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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The Older, the Better

Onepark 2023. 11. 23. 16:00

세월이 흐를수록 향기를 더하는 것은 좋은 술과 고상한 인격이 남겨놓은 작품이라고 했던가! 

후자의 사례로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비록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어도 존경 받는 스승의 품격을 이 그림에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또 다른 사례는 개인적이긴 하지만 나보다 12년 선배인 매형 김민홍 교수라 생각한다.

일찍이 국영기업체에서 근무하다 누님과 사귀고 결혼을 하셨는데, 우리나라 컴퓨터 도입 초창기부터 컴퓨터 엔지니어로서 활약하셨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경야독으로 데이터베이스 박사(+국가공인 정보처리사)가 되어 경기대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2006년에 정년퇴직하셨다. 어찌보면 내가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미국 로스쿨로 학술연수 다녀온 후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교수를 하게 된 것도 매형의 영향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호주 유학을 다녀오신 터라 누님과 결혼하기 전부터 나이 어린 처남에게 여러가지 新문물을 가르쳐주셨던 것이다.

 

 

얼마 전 누님이 명동에 있는 갤러리 1898에서 매형이 경기고 55회 동기들과 전시회를 연다고 소식을 전해 오셨다.

춥지 않은 소설(小雪)을 맞은 11월 명동 거리에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보이고 단풍 든 나뭇잎도 제법 남아 있었다.

그리고 고딕식 위용을 자랑하는 명동 대성당은 종현(鐘峴) 마루 아래의 인파로부터 거리를 둔 모습이었다.

갤러리 1898은 대성당이 완공된 해를 기념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라 한다. 

 

 

장동호 작가의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 상과 聖 모자상을 나란히 배치한 것만으로 웬지 모를 평화와 안식을 느낄 수 있었다.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신 성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우리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시기 때문이리라.

 

* 회원 중에는 사진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유명을 달리하신 분도 있었다.

 

매형의 사진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갤러리 #3을 둘러보고 갤러리 #2와 갤러리 #1에 전시된 작품들도 감상하는 안복(眼福)을 누렸다. 이날 전시장을 지키고 계신 이건형  회장님으로부터 전시작품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우선 사진 동호회에는 디지털 카메라든 필름 카메라든 휴대폰 카메라든 아니면 카메라 없이도 1959년에 졸업한 경기고 55회 동창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동호회 이름도 영문 첫머리 글자를 따서 DiFiPhoNo로 지으셨단다. 다들 은퇴한 후에 주로 야외로 다니면서 예술적인 심미안도 키우고 우정을 돈독히 할 수 있으니 더 말할 나위없이 좋다고 덧붙이셨다.

고교 동창들 10여 명 한 달에 한 번씩 출사를 나간다고 하셨다. 회장님이 요즘 사진을 오랜 기다림 끝 촬영의 순간도 중요하지만 어떤 것을 보여주느냐 하는 리프로덕션도 아주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 김민홍, "어둠의 끝", 2023.

 

다들 아마추어의 솜씨이지만 프로 작가 다운 촬영 기법이나 아주 세련된 인화 보정 기술을 구사한 작품도 보였다. 

이미 여든을 훌쩍 넘으신 분들인데 그 열정만큼은 어느 사진작품 전시회 못지 않았다.

우리 매형도 총각 때부터 라이카 카메라, 니콘 카메라를 갖고 계셨기에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한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은퇴 후의 이런 활동 모습을 보니
제게는 조금도 나이들어 보이시지 않아요.
마치 잘 숙성된 향기 좋은 포도주 같아요."

To me, fair brother, you never can be old.
The older, the better.

 

* 신성태 카타리나, "아! 주님"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혐오 풍조가 만연한 요즘 "The older, the better."란 말이 통할 수 있을까?

뜻밖에도 영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의 버킹엄 궁 만찬사(banquet speech)에 그 답이 들어 있었다.

