부가 같은 건물에 있어 짙은 곤색 제복을 입은 남성들이 투숙객 못지 않게 돌아다녔다.

호텔 만찬은 2관에 있는 레스토랑을 이용해야 했으므로 보행이 불편한 나와 아내는 불과 2분 거리이지만 가고 올 때 셔틀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 이날 만찬에서 오병섭 팀장이 남은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Cheer-up하는 의미에서 테이블마다 와인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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