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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Day] 하루키의 또 다른 세계

Onepark 2022. 7. 13. 07:00

G : 7월 Book's Day에는 휴가 시즌에 맞는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P : 네, 휴가 중에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떠올리다가 한 작가의 책을 많이 읽기도 했고 그의 작품 성향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골랐습니다. 아주 오래 전 작가 활동 초기에 발표되었던 소설이지만 작가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1992)이라는 책입니다.

 

G :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은 저도 읽었습니다. 하루키는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아주 인기가 많은 작가 아닌가요?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오르내린다고 들었습니다.

P : 그렇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1949~  )는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1Q84》, 《기사단장 죽이기》 등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 셀러 작가이지요.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평행우주(Parallel Universe)를 논하는 등 '뉴에이지 문학'의 장르에서도 하루키는 대표주자에 속합니다.

 

G : 그의 수필도 인기가 있어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소확행(小確幸)', 미국의 재즈 명곡 소개 같은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었어요.

P : 하루키는 다작을 하지만 한두 가지 이슈가 될 만한 이야기를 꼭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1Q84》는 평행우주 못지 않게 신흥종교단체 사이비 교주의 엽색 행각을 처단한다는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서도 공감을 얻을 수 있었지요.

 

G : 그럼 《국경의 남쪽, . . . 》이라면 일본인의 입장에서 어느 나라를 가리키는가요?

P : 냇킹콜의 레파토리 중에 "South of the Border"라는 곡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냇킹콜이 부른 노래는 없다고 해요. [잠재적 범죄자가] 훨씬 자유롭게 금지된 행동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미국의 남쪽 멕시코로 떠나는 것을 상상하는 거죠. 이를테면 법률이나 윤리 규범이 자신의 행동을 가로막지 않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라 합니다.

주인공 하지메는 하루키의 분신(avatar)이 아닌가 여겨지는 인물인데요. 보통의 사람과는 달리 아주 독특한(eccentric) 생각을 하는 37세의 남자입니다. 첫사랑의 추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실의 시대》 남자 주인공과 아주 흡사합니다.

 

나는 현실 세계와 꿈의 영역과의 경계가 상당히 애매해서, 동경(憧憬)이라고 하는 것이 압도적이리만큼 위력을 발휘하는 십대의 초기에조차, 예쁜 여자애들에 대해 그녀들이 그저 예쁘다는 것만으로 마음을 이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가 아주 강렬하게 이끌리는 것은, 수량화·일반화할 수 있는 외면적인 아름다움이 아니고, 그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한층 절대적인 무엇인 것이다. 나는 어떤 종류의 인간들이 호우나 지진이나 정전을 남몰래 애호하듯이 성(性)이 나에 대하여 발하는 그런 류의 강렬하고 은밀한 어떤 것을 애호하는 것이다. 그 어떤 것을, 여기에서는 잠정적으로 '흡인력'이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좋아하고 말고에 관계없이 사람을 끌어당기고 빨아들이는 힘이다.

어쩌면 그 힘을 향수의 냄새에 비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작용에 의해, 그런 특별한 힘을 지닌 냄새가 생기는 것인가는 아마도 그것을 만들어낸 조향사(調香師)조차도 설명할 수 없으리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은 어려우리라. 그러나 설명이 가능한가 않은가에 관계없이, 어떤 종류의 향료의 배합은 교미할 시기에 있는 동물의 냄새처럼 이성을 끌어당긴다. 어떤 냄새는 백 명 중 오십 명을 끌어당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과는 달리 백 명 중의 한 명이나 두 명만을 아주 강하게 끌어당기는 냄새도 세상에는 존재한다. 그것은 특별한 냄새다. 그리고 내게는 그런 특별한 냄새를 명확하게 감지해 내는 능력이 있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한 숙명적인 냄새임을 나는 알았다. 저 먼곳에서부터도 분명하게 그 냄새를 가려낼 수가 있었다. 그런 때 나는 그녀들의 곁으로 가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말이야, 난 그걸 알 수 있어 라고. 다른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을지 모르지만,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어 라고. (59-60쪽)