 

어제오늘 뉴스 시간에는 수교 140주년을 맞아 영국을 국빈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부처가 왕실 마차를 타고 버킹엄 궁으로 가는 장면을 보여줬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서 상원과 하원 의원들이 윤 대통령의 영어 연설을 경청하는 모습은 우리 국민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170명이 모인 만찬장에서 찰스 3세 국왕이 윤동주의 시[1] 구절을 인용하여 만찬 스피치를 하고 "위하여" 건배사를 하는 것이랄지, 그에 응답하듯 윤 대통령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구절을 인용하여 답사를 하는 모습은 전례가 없는 장면들이었다. 평소 국내외 시를 한-영 대역으로 소개해 온 나로서는 놀랍기도 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역시 찰스3세 국왕과 윤석열 대통령의 만찬사는 도하 언론에서도 큰 화젯거리였다. 

King Charles III warmly welcomed the visiting president partly in Korean during his speech, adding more heat to the banquet. “Korea’s preservation of its sense of self, amid bewildering change, was perhaps what the poet Yun Dong-ju, who tragically died in captivity on the very eve of Korea’s liberation, anticipated when he wrote: While the wind keeps blowing, My feet stand upon a rock. While the river keeps flowing, My feet stand upon a hill,” King Charles said.

Dong-A Ilbo, "King Charles welcomes President Yoon with state banquet", November 23, 2023.

 

찰스3세 국왕과 카밀라 왕비는 윤석열 대통령 부처를 위하여 버킹엄 궁에서 국빈 만찬을 베풀었다. 170여명의 양국 초대손님 중에는 K팝 걸그룹 블랙핑크도 있었다. 찰스 왕은 블랙핑크의 4멤버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이들이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전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에 앞장서왔다고 찬사를 보냈다.[2] 그리고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잘 배우지 못했다고 조크를 하기도 했다. 

Charles said in his banquet speech, “I can only admire how ]those four members of Black Pink] can prioritize these vital issues, as well as being global superstars."

"Sadly, when I was in Seoul all those years ago, I am not sure I developed much of what might be called the Gangnam Style!” he joked, referring to the global hit song by Korean rapper Psy.

 

우리들에게 "서시(序詩)"로 많이 알려진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1. 6. 2) 목차의 세 번째로 실렸던 시이다. 시인의 생전에 정식 출간되었던 것은 아니고 친구가 일본 경찰에 압수당할 수도 있던 그의 시 원고를 숨겨두었다가 해방 후 출판한 우여곡절이 많은 시집이었다.

"바람이 불어" 시도 현실에 안주하는 삶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하고 있어 수능시험에 출제가 유력시된다고 한다.[1]

 

 

바람이 불어  - 윤동주

The Wind Blows  by Yoon Dong-ju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Where does the wind come from
and where it is being blown,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理由)가 없다.

The wind is blowing.
There is no reason for my suffering.

내 괴로움에는 이유(理由)가 없을까,

Is there no reason for my suffering?

단 한 여자(女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時代)를 슬퍼한 일도 없다.

I have never loved a single woman.
Nor have I ever mourned for an age.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While the wind keeps blowing,
My feet stand upon a rock.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While the river keeps flowing,
My feet stand upon a hill.

 

영국 찰스3세 국왕의 만찬 스피치(State Banquet  YouTube 동영상).[2]

 

* Channel A YouTube 영상 캡쳐
* TV Chosun 뉴스 영상 캡쳐

 

다음은 윤 대통령의 만찬사 답사에서 첫 구절이 인용되었던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04번[3]의 전문과 그 번역문이다.

계절이 여러 번 변하였음에도 변치 않는 연인의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잘 묘사한 정형시로 많이 알려져 있다.  

