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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주먹을 쥐면 힘! 손을 펴면 사랑!

Onepark 2021. 9. 30. 12:00

9월 29일 저녁 한강 인도교를 건너 노들섬으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비를 뿌리던 구름이 조금씩 걷히자 한강 위로 하늘이 환해졌다.

인도교에는 적지 않은 퇴근길 사람들이 걷거나 자전거로 달리거나, 또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다.

무심코 걸어가던 차에 인도교 난간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게 보였다.

자연히 따라가면서 읽게 되었다.

 

* 노들섬으로 가기 위해 인도교에 들어섰을 때 비가 그치고 구름들이 서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생 명 !

 

생명은 내 것이 아니다.

태양의 빛과 대지의 꽃,

숨쉬는 모든 것과 함께 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가진 것이 많고

혼자라도 외롭지 않는 것이

내가 가진 생명이다.

 

걱정마라.

주먹을 쥐면 힘이!

손을 펴면 사랑이!

세상은 내 손 안에 있다.

 

* 서쪽 하늘을 보니 구름 틈 사이로 석양 빛이 비쳤다.

 

큰 울림이 있는 이어령 교수/문화부장관의 시였다.

그래서 영어로도 한 번 새겨 보았다.

 

Life!  by Lee Eo-ryong

 

Life is not mine.
The light of the Sun and flowers of the Earth.
They are always with all living things which breathe.
One who stays alive has plenty of things.
Though I'm by myself, I'm living not alone.
It’s because I have such a life.

 

Don't worry.
If I clench my fists, I feel power!
If I open my hands, I feel love!
The world exists in my hands.

 

* 한강 위로 배가 지나갈 때까지 한참 동안 석양이 빛나며 주변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그와 함께 아주 자연스럽게 떠오른 푸시킨의 시가 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알렉산드르 푸시킨 (Aleksandr Pushkin, 1799~1837)

 

Should this life sometime deceive you,
Don't be sad or mad at it!
On a gloomy day, submit:
Trust – fair day will come, why grieve you?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Heart lives in the future, so
What if gloom pervade the present?
All is fleeting, all will go;
What is gone will then be pleasant.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또다시 그리움이 되나니

(러시아 원시의 영어 및 우리말 번역은

Walking thru the Moments 블로그 참조)[2]

 

 

우리에겐 이 시를 번안하여 이화여대 김효근 교수가 곡을 붙인, 바리톤 송기창의 노래가 더 친숙하게 들린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노들섬에 거의 당도할 즈음 서쪽 하늘이 밝게 빛났다.

구름 사이로 붉은 저녁해가 말 그대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잠시 숨이 멎은듯 감동이 되어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비 뿌리던 구름에
햇살 기다리다 지칠 즈음

 

잠깐 구름 사이로
찬란하게 빛나는 석양 빛

Tho’ exhausted by dark clouds,
I’m consoled briefly
by evening sunlight.

(국・영문 17음절의 短詩)

 

 

노들섬 모임을 끝내고 인도교를 되돌아 나올 때 생명의 전화가 눈에 띄었다.[1]

지금의 힘든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갈 터이니

푸시킨이 말한 것처럼, 바리톤 송기창이 노래한 것처럼,

그때는 지나가버린 것들도 아름답게 여겨지리라.

 

Note

1] 접근성이 좋은 한강 인도교는 마포대교, 원효대교와 함께 투신하는 사람이 많은 한강다리로 알려졌었다.

세계적으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Golden Gate Bridge,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Harbor Bridge, 고층건물로는 뉴욕의 Empire State Building이 자살명소로 유명하였다. 하버 브리지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투신방지 철망을 설치하여 원천차단하였으나 금문교는 설치비용과 미관을 해치는 문제 때문에 철망 설치는 보류하고 순찰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강다리 중에서 마포대교는 우선 난간부터 크게 높였다. 나머지 다리들도 철망 대신 열감지 자살예방 CCTV와 생명의 전화를 추가 설치하여 극단적 선택의 유인을 줄이고 투신자의 구조율을 높이는 대책을 마련했다. 베이비타임스, "한강다리 투신자살자 수 급감", 2018.5.9.

 

2] 2012년에 출간된 '백석 번역시 전집'(전 2권, 흰당나귀)에서는 백석의 일본 청산학원 유학 시절 후배이자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었던 고정훈(1920~1988) 씨의 생전 증언을 토대로 첫 번역자는 백석이라고 주장했다. 6.25 당시 국군 장교로서 평양에 간 고 씨가 백석을 만났는데 이 시를 이백번이나 암송하던 백석은 당연히 이 시를 시집에 포함시켰으나 공산정권이 빼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이진희, "푸쉬킨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첫 번역자는 백석?", 바이러시아21, 2012.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