 

대학에 다니던 4년간에 관해 해야 할 얘기는 별로 없다. 대학에 들어갔던 첫해에 나는 몇몇 데모에 참가했고, 경찰대와도 싸웠다. 대학의 스트라이크를 지원했고, 정치적 집회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거기에서 제법 많은 흥미로운 인간들과 서로 알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그런 정치 투쟁에 마음속으로부터 열중할 수가 없었다. 데모에 참가하여 옆에 있는 누군가와 손을 맞잡을 때마다 나는 어쩐지 있기가 거북스러운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경찰대를 향하여 돌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될 때는 왠지 내가 나 자신이 아니게 돼 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진정 내가 바라고 있던 것이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연대감이라고 하는 것을 품을 수가 없었다. 거리를 뒤덮은 폭력의 냄새와, 사람들이 저마다 입에 담는 강경한 언어는, 내 안에서 점점 그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69쪽)

 

G : 하루키는 읽기 편하기도 하지만, 와세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1]했고 스스로도 번역작업을 많이 해서 그런지 영어 번역판은 본인이 먼저 읽어본다고  들었어요.

A : 우리나라의 하루키 열혈 독자[2] 중에도 한글 번역판보다 영어판을 즐겨 읽는다는 사람이 꽤 많이 있어요. 특히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의 경우 저는 처음에 나온 모음사의 김난주 번역판(1993)을 읽었는데 최근에는 문학사상에서 임홍빈 번역판(2022)을 새로 냈다고 합니다.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영화화[3]된 것이 몇 편 안된다는 게 좀 아쉬운 감이 있어요.

 

 

G :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면 등장인물들이 친숙한 편이어서 "친구 10명 중에 그런 사람이 꼭 한두 명은 있어"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들곤 합니다.

P : 하루키는 젊어서 재즈바를 운영[4]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재즈와 비틀즈 음악에 관한 한 전문가, 아니 덕후(mania, 일본에서는 '오다쿠'라 함)의 수준이지요.[5]

 

피아노 트리오가 오리지널 블루스 연주를 끝내고, 피아노가 <스타크로스트 러버즈>(Starcrossed Lovers)의 도입부를 치기 시작했다. 내가 가게에 있으면 그 피아니스트는 곧잘 그 발라드를 연주해 주었다. 내가 그 곡을 좋아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엘링턴이 만든 곡 중에서는 그렇게 유명한 편도 아니고, 그 곡에 얽힌 개인적인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떤 계기로 그 곡을 듣고부터는 나는 오래도록 그 곡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학생 시절에도 교과서 출판사에 근무하고 있을 무렵에도 밤이 되면 듀크 엘링턴의 LP <서치 스위트 샌더>에 들어 있는 <스타크로스트 러버즈>의 트랙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거듭해 듣곤 했던 것이다. 그 연주에서는 조니 허지스가 감각적이고 기품 있는 솔로를 맡고 있었다. 그 나른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듣고 있으면 당시의 일들이 언제고 한결같이 내 머리에 되살아났다. 별로 행복한 시절이라고는 할 수 없었고, 나는 채워지지 않는 가슴을 안고 살고 있었다. 나는 훨씬 젊었고, 훨씬 굶주려 있었고, 훨씬 고독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단순하게, 마치 잘 벼려진 칼날처럼 나 자신이었다. 그 무렵에는 듣고 있는 음악의 한 음 한 음이 읽고 있는 책의 한 줄 한 줄이 몸에 사무쳐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신경은 송곳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었고, 나의 눈은 상대를 찌를 듯한 엄격한 빛을 품고 있었다. 그런 시절이었던 것이다. <스타크로스트 러버즈>를 들으면, 나는 늘 그 무렵의 나날들과 거울에 비친 나의 눈을 떠올렸다. (129-130쪽)

 

G :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은 바람둥이는 아니지만 그의 여성편력은 참 대단하다 싶어요. 특히 섹스 면에 있어서요.

