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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y] 스웨덴의 국민화가 칼 라르손 이야기

Onepark 2021. 1. 8. 20:00

코로나로 집콕을 하다보니 FM 방송을 청취하는 시간이 크게 늘었다.

어느날 스웨덴의 국민화가라 불린 칼 라르손(Carl Larsson, 1853~1919)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처음 들어보는 화가 이름이지만 수채화, 삽화가로 유명했고 동시대의 화가인 알폰스 무하처럼 파리 박람회 때 이름을 날렸다. 그 뿐만 아니라 스웨덴 가구회사 IKEA 가구와 실내장식에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말을 듣고 급호감이 갔다.

 

* 여기에 올린 칼 라르손의 그림은 이광중 회계사의 블로그에서 전재한 것이다. 칼 라르손의 삶과 작품에 대해서는 이소영 지음,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 - 스웨덴 국민화가의 일상속 작은 행복」이 2020년 6월 RHKorea에서 출간되었다.

 

* Brita med julljus, Watercolar on paper (1900) 출처: Stockholms Auktionsverk

지극히 불우했던 어린 시절

라르손은 반 고흐와 같은 1853년에 스톡홀름의 변두리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막노동꾼이었고 어머니가 세탁부로 생계를 꾸려가는 아주 가난한 집이어서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술 취한 아버지는 툭하면 아들을 구박하고 폭언을 일삼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라르손에게 그림 소질이 있음을 발견한 선생님 말씀을 듣고 그를 스웨덴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진학시킨다.

학비도 벌고 가족을 부양하고자 신문잡지의 만화와 삽화 등 닥치는 대로 그리다가 큰 뜻을 품고 1877년 파리로 떠난다. 파리에 머물면서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려 살롱전에 출품했으나 번번히 낙선을 한다. 그는 인상주의의 급진적인 화풍을 따르지 않고 밀레와 같은 자연주의 기법을 고수했기 때문이었다. 자신감을 잃고 심한 우울증에 빠진 그는 자살마저 생각하는 상황에 처한다.

마음을 고쳐먹고 고국에 돌아가 기력과 재정을 보충한 그는 스웨덴 화가들이 모여 사는 파리 교외의 그레 쉬르 루앙(Grez-sur-Loing)에 정착한다. 그곳에서 스웨덴에서 유학온 화가 카린 베르게(Karin Bergöö 1859–1928)를 만나 두 사람은 이내 사랑에 빠진다. 부유한 사업가인 카린의 아버지 반대를 무릅쓰고 두 사람은 스톡홀름에서 1883년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꾸민다.

 

* Mirror Image with Brita, Watercolor on paper (1895) 출처: Sotheby's
* Karin and Brita, Watercolor on paper (1893) 출처: WikiArt
* Karin by the Shore, Watercolar on paper (1908) 출처: Wikimedia Commons

결혼 후 크게 달라진 그의 人生

내가 주목한 것은 칼 라르손이 카린을 만나 결혼을 함으로써 그의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우선 화풍이 달라졌다. 그동안 유화를 고수해 오다가 밝은 색감의 수채화로 풍경과 인물을 그렸고 살롱전에도 입선을 했다. 1900년 파리 박람회에서 1등상을 받은 것도 수채화 작품이었다.

둘째, 스웨덴 미술 아카데미 출신으로 전도유망한 화가였던 카린이 스스로 모델이 되는 등 남편을 내조하고 가사와 육아에만 전념하였다. 장인도 점차 그를 인정하게 되고 1888년 순트보른에 있는 고향집을 딸네 부부에게 넘겨주었다. 그곳으로 이주한 젊은 부부는 예술가의 취향에 따라 그 집을 아름답게 꾸미고 8명의 자녀가 새로 태어날 때마다 방을 늘려갔다. 

 

셋째, 라르손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자녀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 것 이상으로 노력했다. 첫 딸을 얻고 공중제비를 돌 정도로 감격스러워한 그는 스튜디오에서 자녀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자녀들이 노는 모습을 그리는가 하면 집안팎의 소소한 일상을 그림 소재로 삼았다. 1899년 이런 그림들을 모아서 "우리집"이라는 화집을 출판했는데 그도 놀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 The Letter, Oil painting (1885) 출처: Sotheby's
* Carl Larsson's Studio, Watercolor (1899) 출처: Wikimedia Commons

처복(妻福) 많은 사람의 조건

여기서 칼 라르손은 정녕 처복(妻福)이 많은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1]

살롱전 낙선을 거듭했던 그가 파리 교외의 그레 쉬르 루앙에서 스웨덴 부잣집 딸인 카린을 만났을 때 용기를 내서 구애를 했고, 서로 마음이 통했다. 라르손은 그녀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림 그리는 기법을 바꾸기까지 했다.

 

바로 이것이 동양의 운명철학에 있어서도 중요한 포인트이다.

