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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vice] 親友 권오현과 나눈 진솔한 이야기

Onepark 2020. 12. 31. 18:40

연말 친구들과의 송년 모임이 코로나19 거리두기 강화에 따라 모두 취소되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부부동반으로 모이기로 하고 장소와 메뉴까지 다 정해 놓았는데 너무 아쉬웠다.

고등학교ㆍ대학교 동창들 중에 사회저명인사가 한둘이 아니지만 작년에 이어 금년에  「초격차(超格差)」라는 베스트셀러를 연속 출간한 권오현 친구를 첫 손에 꼽지 않을 수 없다. 평소 모임을 가질 때마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하였거니와 여기서는 '똑똑하고 부지런한 경영자','똑똑하되 게으른 경영자' 같이 널리 회자되는 이야기는 빼고 책에 나오지 않은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권오현 고문은 지금도 요청이 있는 곳이면 10명 이내로 모여 문답식으로 기업경영의 고충을 상담해 주고 있다.

스탠포드 전자공학 박사로서 메모리 반도체 개발에 전념하다가 40대 중반에 적자가 누적된 비메모리 사업부문을 맡아 흑자로 전환시켰다. 또 삼성전자의 총괄부회장으로서 반도체 사업부문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만들어 놓고 물러났으니 그동안 쌓아올린 경륜과 지혜는 너무나 귀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을 책 2권으로 펴내 전세계의 독자들과 교류한 데 이어 지금도 무보수로 좌담회식 강연을 다니고 있으니 큰 업적을 쌓아올린 기업가로서 모든이의 귀감이 되고 있다. (아래의 대화는 친구들 사이의 보통 대화체이지만 읽기 좋게 존대어로 바꾸었음)

 

* 2017년 봄 친구들 모임에서 맨 뒷줄 왼편 끝이 권오현 당시 총괄부회장

 

P: 책 이름 '초격차'에서 격차는 일반적으로 멀어질 격(隔) 자를 많이 쓰는데 격식 격(格)자를 쓴 이유는 무엇인가요?  

K: 국어사전을 보면 격차(格差)는 '자격이나 지위가 서로 다른 정도'라는 뜻도 있지요. 삼성 제품을 만들 때 경쟁사의 것보다 크게 차이를 벌린다는 의미보다는 삼성 제품의 격이 월등하게 높아야 한다는 경영진의 의지를 담고자 했어요.

여기에는 1997년 상무가 되어 LSI사업부를 처음 맡았을 때의 당혹감을 해소하였던 키워드가 들어 있지요.

 

P: 그때는 IMF 금융위기가 닥칠 때였지만 승진하고서도 당황스러웠다니요?

K: 그 당시 반도체 개발 레이스에서 64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하면서 삼성전자도 선두그룹에 진입할 수 있었어요. 그 덕분에 상무로 승진해 경영을 맡게 된 사업부문이 비메모리 부문이었어요. 공식적으로는 AP, 모뎀, CIS 등 최첨단 시스템 반도체 및 파운드리 사업을 하는 LSI 사업부였습니다. 당시는 사업 초창기였고 몇 년간 적자가 누적되어 금명간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지요. 그런데 R&D 쪽에만 매달려 있던 사람이 갑자기 영업을 맡게 되어 스스로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제품을 들고 노키아, 모토롤라 같은 통신회사를 찾아다녔는데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어요. "삼성 제품 안 쓰니까 다시 올 필요 없다"며 잡상인 취급을 받기까지 했어요. 삼성 제품 포장도 뜯지 않았으니 다시 가져가란 말까지 들었어요.

 

P: 유행가 가사처럼 "울고 싶어라"였을 텐데 어떻게 전기를 마련했습니까?

K: 그런 식으로 거절을 당하고 나니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지요. 그때까지 제품 설계ㆍ제작에만 몰두해왔기에 내 생각은 우리 기술력이 뛰어나니 이 제품을 써보라는 것이었어요. 상대방이 무슨 제품을 원하는지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거지요. 영업은 연애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으면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 대시하는 것처럼 반도체 영업도 그렇게 해야 함을 이내 터득했어요. 그리고 삼성 제품의 강점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시장을 공략하기로 마음먹었지요. 바로 삼성 제품은 그 격이 월등해야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고 더 많이 팔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P: 맨처음 삼성전자 미국 현지법인 연구소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그때 삼성전자의 수장(首長)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나요?

K: 아니예요.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처음엔 대학교나 IBM 같은 세계적인 기업 연구소에 들어갈 생각이었어요. 사실 삼성보다 LG전자에서 먼저 입사 제안을 받았습니다. 당시 삼성이 인기있는 대기업은 아니었는데 대학교와 대학원 1년 선배인 진대제 씨가 거의 매일 같이 일해보자고 졸랐어요.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스탠포드 동문들을 떠올리고 점차 마음이 끌렸지요. 당시 64K D램이 시판 중이고 도시바에서 1메가 D램 시제품을 내놓은 상태였어요. 그래서 진 선배와 4메가 반도체 개발에 도전하기로 의기 투합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은 삼성전자, 아니 우리나라의 반도체 개발 역사지요.

 

* 「초격차 2」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 모임의 이호창 회장이 권 고문에게 와인을 권하고 있다.
* 공통의 화제가 있기에 모임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왼쪽부터 이선주 사장, 권 고문, 김순주 치과원장.