P : 평론가들도 그 점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중소설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야하지 않게 관능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성이 뛰어나다고 하는 사람도 많아요. 소설 속에 '이렇게 19금 내용을 써도 되나' 하는 장면도 자주 등장합니다. 이 소설 속에서도 문제의 신은 주인공이 첫사랑의 여인과 오랜만에 만나는 마지막 해후 장면에 나오는데 워낙 상상을 뛰어넘는 내용이라서, 하코네(箱根, 도쿄 근교의 관광 휴양지)의 분위기를 상상하면서 직접 읽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걸어왔는가를 대충 그녀에게 얘기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결국은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만 일, 상세한 사정까지는 일일이 설 평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사건 [그녀의 사촌언니와 육체관계를 맺은 일]이 있어 그 일이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 그리고 또한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혔던 일을 나는 설명했다. 도쿄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을 하고 난 후부터는 교과서를 내는 출판사에 들어갔던 일, 그러나 이십대를 통해 나는 줄곧 고독한 나날을 보냈다는 것. 친구라 할 만한 인간도 없었다는 것. 나는 몇몇 여자와 사귀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행복해지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른 살 가까이 되어 유키코를 만나 결혼하기까지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 시절 곧잘 시마모토를 생각했다. 당신과 만나 설령 한 시간만이라도 좋으니 얘기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고 언제나 생각했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미소 지었다.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렇소."

"나도 늘 당신을 생각했어요"라고 시마모토는 말했다. “언제나 괴로워 견딜 수 없어지면, 당신은 내게 있어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오로지 유일한 친구였던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녀는 카운터에 한 팔로 턱을 괴고 온몸의 힘을 빼듯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에는 반지는 하나도 끼여져 있지 않았다. 가끔씩 그녀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그녀는 눈을 천천히 뜨고 손목 시계를 보았다. 나도 나의 손목 시계를 보았다. 시각은 이미 열두 시에 가까웠다.

그녀는 핸드백을 손에 들고 얌전한 동작으로 의자에서 내려왔다.

"편히 쉬세요.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130~131쪽)

 

* 하지메가 운영하는 Robin's Nest도 이 같은 분위기의 재즈바이다. 출처: LA LA Land.

 

나는 그 얼어붙은 암흑 속을 향하여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시마모토" 하고 몇 번이고 커다란 목소리로 외쳐 불렀다. 그러나 나의 목소리는 끝없는 허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아무리 불러대도 그녀의 그 눈동자 속에 있는 것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기묘한 문틈 사이로 새어드는 바람 소리와도 같은 소리를 내며 숨을 계속 쉬고 있었다. 그 규칙적인 숨결은 그녀가 아직 이쪽 세계에 있음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그 눈동자 속에 있는 것은 모든 것이 죽음으로 두절된 저쪽 세계였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그 암흑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으면서 시마모토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사이에 나는 점차 나 자신의 몸이 그곳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꼭 진공의 공간이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이듯 그 세계는 내 몸을 끌어 잡아당기고 있었다. 나는 그 확실한 힘의 존재를 지금도 되새길 수 있었다. 그때 그들은 우리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247쪽)

 

G : 하루키의 소설 속에는 어느 한 분야의 프로페셔널(professional)이 꼭 등장합니다. 심지어는 프로 킬러(살인청부업자)가 나와서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는 것도 보았어요.

P : 하루키도 일본의 장인정신(匠人精神, 일본에서는 '職人精神'이라 함)을 이어받았다고 할까, '프로페셔널리즘'을 아주 높이 평가합니다. 그것을 소설 속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지요. SF작가가 첨단 과학기술이나 아직 세상에 없는 기기를 설명할 때와 비슷한데 "당신이 나만큼 알아?" 하며 독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녀는 바텐더에게 칵테일 '로빈스 네스트'를 주문했다. 나도 같은 것을 부탁했다. 그녀는 바텐더가 내 준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시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잔을 카운터 위에 놓았다.