사주추명학(四柱推命學)에서는 재성이 재물뿐만 아니라 처(Wife)를 뜻하는데 두 가지 다 노력하여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알기 쉽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진 않다. 때로는 쫓아가서 붙잡아야 하지만 어떤 때는 가만이 앉아서 찾아오길 기다려야 얻을 수 있다. 재성(財星)과 처궁[日支]이 바로 자신을 나타내는 일간(日干)을 받쳐주고 협조적이어야 헛수고를 하지 않는다.[2] 만일 일간과 형충파해(刑沖破害)하는 관계가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사건이나 사단을 맞게 된다고 한다.[3]

 

그리고 대운(大運) 상으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타이밍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호운(好運)을 맞는 시기가 몇 차례 오는 법이다.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겠지 하고 막연히 다음 기회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이 사람이다' 싶으면 좌우 살피지 말고 그를 붙잡아야 한다. 사람은 워낙 자유의지(自由意志)가 강해서 타고난 운명조차 그의 선택에 의해 달라진다고 하니 말이다.

 

* Cosy Corner from A Home, Watercolor (1894) 출처: Wikimedia Commons

여기서 사람의 운명은 과연 타고난 대로 이미 결정된 것인가, 아니면 본인의 의지적인 노력에 의해 달라질 수도 있는가 하는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논하는 바와 같이 유전적 요소 1/3, 환경적 요소 1/3, 알 수 없는 우연적 요소 1/3로 결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장기간 쌍둥이(일란성 쌍생아)들을 연구 관찰해 온 과학자들의 결론도 그러하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는 1979년부터 쌍둥이 2000쌍을 대상으로 똑같은 유전적 요인이 직업이나 환경에 의해 얼마나 다른 질병 발생으로 나타나는지 장기간에 걸쳐 비교 관찰하고 있다. 심지어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는 일란성 쌍둥이 한 명을 우주정거장으로 보내 1년간 지내게 한 후 지구에 남은 쌍둥이와 비교하는 실험을 하였다.[4] 

 

어떠한 역경에 처하든지 간에 "신은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쪽 문을 열어주신다"(When God closes one door, He opens another)고 믿고서 노력한다면 바로 2/3의 힘으로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법이다. 역술가들도 사주의 대운법(大運法), 손금의 유년법(流年法)을 통해 보더라도 스스로 선택하여 노력할 때 운명이 바뀔 수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운명감정에 있어서 희미하게 나타난 그 무엇이 바로 본인이 해결해야 할 몫인 것이다. 

필자 역시 70줄에 들어선 은퇴자로서 그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한 줄기 희망을 품고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를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하는 "What if" 상황이 이루 셀 수도 없이 많았다.

 

* 순트보른의 릴라 히트나스 (1890) 츨처: Wikimedia Commons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칼 라르손은 카린을 만났을 때 그녀의 미모보다 마음가짐에 더 끌렸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조건이 그녀에게 별로 내세울 만한 게 없었으므로 진심으로 온갖 정성을 기울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의 아버지를 반면교사 삼아 카린에게 친절할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랐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칼 라르손이 그린 가족과 집안의 그림들이 한결같이 따뜻하고 화사한 것만 보아도 금방 느낄 수 있다.

 

'작은 용광로'라고 불렸던 순트보른의 집 릴라 히트나스(Lilla Hyttnäs)의 구조변경이나 실내장식은 거의 전적으로 카린에게 맡겼다고 한다. 그 결과 그집의 가구와 장식은 스칸디나비아식(北歐) 인테리어의 모범[5]이 되어 가구회사 IKEA의 가구 디자인에 영감을 주고 전세계적인 주목을 끌기에 이르렀다.

동시대 비슷한 연배의 화가 알폰스 무하가 큰 극장이나 성당에 어울리는 포스터나 서사(epic)적인 그림을 많이 그린 것과는 대조적으로 칼 라르손은 스케일이 아주 작았다(아래 "동지의 희생제물"은 예외). 그럼에도 가정적인 사람(Family Man)으로서 그가 사회에 미친 영향은 엄청 컸다고 볼 수 있다.

 

* 동지의 희생제물(Midwinter's Sacrifice, 1914~15) 소장: 스톡홀름 국립미술관

위의 그림은 칼 라르손이 1914년과 1915년에 걸쳐 완성한 마지막 대작이다. 나라에 연속하여 기근이 닥치자 스칸디나비아 전통에 따라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날 제물을 바쳐 신의 노여움을 달래야 했다. 그러자 왕이 스스로 제물이 되기를 자청했던 역사적 사건이 있었는데 이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왕의 희생과 기근의 해소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는 없으나, 이 그림에 나타난 바와 같이 지도층이 솔선수범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은 지금까지 맥맥히 살아있다. 경호원도 없이 외출을 하는 구스타프 국왕은 국민들의 부담을 줄이려고 왕위계승서열이 먼 손주들의 왕실직함을 폐지하고 경제적 지원을 없앤 바 있다. 

