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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Day] 박완서 작가와 엔도 슈샤쿠의 소설

Onepark 2022. 4. 13. 07:30

G : 4월 13일 Book's Day에는 무슨 책을 소개해 주실지 궁금하네요.

P : 오는 4월 17일이 부활절(Easter)이므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책을 골랐습니다. 그동안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나오는 기독교에 대해서는 말씀드린 바 있으므로 오늘은 엔도 슈사쿠의 책에 나오는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 일본 막부시대 反기독교 번주의 기독교도 처형 장면. 출처: 영화 <Silence>

G : 엔도 슈사쿠라면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된 바 있는 마틴 스코세지 감독 필생의 대작 <침묵(Silence)>(2016)의 원작자 아닙니까?

P : 네, <사일런스>는 일본에서의 기독교 전파 과정에서 빚어진 극한의 박해환경과 배교(背敎)의 문제를 다룬 수작이라고 하죠. 엔도 슈샤쿠는 《사해에서》란 기독교 소설에서 성서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 중의 하나인 빌라도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사도신경에도 나오는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지방을 다스리던 로마 총독으로서 예수에게 아무 죄가 없음을 알고 풀어줄려고 애쓰지만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킬 기미를 보이자 "그럼 십자가에 매달아라"고 무책임하게 물러서지요.

 

G : <사일런스>에서는 나가사키 테지마 주재 네덜란드 상관 소속 의사가 본사에 보내는 보고서에 기록하잖아요? 일본에 귀화하여 테지마에서 화물 속에 기독교와 관련된 서적이나 물건이 들어있는지 검사하는 전직 가톨릭 신부가 있는데 곡절 많은 삶을 살았다고 말이죠.  

P : 네, 《사해에서》도 비슷한 구조입니다. 가톨릭 대학에서 같이 공부한 두 젊은이가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하면서 성서 속의 인물과 사건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지요. 정경(正經)[1]에는 나오지 않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작가가 상상하는 허구의 이야기가 섞여 있어 역사적인 사실로서 접근하기보다는 크리스천의 자세라 할까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볼 게 참 많습니다.

 

* 가톨릭 사제는 박해가 있을 때마다 쉽게 배교하는 일본청년의 죄를 사해준다.

G : 그런데 박완서 씨는 왜 나오는 거죠?

P : 그것은 박완서(朴婉緖, 1931~2011) 씨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산문집에 나오는 한 편의 수필이거든요. 2010년 박완서 작가의 등단 40년을 기념하여 세대를 뛰어넘는‘시대의 이야기꾼’의 세상 이야기가 화제를 모았었지요. 그해 삼성경제연구소 'CEO 필독서!'라고 추천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그 경위를 설명합니다. 자기 집에는 사서 본 책, 증정받은 책 등이 넘쳐나기에 수시로 안보는 책들을 솎아내 여기저기 나눠주곤 하는데 어느날 버릴 책을 살피다가 겪었던 일을 썼습니다. 독서할 때 자신이 좀처럼 하지 않는 밑줄을 그어놓은 책을 발견하고 해당 구절을 옮겨적고 자신의 그 당시 심정과 소회를 밝혀놓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1996)의 《사해에서》[2]를 매주 나가는 성당 도서실에 기증하려고 골라놓았다가 빝줄 친 부분을 발견하고선 책장에 다시 꽂아놓았답니다.

 

[나는] 책 내용이 생각났을 뿐 아니라 그 때의 내 마음상태까지 어제 일처럼 선명하고 고통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책은 2차대전 말기 인기가 없다 못해 구박까지 받는 가톨릭계 대학을 나와 하나는 작가가 되고 하나는 이스라엘에서 성서학을 공부하는 두 사람의 동창이 예루살렘 에서 만나 사해 부근을 여행하며 대학교 시절의 신부나 수사 교수들과 동료들을 회상하기도 하고, 신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나누기도 하는 장과,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을 성서에 기록된 대로가 아니라 작가 마음대로 상상한 허구의 장이 번갈아가며 나오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내가 접어놓고 밑줄까지 쳐놓은 부분은 예수가 처형되기 전 총독 빌라도와 대면하는 장면이다. 성서에는 빌라도가 예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인가"라고 물으니 예수는 "그것은 네 말이다"라고 대답한 걸로 돼 있다. 4 복음서가 똑같이 증언하고 있으니 그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엔도가 쓴 그 장면은 소설이니까 좀 다르다. 내가 밑줄 친 부분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 일본의 '국민작가'라 불렸던 엔도 슈사쿠

유령처럼 그 사나이(예수)가 다시 집무실 입구에 세워졌다. 사나이의 야윈 손에는 갈대 잎이 쥐어져 있었다. 빌라도는 침묵 속에서 사나이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로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네."

빌라도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네. 그대를 따라다니던 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

사나이는 계속 빌라도를 바라보기만 했다.

“민중이란 그런 거지 그런데 왜 돌아왔나? 왜 나를 말려들게 하나? 나는 편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리아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스쳐 간다[3]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내 인생도 스쳐 갈 셈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내 인생에도 그대의 흔적을 남길 셈인가?"