"저 하지메 씨, 어째서 이 가게의 칵테일은 어느 것을 마셔도 다른 가게의 것보다 맛있는 걸까요?"

"그 나름의 노력을 치르고 있는 때문이오."라고 나는 말했다. "노력 없이 일이 성사되는 경우는 없지."

"예를 들면 어떤 노력?"

"예를 들면 저 사람 말이오"라고 말하고, 나는 진지한 얼굴 표정으로 아이스 피크로 얼음을 깨고 있는 젊고 핸섬한 바텐더를 가리켰다.

"나는 저 사람에게 아주 많은 월급을 지불하고 있소. 모두들 조금은 깜짝 놀랄 정도로 높은 액수지, 그 일은 다른 종업원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지만 말이오. 왜 그에게만 고액의 급료를 지불하고 있는가 하면, 그에게는 맛있는 칵테일을 만들 수 있는 재능이 있기 때문이오.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는 모양이지만, 재능 없이는 맛있는 칵테일이란 만들 수 없는 거요. 물론 누구라도 노력을 하면 제법 상당한 수준까지는 가능하지. 몇 개월쯤 견습생으로서 훈련하면 손님에게 내주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칵테일은 제대로 만들 수 있게끔 되오. 대부분의 가게에서 손님에게 대접하는 칵테일은 그 정도 수준의 것이오. 그것으로도 물론 통용되지. 하지만 그 다음 수준으로 넘어가기에는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것이라오. 그것은 피아노를 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백 미터 경주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이오. 나 자신도 제법 상당한 칵테일을 만들 수 있소. 꽤나 연구도 많이 했고 연습도 했소. 하나 아무리 노력해도 당해 낼 수가 없어. 같은 술을 넣고, 같은 식으로 같은 시간 만큼 셰이커를 흔들어도 완성된 칵테일의 맛이 달라.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소. 그것은 재능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것이오. 예술과 마찬가지지. 거기에는 한 줄기 선이 있어, 그것을 넘을 수 있는 인간과 넘을 수 없는 인간이 있는 것이오. 그러니까 재능이 있는 인간을 한번 찾아내면 소중하게 다루어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오. 많은 급료도 지불하고."

그 남자는 호모로 덕분에 호모들의 패거리가 카운터에 모이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얌전한 사람들이었고, 나는 특별히 꺼려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가 마음에 들었고, 그는 나를 신뢰하고 열심히 일해 주었다. (139~140쪽)

 

G :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 . . 》에서 그의 특징을 모두 찾아볼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건 무엇인가요?

P : 그것은 ① 읽기 편한 문장으로 독자로 하여금 단숨에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② 주인공은 하루키를 연상케 하는[4] 개성 만점의 보통 남자를 내세운다. ③ 주인공은 재즈와 음악에 높은 소양을 가진 전문가[4]인 경우가 많다. ④ 그는 신비한 세계 - 이 책에서는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라고 하는 신경증 - 에도 관심이 많고 직접 탐구하려 든다. ⑤ 주인공은 비슷한 취향의 여성과 교제를 하면서 상당히 뜸을 들인 후 완숙 단계에 접어들면 아주 관능적인 섹스를 벌인다. 대강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G : 네~ 대강 짐작이 갑니다. 그러한 특색이 모두 흡인력으로 작용할 것 같아요. 그렇다면 '태양의 서쪽'은 무엇이지요? 기독교의 설화인 '에덴의 동쪽' 반대인가요?

P : 소설의 제목에 나오는 '태양의 서쪽' 일화는 다음과 같은 소설 속 콘텍스트에서 등장합니다.

