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모두 폐지됨에 따라 2020년 3월부터 집에서 CGNTV로 주일예배 보던 것을 예배당에 가서 직접 보기로 했다. 우리 내외는 고위험군에 속하지만 4차 백신까지 맞는 등 항체가 충분히 형성되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부활절도 지나고 우리의 신앙생활도 예배 공동체 안에서 좀더 단단히 다질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우선 코로나 닥치기 전처럼 양재 환승센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 인근 맥도널드에서 맥모닝 세트를 주문했다.
그 전보다 키오스크 사용법이 편리해졌고 메뉴도 몇 가지 새로 추가되어 선택지가 넓어졌다. 맥모닝은 오래 전 미국에서 살 때부터 즐겨먹던 터였다. 집에서 예배를 볼 때에도 드라이브인 맥도널드에 가서 맥모닝을 사먹은 적도 있었다.
다시 환승센터로 돌아가 셔틀버스를 타고 양재동 횃불회관의 온누리 주일 2부 예배에 참석했다. 아직은 환승센터 주차장도 셔틀버스도 빈 자리가 많았다.
2020년 코비드-19가 확산됨에 따라 모든 종교집회가 금지된지 2년여 만이었다. 그후 모든 대면예배는 온라인 예배로 대체되었고 우리 가족도 일요일 오전에 집에서 예배를 보았다.
찬송가 384장 "나의 갈길 다 가도록"을 부를 때에는 지금까지의 인생 역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짧은 찬송 시간이었음에도 주님이 나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수많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도 한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비교적 형통하게 지내온 것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면의 스크린에 보이는 것처럼 남은 생애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가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였다.
오늘은 장애인의 날을 맞아 온누리 사랑 체임버의 특순이 있었다.
크리스천 장애우들이 현악 파트를 맡고 플루트로 뒷받침을 하니 아주 근사한 하모니가 이루어졌다. 뒷줄에서는 핑크빛 셔츠를 입은 수화 통역사들이 수화로 찬송가사를 함께 불렀다.
목사님은 온누리 복지재단에서 여러 가지 장애인사역을 하고 있으므로 여러 시설에서 장애인들을 돕고 가르치는 봉사자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다. 헬렌 켈러(1880~1964)나 우리나라의 강영우(1944~2012) 박사도 헌신적인 교사, 반려자가 있었기에 그렇게 뛰어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예배가 정상화됨에 따라 마침 4월의 세례식이 있는 날이었다.
세례간증을 한 분은 우리나라 유수의 광고기획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하던 분이었다. 몇 년 전 홀로 창업에 나섰다가 코로나 팬데믹이 확산되면서 사업이 어려워지고 좌절을 겪은 끝에 지인의 전도에 이끌려 새벽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했다. 하나님이 이렇게 자기의 사정을 알아보시고 또 극복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시는 것을 깨닫고 불자(佛者)에서 기독교도로 변신했다고 말했다. 나 역시 전에 그러한 고비를 겪은 적이 있었기에 충분히 공감이 가는 간증이었다.
주님은 문제가 있으면 혼자서 해결하려 애쓰지 말고 주님의 멍에는 가벼우니 주께 모두 맡기라고 권면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미태복음 11:28)
나도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주님께 기도를 하는 가운데 해결의 실마리가 열리는 것을 여러 번 체험한 바 있다.
세례식을 모두 마친 이재훈 담임목사가 시편 16:1~11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는 즐거움"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시작하셨다.
목사님은 "매일매일이 부활절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질문을 던지시고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성령을 통해 만날 수 있고 십자가의 道를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그리스도인의 얼굴에 예수님의 산상수훈 '팔복(八福)'의 기쁨이 나타나 있지 않으면 거짓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진정으로 기뻐하며 춤까지 추시는 분이라고 강조하셨다. 집 나갔던 아들이 걸인의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에도 아버지는 그를 반겨 맞아주시고 동네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벌이고 기뻐하며 춤까지 추었다. (예수님의 "돌아온 탕자의 비유", 누가복음 15장)
하나님은 당신의 기쁨을 인간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달란트의 비유(마태복음 25장)에 있어서도 오해가 없어야 할 것은 주인이 종들과 수지 결산을 할 때 그것이 성취의 척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종들의 재능에 맞게 달란트를 주신 것이고 자기 능력껏 수익을 올렸다면 그 많고 적음을 떠나 주인의 즐거운 파티에 동참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땅에 묻었던 종은 악하고 게으르다 질책을 받고 쫒겨나야 했다.
흔히 기독교인들은 큰 성취를 이루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한다. 영국의 작가 C.S. 루이스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이 성공하였을 때도 무척 기뻐하시며 그분의 즐거움에 동참하도록 초청하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훈 목사님은 다음 세 가지를 강조하셨다.
첫째,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마음에 기쁨이 없다.
목사님은 웃으시면서 그동안 비대면 예배가 편했다면 반성을 요한다고 하셨다. 예배당에서 주님께 예배 드리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 즐겁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예배당을 멀리하는 것은 황금잔이 아무리 화려해도 비어 있으면 갈증을 해소할 수 없는 법이라고 하셨다.
둘째,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항상 기뻐해야 한다.
자기자신만 의식하는 삶은 허망해지기 마련이다. 시편 기자는 "나를 훈계하시는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고 계시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삶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사회심리학자들이 '황혼의 반란' 실험을 한 적이 있다. 80대의 피실험자들에게 30년 전의 모습을 상상하고 행동하라고 하고 30년 전의 소도구와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그 결과 마음의 시계가 50대로 돌아가니 80대 노인들도 젊게 말하고 행동하게 됨을 발견했다. 마음 속으로 상상만 해도 몸이 그에 따라 움직이며 젊어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영원한 삶(永生)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면 우리에게 닥치는 고민거리나 어떠한 고난을 능히 극복할 수 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신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위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다." (히브리서 12:2)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아계시는 것처럼 기독교인들은 이생에서의 삶이 끝나더라도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인도받게 될 것이다.
집에서는 아무리 집중하여 예배 실황을 시청한다 해도 이것저것 하느라 해찰하고 말씀의 핵심을 놓치기 쉽다.
그것은 클래식 공연을 보더라도 직접 콘서트홀에 가서 보는 것하고 거실에서 편하게 앉아 보는 것의 차이점과 비슷하다. 영화도 그렇다. 물론 음향효과도 있지만 다른 관객들의 반응을 피드백하면서 보는 게 몰입도를 높여주는 게 사실이다.
오늘 예배가 끝나고 예배당을 빠져 나올 때 1시간 반 이상 집중해서 예배에 참석하는 동안 그만큼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는 잘못을 지적 받고 꾸지람을 듣는 게 아니라, 여러 모로 부족한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하고 고백을 하고 용서를 받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 때문인지 환승주차장에서 차를 빼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에는 몰라보았던 가로수의 신록이 더욱 푸르러 보이고 눈까지 시원해졌다.
예수 부활하신 후 성령님 우리 곁에 오셨네
성도가 큰소리로 외칠 때 감동을 주시는 그분
영성이 깊어지기 전에는 혹시 잘못될까 봐
간절한 마음으로 그림자처럼 지켜보시네
After Jesus’ Resurrection, the Holy Spirit came down to us.
Whenever Christians cry out for God, the Spirit responds to their crying.
While their spiritual state stays low, He stands beside them like a shade and
Watches their affairs lest anything wrong should happen to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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