 

Sonnet 104 by William Shakespeare

소네트 104  - 셰익스피어

 

To me, fair friend, you never can be old,

For as you were when first your eye I eyed,

Such seems your beauty still. Three winters cold

Have from the forests shook three summers’ pride,

Three beauteous springs to yellow autumn turned

In process of the seasons have I seen,

Three April perfumes in three hot Junes burned,

Since first I saw you fresh, which yet are green.

Ah, yet doth beauty, like a dial-hand,

Steal from his figure, and no pace perceived;

So your sweet hue, which methinks still doth stand,

Hath motion, and mine eye may be deceived:

   For fear of which, hear this, thou age unbred:

   Ere you were born was beauty’s summer dead.

아름다운 이여, 내게 있어 그대는 결코 나이들지 않으니,

나 그대 눈 처음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아름답기에 세 번의 추운 겨울이

숲에서 여름의 수려함을 흔들어 놓았고,

세 번의 아름다운 봄이 황금빛 가을이 되었으니

계절의 변화 속에서 나는 보았네,

세 번의 4월 향기가 세 번의 뜨거운 6월에 불타오른 것을,

여전히 푸르른 그대를 처음 보았던 이후로.

아! 그러나 아름다움은, 마치 시곗바늘처럼,

아무도 모르게 자취도 없이 달아나니.

내게는 여전히 멈추어져 있는 듯한,

그대의 사랑스런 모습도, 움직이지만, 내 눈이 그저 속고 있을 뿐.

이것이 두렵다면, 이 말을 듣기를, 그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여.

그대가 태어나기 전에 아름다운 여름은 이미 죽었다는 것을.

 

Note

1] 윤동주의 시 "바람이 불어"는 일제 강점기의 부당한 시대 현실 앞에서 방관자로 남은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는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시인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이 흘러가는 '바람'을 느끼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뭔지 모를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시대'를 언급한 것은 일제 치하에서 온 국민이 느끼는 마음과 같을 것이다. 마지막 두 연에서는 동일한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바람과 강물이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반석과 언덕은 머물러 있는 삶의 나타내는 것이다. 즉 시인은 바람이 불고 강물이 흐르고 있음에도 자신은 바위 위에, 또 언덕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자신을 '성찰'이라고 할까 자책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독자는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 주변이 정신없이 급변하고 있음에도 자신을 갖고 중심을 잡고 있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2] 찰스 3세 국왕의 만찬장에서 또 다른 화제는 찰스 왕과 윤 대통령의 스피치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 BTS와 함께 K팝을 대표하는 블랙핑크였다. 세계적인 인플루언서답게 이들은 그 전날 런던에서 열린 COP26 회의( 2021년부터 영국이 의장국을 맡아온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말함)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등 홍보대사로 활동해온 공로를 기려 찰스 3세 국왕이 대영제국 훈장(Honorary Members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이들 4명에게 수여했다.

 

* 왼쪽부터 Lisa (Lalisa Manoban), Rose (Roseanne Park), Jisoo Kim, Jennie Kim

 

3] 셰익스피어는 모두 154편의 연작시 소네트를 남겼다. 위에 소개한 소네트 104번 번역시의 출처는 Naver blog "As You Like It!" 참조.

Sonnet란 14행의 약강격(弱强格 iambic)의 5음보(五音步 pentameter)로 운을 맞춘 정형시이다. 그 형식은 13세기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확립되었는데 소네트의 구조를 보면 처음 8행이 명제(命題 proposition)의 제시이고 나머지 6행은 그의 해결 부분이다. 전 8행(octave)과 후 6행(sestet) 사이의 변화는 4행과 5행 혹은 11행과 12행에서 이루어진다.

영국의 소네트는 셰익스피어가 가장 훌륭히 사용하였다. 그 형식은 각운이 a-b-a-b, c-d-c-d, e-f-e-f, g-g 타입이며 옥타브와 세스텟의 변화는 이탈리아와 같지만 마지막 2행에 경구적(驚句的) 내용을 삽입함으로써 전체적인 구조에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중점적인 변화는 12~13행 사이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