 

나는 손을 뻗어 등받이 위에 있는 그녀의 손가락을 만졌다. 그녀의 몸에 닿는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코마쓰 공항에서 하네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후 처음이었다. 내가 그 손가락에 닿자 그녀는 얼굴을 조금 들고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하고 그녀는 말했다.

"뭐지? 그 태양의 서쪽이라는 것은?"

"그런 장소가 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라고 하는 병(病)에 대해서 들어 본 적 있어요?"

"잘 모르겠는데."

"옛날 어느 책에선가 그런 얘기를 읽은 일이 있어요. 중학생 시절이었든가, 무슨 책이었는지도 도무지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그것은 시베리아에 사는 농부들이 걸리는 병이에요. 있잖아요, 상상해 봐요. 당신이 농부고, 시베리아의 벌판에서 홀로 외로이 살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매일매일 밭을 갈아요.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죠. 북쪽에는 북쪽의 지평 선이 있고, 동쪽에는 동쪽 지평선이 있고, 남쪽에는 남쪽 지평선이 있고, 서쪽에는 서쪽 지평선이 있어요. 그저 그것뿐 당신은 매일 동쪽 지평선에서 태양이 떠오르면 밭으로 나가 일을 하고, 그 태양이 머리 위로 올라와 있으면 일하던 손을 멈추고 점심을 먹고, 그리고 서쪽 지평선으로 해가 기울면 집으로 돌아가 자는 거예요."

"그런 생활은 아오야마 부근에서 바를 경영하고 있는 것과 몹시 다른 종류의 인생일 듯이 들리는데."

"그렇겠죠." 하고 그녀는 말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아주 조금 고개를 기울였다. "몹시 다르겠죠. 그런 생활이 몇 년이고 몇 년이고 매일 계속돼요."

"하지만 시베리아에서는 겨울에는 밭을 갈 수 없을 텐데."

"겨울에는 쉬어요. 물론." 하고 시마모토는 말했다. "겨울에는 집안에 있으면서,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지내죠. 그리고서 봄이 오면 바깥으로 나가 밭일을 해요. 당신은 그런 농부인 거예요. 상상해 봐요."

"해보지."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어느 날 당신의 내면에서 무엇인가가 죽어 버리고 말아요."

"죽다니, 어떤 것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무언가요. 동쪽 지평선에서 떠 올라 높은 하늘을 질러서 서쪽 지평선으로 기울어 가는 태양을 매일매일 거듭해 보고 있는 사이에 당신 속에서 무언가가 뚝하고 끊어져서는 죽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지면에다 괭이를 내던지고는 그대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서쪽을 향하여 걸어가는 거예요. 태양의 서쪽을 향해서, 그리고는 무엇에 흘린 듯이 며칠이고 며칠이고 아무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않고 줄곧 걷다가 그대로 지면에 쓰러져 죽고 말아요. 그게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나는 대지에 엎드려 죽어가는 시베리아 농부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태양의 서쪽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데?" 하고 나는 물었다.

그녀는 또 고개를 저었다. "난 모르죠.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는지도 몰라요. 아니면 무엇인가가 있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아무튼 그것은 국경의 남쪽과 좀 다른 곳이에요."  (235~237쪽)

 

* Starcrossed Lovers? Source: LA LA Land

 

그날 밤 우리는 유보도 없이 서로를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를 뒤에 남겨두고, 한마디 설명도 없이 혼자서 어딘가로 떠나가 버리고 말았다. 시마모토는 내게 주겠노라고 한 레코드마저 함께 가지고 가버린 것이다. 그러한 그녀의 행위가 의미하는 바를 나는 어떻게든 추측해 보려고 했다. 거기에는 무슨 의미가 있고,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시마모토는 그 자리에서의 즉흥적 생각으로 행동하거나 하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끝까지 파고들어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는 게 불가능해져 버렸다. 모든 사고의 끈이 내 머리로부터 소리도 없이 흘러 떨어져 갔다. 그래도 억지로 무언가를 생각하려고 하면 머릿속으로 둔중한 통증이 달려왔다.