스웨덴 국립미술관에서는 이 작품을 인수하기를 거절하여 한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다가 칼 라르손 작품 전시회를 계기로 국립미술관이 1997년에 다시 사들여 여기서 보듯이 미술관 계단홀 중앙에 전시하고 있다.

 

* 스웨덴 국립미술관은 규모는 작아도 스칸디나비아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출처: 북유럽 교환학생 [나희일기]

Note

1]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복이 좋았던 사람은 고구려 평강공주와 혼인한 온달일 것이다. 조선 효종조 이완 대장의 부인도 매우 지혜로웠다고 전한다. 그런데 처복과 여복(女福)은 다르다. 알폰스 무하의 경우 파리에서 그림을 그린지 5년이 되도록 아무 성과가 없었으나 36세되던 1896년 크리스마스 때 명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포스터를 그려줌으로써 일약 유명화가가 되었다. 그녀는 妻를 나타내는 재성(財星)이 아니라 파트너에 해당하는 비겁(比劫)으로서 그와 합(合)이 맞았고 그의 대운과도 기막히게 잘 어울려 행운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2] 사주를 가지고 운명을 감정하는 역술가들은 처복이 많은 사람은 자기주도적이고 의욕이 많으며(身强) 조직생활(官星) 및 경제생활(財星)을 잘하고 돈도 잘 번다(財星이 用神 또는 喜神)고 말한다. 부인에게 돈을 잘 벌어다 주는 사람이 처복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처복이 없다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그런 조건을 타고나지 못했을지라도 칼 라르손처럼 그에게 호운이 다가왔을 때 기회를 꽉 붙잡고 그것을 잘 살린다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법이다. 만일 칼 라르손이 일찍이 점궤(서양에서는 점성술?)만 믿고 그림 공부는 소홀히 한 채 여자 만나는 일에 주력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답도 뻔한 것이 칼 라르손처럼 인생의 바닥까지 떨어져보지 않은 사람은 카린 같은 여자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3] 로마제국의 디도(Titus) 황제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가졌지만 그가 사랑했던 유대왕국 버니게 공주와 결혼할 수 없었다. 그는 로마 장군으로서 유대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용맹과 황제로서의 위엄을 갖추었음에도 유대 공주를 '제2의 클레오파트라'라고 배격하는 로마 시민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왜냐하면 디도 황제에게는 일개 필부와 같이 처복을 누릴 만한 자리(space, 餘地)가 없었던 탓이다. 모차르트는 대신 그에게 자비심이 있었다는 오페라 <티토의 자비(La Clemenza di Tito)>를 작곡했다.

 

4] 현재까지 쌍둥이 연구의 잠정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성격이나 취향, 질병의 발현은 대부분 생물학적 유전자 구성에 좌우되지만, 환경의 영향을 받은 후성 유전체(몸통 DNA가 아닌 변방의 염기서열)의 변화로 나이가 들면서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무엇을 먹느냐, 어떤 습관을 가지느냐에 따라 타고난 DNA를 사용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는 쌍둥이 대상 의학연구의 결과를 "노는 물이 받은 피보다 더 진하다"는 말로 요약했다. 김철중, "쌍둥이 삶에도 '피보다 진한 물' 있더라", 조선일보, 2016.11.23 참조. 여기서 무엇이 타고난 DNA 사용방식을 바꾸게 만들었는가까지 고려해야 정확한 답이 나온다. 역경을 극복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게 만든 '그 무엇'을 떠올린다면 하나님이 부여하신 사람의 '자유의지'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실감하게 된다.

 

5] 1차 세계대전 당시 스웨덴은 중립을 표방했지만 속으로는 독일 편을 들었다. 부족한 재정 탓에 세금까지 올린 결과 전후 스웨덴의 사정은 날로 어려워졌다. 부자들이 국적을 속속 이탈하는가 하면 주민 수도 크게 줄어 이러다가 나라가 텅 빌지 모른다는 위구심에 휩싸였다. 그래서 스웨덴 정부는 '행복한 가정'을 모토로 50년 전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수공예 운동을 국가적으로 후원하였다. 집을 아름답게 꾸미고 그림으로 그렸던 칼과 카린 라르손 부부가 '스웨덴 국민들을 가정적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예술 수공예 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의 중심에 섰다. 그리고 그들 부부의 그림과 수공예품이 스칸디나비아 인테리어의 모범이 되었다. 이와 같이 평생을 추구해 온 것이 시대적 요청과 부합하여야 큰 성공을 거두고 돈도 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칼 라르손이 카린을 만나기 전의 화풍을 고수하고 있었다면 그는 평범한 화가로 그쳤을지 모른다. 이처럼 재성과 대운의 오묘한 조화로 말미암아 그는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고 글로벌 기업 IKEA의 경영철학 모티브를 제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