 

P: 오너가 있는 재벌기업에서 아무 연줄도 없이 오직 '초격차'의 정신으로 열심히 일해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뜻인가요?

K: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고 준비하고 기다렸더니 기회를 선점할 수 있었던 행운도 크게 작용했어요. 몇 년에 걸친 노력 끝에 비메모리 사업부가 애물단지에서 효자로 변신하자 최고경영진이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하느냐"고 묻기에 시스템 LSI 반도체 공장을 지어달라고 말했어요. 때마침 삼성이 생산하는 제품의 수요가 급증했어요. 애플의 아이폰 개발이 그 전기를 이루었는데 처음엔 우리도 애플이 삼성 비메모리 칩을 가져다 무엇에 쓰려는지 몰랐어요. 나중에 보니까 우리가 납품한 것이 아이폰에 사용된 것을 알고 깜짝 놀랐지요. 그 후 애플은 2012년 삼성과 특허소송을 벌일 때까지 삼성전자의 메모리, 비메모리 반도체를 대량으로 구매하였어요

 

P: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초격차'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미래를 준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충고이자 질책 때문이라 생각되는데요.

K: 책을 쓰면서 여러 대목에서 강조했지만 현재의 위기상황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기가 끝났을 때 무엇을 가지고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격차를 만들 것이냐가 더 중요하지요. 그러므로 실력 있는 경영자는 본인이 없더라도 업무가 돌아가게끔 시스템을 구축하고 권한을 임직원에게 과감하게 위임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에 필요한 일에 집중하고 다양한 외부 의견을 청취하여 미래를 준비애햐 해요. 코로나 시대에 IT산업과 공유경제 참여기업들 간에 명암이 엇갈리는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P: 삼성전자의 총괄 부회장 재임 당시 전 임직원들에게 일찍 퇴근하라, 회의시간 줄여라, 금연하라 등 여러 가지 경영지침을 내리고 조직문화를 크게 바꾸신 것으로 아는데 무슨 계기가 있었나요?

K: 삼성의 모든 임직원은 매년 건강검진을 받는데, 그만 바쁘다는 핑계로 검진을 받지 않은 간부가 과로사하는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 직원은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았지요. 그리고 금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담배를 계속 피우면 인사상의 불이익을 감수하라" 했더니 임직원의 흡연율이 현저히 줄었고 집에서도 아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업무상 회의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으므로 회의를 열더라도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에 힘쓰고 회의 도중에 말 한 마디 안 하는 사람은 더 이상 들어올 필요 없다고 경고했어요. 모든 회의는 원칙적으로 한 시간 내에 끝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불필요한 업무자료와 회의자료를 대폭 줄였으며 그 시간에 좀 더 스마트하게 창의적인 일을 열심히 하도록 독려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봅니다.

 

P: 친구로서 보기에도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정리하기, 적절한 비유로 사안의 정곡(正鵠, 화살의 과녁) 찌르기에 능하신데 한두 가지 예를 들어주세요.

K: 과찬의 말씀이네요. 하지만 조직운영에 있어서도 사람의 몸을 본보기로 삼으라고 곧잘 말합니다. 인체의 장기가 그러하듯이 가장 좋은 조직이라면 각 부문이 알아서 움직이고, 필요하면 서로 협력하고 이상이 생기면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므로 이러한 조직을 이끄는 사람은 인체의 뇌가 그리 하는 것처럼 각 부문 조직이 스스로 하도록 격려하고 협력이 잘 안되면 문제점을 찾아서 고치도록 해야 합니다. 말단이라도 이상 신호가 오면 이를 무시해서는 안 되지요. 지도자는 인체의 뇌가 그러하듯이 내부 조직은 자율적으로 움직이게끔 만들어 놓고 많은 시간을 외부 환경의 변화를 살피고, 장래 발전전략을 짜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조직 내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사람 몸에 이런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지, 단순 투약처방인지, 수술을 할 것인지, 섭생과 운동에 힘쓸 것인지 비유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있어요.

 

* 황혼기에 접어든 우리는 노후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출처: 안종민

 

개인적으로도 필자는 권오현 친구의 덕을 많이 보았다. 친구들 모임에서 위와 같은 진솔한 이야기도 많이 들려 주었지만 2000년 내가 경희대 교수로 전직하였을 때 권오현 당시 삼성전자 부사장은 신형 PC와 팩스전화기를 학교 연구실로 보내 격려해주었다. 몇 년 후에 내가 RFID 특허기술을 가지고 벤처 사업을 해보겠다고 상의했을 때에는 나의 성격이나 기질에 맞지 않으니 연구와 자문 정도로 그쳐야 한다고 극구 만류했다. 그 대신 사업성 판단을 위해 KT의 고위인사를 소개해줘서 여러 모로 귀중한 도움말을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 친구가 사내 정치에 무심했던 것과는 반대로 가정적인 측면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곳곳으로 출장을 다니면서도 주말에는 반드시 귀국하여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성격이 어찌나 소탈한지 고등학교 시절이나, 젊어서나, 출세한 후에나 아무 격의없이 우리를 대하는 것이 한결같이 똑같은 모습이다. 친구들 모임을 파하고 나서 운전기사를 대기시키지 않고 밤거리를 걸어서 집에 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권 부회장 자신이 중요 산업기밀인데 보디가드 없이 이렇게 다녀도 되느냐"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