나는 자신이 몹시 지쳐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한 번 눈을 감아 버리고 나자 뜰 수가 없어져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억을 되살려내는 일뿐이었다. 생각하기를 단념하고 끝없는 테이프를 돌리는 것처럼 그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끝없이 사실만을 거듭하여 기억해 내는 일. 나는 시마모토의 몸을 떠올렸다. 눈을 감고, 스토브 앞에서 알몸이 되어 누워 있던 그녀의 육체를, 그리고 몸에 있었던 것을 하나하나 되새겨 갔다. 그녀의 목과 유방과 옆구리와 음모와 성기와 등과 허리와 다리를, 그것들의 상(像)은 너무나도 가까이에 있었고, 너무나도 선명했다. 어떤 경우에는 현실보다도 훨씬 가깝고 선명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좁은 방 안에서 그렇게 생생한 환영에 둘러싸여 있음에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서 나와 그 주변을 목적도 없이 걸어 돌아다녔다.  (255쪽)

 

G :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라고 소설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게 좋겠네요.

P : 물론입니다. 그의 소설은 재미있지만 책을 덮은 후에는 뭔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예요. 주인공이 영웅적인 것도 아니고 우리와 비슷한 평범한 사람인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이만하는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죠.

 

"결국 나는 당신을 만나러 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것은 처음부터 나도 알고 있었어요.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어요. 하자만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든 당신의 얼굴을 보고 싶었고, 당신을 앞에 하고 보니 말을 걸지 않고서는 안 되었어요. 하지메 씨, 그게 나예요. 나는 그렇게 할 생각도 없는데, 최후에는 언제나 모든 것을 망가뜨려 버려요."

앞으로 시마모토와 만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 나의 기억 속에서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내 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는 거기에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져 버렸다. 거기에는 중간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간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는, 중간이란 것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국경의 남쪽에는 아마도는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양의 서쪽에는 아마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매일 거기에 자살한 여자를 다룬 기사는 없는가 하고 신문을 구석구석 읽었다. 그러나 그럴 법한 기사는 발견되지 않았다. 세상에서는 매일 많은 사람들이 자살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다른 타인이었다. 멋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아름다운 서른일곱 살의 여자는 내가 알고 있는 한 아직 자살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단지 내 앞에서 없어져 버린 것뿐이었다.

나는 외견상으로는 이전과 거의 변함 없는 일상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대개는 매일 아침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데리러 갔다. 나는 자동차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때때로 유치원 앞에서 예의 260E를 타고 다니는 젊은 여자와 만나 얘기를 했다. (262-263쪽)

 

* 사랑은 가도 재즈는 계속된다. 출처: LA LA Land.

Note

1] 무라카미 하루키는 1975년에 와세다(早稲田) 대학 제1문학부를 7년만에 졸업하였다. 전공은 연극영화였으며 졸업논문 제목은 「미국 영화에 있어서 '여행'의 사상」으로 당시 미국의 뉴시네마로서 주목을 받았던 <Easy Rider>(1969)를 다룬 것이었다.

 

2] 국내 번역・소개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영역판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거의 모든 작품이 영역되어 세계의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으니 노벨 문학상도 바라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참고: Wikipedia, "Haruki Murakami".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風の歌を聴け (1979) -  Hear the Wind Sing (1987/2015)

   * 〈1973년의 핀볼〉 1973年のピンボール (1980) -  Pinball, 1973 (1985/2015)

   * 〈양을 쫓는 모험〉 羊をめぐる冒険 (1982) -  A Wild Sheep Chase (1989)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世界の終りとハードボイルド・ワンダーランド (1985) -  Hard-Boiled Wonderland and the End of the World (1991)

   *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ノルウェイの森 (1987) -  Norwegian Wood (1989/2000)

