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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오규원의 "비가 와도 젖은 자는"

Onepark 2022. 7. 14. 07:00

장마철엔 거의 매일 비가 온다.

장마 전선이 한반도를 오르내리면서 많은 비를 뿌리기 때문이다.

금년처럼 봄가뭄이 심한 경우에는 장마의 시작을 고대하는 형편이었다.

엊그제 창 밖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오규원의 "비가 와도 … " 시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오규원(吳圭原, 본명 吳圭沃, 1941~2007) 시인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내면서 수많은 문인을 길러냈다.[1]

창작 이론서 <현대시작법>은 시를 쓰려는 사람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지금도 속간되고 있는 시작(詩作) 교과서다. 습작단계에서 빠질 수 있는 잘못된 습성을 바로 잡아주면서, 마치 백과사전 같은 시의 수많은 표현기법을 알려준다.

 

* 한옥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다. 사진캡처: YouTube 한옥에서의 비오는 소리.

 

비가 와도 젖은 자는 / 순례 1 - 오규원

A Wet Man on a Rainy Day - Pilgrimage 1   by Oh Gyu-won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다시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You and I couldn’t stop the rain.
Instead we stopped under the eaves.
Later I wanted to stay at the place.
So I stopped there once again.

비가 온다, 비가 와도

강(江)은 젖지 않는다.

나를 젖게 해놓고, 내안에서

그대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It’s raining. Tho’ it’s rainy,
the river wouldn’t get wet.
After it makes me drenched, inside me,
time moves

to you without getting wet.
After we have left,
it will go to the field alone between raindrops.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 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 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Flowing alone, the river flows and
fanned away this summer up to the hills.
Flying swiftly, being caught on trees on a hill,
an outfit of summer remains there for a while.

어족(魚族)은 강을 거슬러 올라

하늘이 닿은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번뇌, 날짐승 이런 이름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Fish move up the river, and
for the moment, stop at the place nearest to the sky.
In such a name as tree, human agony, bird, and so on,
they have rest for a while.
Becoming the names by themselves, they leave the river.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It’s raining. Tho’ it’s rainy,
the wet man wouldn’t get wet.

 

* 비오는 날의 강변. 사진출처: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인디카.

 

오규원의 시는 많은 평자들이 "이미지가 날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의아했었다. 그러나 영어로 옮기면서 한 줄 한 줄 되풀이해서 읽을 때마다 그 의미와 이미지가 새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위의 시에서 시인이 특별히 장맛비를 언급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소나기 같이 지나가는 비가 아니라 판단하고 건물 처마밑으로 가서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그대와 무슨 사연을 만들었음직 하다. 그렇기에 나중에 그곳을 다시 찾아가 보았을 것이다.

 

시인이 습관적으로 지켜 보았을 강물은 비와 같은 물(水) 계통이므로 아무리 비가 와도 젖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푹 젖어 있는데도 그대는 별로 젖어 있는 기색이 보이지 않아 초조해진다. 시간이 흘러도 나를 대하는 그대의 마음이나 태도에 아무런 변화도 엿보이질 않자 결국 우리는 헤어지고 만다. 그렇다면 나 혼자 마음 졸였던 시간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 시간이란 놈은 나의 애만 태우고 오늘도 내리는 빗속에 들판으로 사라져 버렸단 말인가.

다시 나 홀로 쓸쓸히 강가로 나간다. 이미 여름은 지나갔고 언덕 위의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그대의 옷차림 같은 푸른 빛이 일부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시를 반드시 위와 같이 남녀간의 사랑 시(戀詩)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마지막 두 연에서 시인은 전혀 다른 광경을 목도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강물 속에 연어 같은 물고기 떼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눈에 띈다.  아마도 산란할 자리를 찾아 올라가는 거겠지. 올라가다가 더러는 사람에게 잡히고, 더러는 짐승의 먹이가 되고, 마지막 산란 후에는 해체가 된 후 물속의 자양분이 되어 각기 사람과 짐승과 풀나무의 몸으로 바뀌고 말겠지.

 

이렇게 생각이 미치자 시인은 돌연 자연의 오묘한 이치(哲理)를 깨닫게 된다. 자연은 순환할 테고 지금 내리는 비에 한번 젖은 자는 이미 자연순환계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를 피하기 위해 처마 밑으로 뛰어들어 가는 것처럼 더 이상 비에 젖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다.

나는 이미 '자연의 순례 길'을 떠났으므로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조용히 바라볼 뿐이다. 그대를 향해 마음이 움직이는 거나 비가 내리는 거나 별반 차이가 없음을 느낀다.

 

가는 세월 무상(無常)타 하지마오
[본디] 순례(巡禮)의 길이니

Time flies!   Don’t say it’s mutable
cause we’ve been on the road of pilgrimage.

 

Note

1] 오규원(사진)의 생전에 신경숙, 장석남, 하성란 등 제자 문인 46명이 그와의 추억과 인연을 회고한 <문학을 꿈꾸는 시절>을 회갑기념문집으로 냈는데 그로부터 몇 년 뒤 타계했다. 강화도 전등사 인근에 시인의 수목장 '시목(詩木)'이 있다.

2017년 2월 그의 서울예대 문창과 제자들과 동료 교수들로 구성된 ‘오규원 10주기 준비위원회’는 강화도에 있는 시인의 ‘시목’(詩木)을 참배하고 서울 청운동 갤러리 류가헌에서 시 낭독회를 여는 등 다양한 추모 행사를 열었다. 또 시인의 유품전시회, 고인의 사진집 <무릉의 저녁>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1970년 <문학과지성>을 창간하였을 때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화장품회사 홍보지 편집・제작을 담당하고 있던 오규원은 아무 조건도 달지 않고 장래가 불투명한 창간잡지에 몇 년 동안 후원금을 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당신들의 천국>(이청준)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의 표지 장정을 하고, 시집 총서 ‘문지 시인선’ 표지 포맷을 지금 형태로 만든 것도 오규원이었다. 출처: 최재봉, “오규원 시인 벌써 10주기…추모전 등 봇물", 한겨레, 20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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