세이아누스의 저택에서 마룻바닥을 닦고 있는 꿈속의 어머니…

그것이 또 망상처럼 떠올랐다. (빌라도는 하층계급 출신이었으나 귀족 세이아누스의 신임을 얻어 유대 총독까지 되었지만 자신의 신분유지를 위해 어머니를 몰라라 해서 어머니는 세이아누스 저택의 청소부로 살다가 죽었다.)

”나는 그대를 잊을 걸세"

그는 사나이에게가 아니라 마음속에 떠오른 어머니의 얼굴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사나이의 몸이 조금 움직였다. 그리고 나직하지만 강한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내가 한 번 그 인생을 스쳐 가면 그 사람은 나를 잊지 못하게 됩니다."

"왜지?"

"내가 그 사람을 언제까지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놀라서 얼굴을 들었다. 그때 창밖에서는 바라바를 살리고 예수를 죽이라는 군중의 고함 소리가 합창처럼 들려왔다.

 

괄호 안(빌라도의 생모에 관한 전승기록)은 내가 붙인 과잉친절이고 위에 인용한 것이 밑줄 친 문장의 전문이다. 연필로 친 밑줄은 희미한데 '스쳐 간다'에만 몇 겹이나 진하게 덧칠이 돼 있다. 그 밑줄 때문에 그날 그 책을 기증하는 책에서 제외시켜 간직하고 있다. (151~153쪽)

 

內村鑑三, 遠藤周作

Uchimura Kanzo, Endo Shusaku

신자 수는 적어도 내공 심오한 일본 기독교

Japanese Christianity is time-honored, 
tho’ their numbers are small.

 

Note

1] 정경(正經, Canon)이란 기독교에서 공식적으로 채용하고 있는 경전으로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의 성서을 가리킨다. 사도 바울은 ‘인간행위의 기준’이라는 뜻으로 이 말을 썼으며(갈라디아 6:16), 초대 교회부터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Libri Prodocanonci )으로 인정했다. 가톨릭에서는 개신교에서는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구약의 《토비트》, 《유딧》 등 7서와 《에스델서》의 일부 등을 제2 정경(Libri Deuterocanonci ) 또는 외경(外經, Apocrypha)이라고 한다.  구약성서의 정경이 지금의 39권(원전에서는 24권)으로 정해진 것은 BC90년경의 야무니야 회의에서였고, 신약성서의 정경이 현재의 것처럼 27권으로 결정된 것은 397년 카르타고에서 열린 교회회의에서였다.

그 밖에 위경(僞經, Pseudepigrapha)도 있다. 구약성서의 마지막 말라기와 신약성서의 마태복음 사이에는 약 400년의 시간 간격이 있는데 이 중간시대(Intertestamental Period)에 유대인들이 엄청난 분량의 종교적인 문헌을 양산하였다. 한 가지 특징은 중간시대에 유대인들에 의해서 저작된 엄청난 분량의 종교적인 문헌이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솔로몬 같은 인물을 그 책의 저자로 내세우고 있어 이들을 통틀어 차명서(借名書)라는 의미에서 위경(僞經, pseudepigrapha)이라고 부른다.

 

2] 엔도 슈사쿠의 《死海のほとり》는 1973년 처음 발표되었는데, 박완서 작가는 한국에 1995년 처음 번역된 책을 소장하고 있었던 듯하다. 2011년 성바오로딸수도회에서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편집하여 발행하였다. 작가의 이스라엘 성지순례기와 작가가 상상력으로 현대에 되살린 신약성경 속의 인물들을 장별로 교차시킴으로써 1966년에 발표한 《침묵(沈默)》과 같이 불편한 느낌과 아울러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다음과 같은 차례로 구성되어 있다. 예루살렘, 기적을 기다리는 사나이, 유다인 학살 기념관, 알패오, 사해 부근에서, 대사제 안나스, 카나에서, 총독, 갈릴래아 호수, 쑥을 파는 사나이, 텔데데슈 집단농장, 백인대장, 다시 예루살렘으로.

 

3] 엔도 슈사쿠가 말하는 '스쳐 간다'는 흔히 불가에서 일컫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연기론(緣起論)을 연상케 한다. 위 글에서 보듯이 베드로나 빌라도나 예수를 그저 스쳐 갔을 뿐임에도 예수를 만나 말씀을 듣고 그의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영어로 말하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pass-by) 게 아니라 만나서 소통하고 동기를 부여 받는(encounte → communicate → being motivated) 상호작용(interaction)을 뜻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베드로나 빌라도는 체구도 왜소하고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데다 기적은커녕 무력하기까지 한 유대 남자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베드로는 그의 기대가 무너지자 예수가 체포되어 대제사장의 관저에 끌려가 심문을 받을 때 세 번씩이나 그를 모른다고 부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예수가 처형된 후에는 마음을 돌이켜 그에게 진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그의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일단 그분을 알게 되면 외면하거나 버릴 수는 있어도 결코 잊을 수는 없었다."

반면 빌라도 총독은 자기에게 책임이 없다는 온갖 제스쳐를 다 썼다. 그럼에도 로마법상 '추방'으로 족한 예수의 치안교란 혐의에 대해 '사형' 선고를 내림으로써 그의 비겁함과 무책임성을 역사에 남겼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못 이긴 나머지 얼마 후 자살을 한 것으로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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