 

   * 〈댄스 댄스 댄스〉 ダンス・ダンス・ダンス (1988) -  Dance Dance Dance (1994)

   *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国境の南、太陽の西 (1992) -  South of the Border, West of the Sun (2000)

   * 〈태엽 감는 새 연대기〉 ねじまき鳥クロニクル (1994) -  The Wind-Up Bird Chronicle (1997)

   * 〈스푸트니크의 연인〉 スプートニクの恋人 (1999) -  Sputnik Sweetheart (2001)

   * 〈해변의 카프카〉 海辺のカフカ (2002) -  Kafka on the Shore (2005)

 

   * 〈어둠의 저편〉 アフターダーク (2004) -  After Dark (2007)

   * 〈1Q84〉 1Q84  (2009) -  1Q84 (2011)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色彩を持たない多崎つくると、彼の巡礼の年  (2013) -  Colorless Tsukuru Tazaki and His Years of Pilgrimage (2014)

   * 〈기사단장 죽이기〉 騎士団長殺し  (2017) -  Killing Commendatore (2018)

 

   * 그밖에 〈중국행 슬로보트〉中国行きのスロウ・ボート (1980) -  A Slow Boat to China, 〈빵가게 습격〉  パン屋襲撃  (1985) -  The Bakery Attack 등 많은 단편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헛간을 태우다〉(納屋を焼く, 1983) 가 이창동 감독의 미스터리 영화 <버닝> (2018)으로 만들어졌다.

 

3]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가 대표적이다. 이 소설은 전세계 36개국에서 번역·출판되어 1100만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켰다.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알려진 탓인지 작가는 발표 후 24년 동안 영화화를 일체 허락하지 않았으나, 영상 시인이라 불리는 트란 안 홍 감독의 4년 간의 구애 끝에 영화화가 결정됐다. 영화 〈상실의 시대〉는 트란 안 홍 감독의 아름다운 색채와 서정적인 영상에 섬세한 감성을 음악으로 풀어낸 조니 그린우드의 OST가 더해져 ‘하루키 스타일’을 영상으로 구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출처: 광주드림.

최근에는 하루키 원작의 단편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2014년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가 일본의 신예감독 하마구치 류스케(濱口竜介)가 각본 및 연출을 맡아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2021년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 2022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국제 장편영화상을 수상했으며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크게 호평을 받았다.

 

4] 하루키는 1971년 대학생 시절에 다카하시(高橋陽子)와 결혼할 때 아이는 갖지 않기로 서로 약속했다고 한다. 신혼 초에는 침구점을 운영하는 처가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았는데, 두 젊은 부부는 낮에는 레코드점에서, 밤에는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저축을 하였다. 그리고 양가의 금전적 지원과 은행대출을 받아 500만엔을 마련해 1974년 도쿄 고쿠분지역(国分寺驛) 앞 빌딩 지하에 <피터 캣>(ピーター・キャット)이라는 커피도 파는 재즈바를 열었다. 재즈바의 이름은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이름을 딴 것이며, 주말에는 라이브 연주를 하여 제법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일본어판 위키피디아 "村上春樹" 참조. 이것만 보아도 그의 초기작인 《상실의 시대》, 《국경의 남쪽, . . . 》 등을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상상을 해본다. 존 덴버가 부르는 "Perhaps Love"를 틀어줄 때 그의 재즈바에서는 다음과 같은 하이쿠 스타일의 DJ 멘트가 나오지 않았을까.

 

여름밤 오카리나 소리에 살아나는 옛 추억
그때는 몰랐지만 아마도 사랑이었을거야

One summer night,
ocarina melody brought me to the old days.

It could be perhaps love
even though we didn’t recognize it each other.

 

5] 무라카미 하루키에 관한 상세한 정보 -- 그의 생애와 연보, 주요 작품, 수상 실적은 일본어판 위키피디아 "村上春樹"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