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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iness

[설교] 주님은 포지션이 아니라 포텐셜을 보신다

Onepark 2019. 11. 10. 22:00

11월 10일 양재온누리 교회의 이상준 목사는 "예수님은 무엇을 보셨나요?”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셨다. 성경말씀은 누가복음5:27-32 (개역개정)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그때 뜻밖에도 예수님은 레위 사람 세리 마태를 손수 찾아가셨다. 당시 유대 지방의 세리들은 로마 당국으로부터 세금징수권을 부여받아 할당된 목표액을 채우면 자기 수입이 되었기에 인정사정없이 세금을 거두는 것으로 유명했다. 같은 유대인들도 그들을 손가락질하며 경원하거나 세금을 덜 내려고 그들을 피해 다니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를 응시하셨다. 마태는 순간 당황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눈길은 마치 X레이로 스캔하듯이 그의 욕망과 고민을 꽤뚫어 보시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때 단호한 어조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라.”

마태는 마법에 홀린 것처럼 그의 말씀을 거역하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다음 순간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예수님을 따라나섰다. 다시는 그 자리에 복귀할 수 없는 만큼 그가 그동안 누려왔던 모든 특권과 기득권을 포기하고 나선 것이다. 마태란 이름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예수님은 그에게서 무엇을 보셨을까?

 

첫째, 마태에게는 죽고 싶도록 갈망했던 그 무엇이 있었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그만큼 삶에 대한 욕망도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마태는 자기 발로 예수님을 찾아갈 수 없었다. 나병환자, 중풍병자는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의 힘을 빌어 예수님을 찾아갔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았던 세리는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일반 사람과 예수님의 관점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정지화면으로 보지만 주님은 현재와 과거, 미래까지 동영상으로 보신다. 마태의 절박한 상황을 아시고 주님이 먼저 찾아가셨다. 과거의 일로 그를 낙인찍지 않으셨다.

 

여기서 연상되는 가요가 있다. “거위의 꿈” 가사를 보면 거위도 새에 속하는지라 하늘을 날고 싶은 것이다. 현실은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미래의 포지션을 설정하면 영적 활주로를 달려 날아오를 수 있다. 대학 다닐 때 청량리의 법퍼 교회에 봉사하러 간 적이 있다. 그곳 담당하시는 목사님이 우리를 보고 “[어린 나이에] 이곳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반문하셨다. 청량리의 몸 파는 여자들도 가치 있고 온전한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렇기에 자기네 수입의 일부를 기꺼이 헌금으로 바치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은 마태의 영혼이 거의 심정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아시고 심폐소생술을 해주러 가신 것이다.

 

* 목사님의 설교 도중 스크린에 "거위의 꿈" 가사가 올려졌다.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수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 해요

 

둘째, 예수님은 마태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내다보셨다.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을 기념하여 큰 잔치를 열었다. 그로서는 가장 기쁘고 영광스러운 날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따르는 무리와 세리, 죄인들을 다 초대했다. 로마식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식사를 하는 큰 연회였다.

이것을 본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비판의 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의 속내를 아시고 병자에게 의원이 필요한 것처럼 영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오셨음을 말씀하셨다. 이러한 경우에는 끼리끼리 모인다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이 아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보였던 것이다.

 

* 이날  한동대를 위한 비전헌금 시간에는 한동대 아카펠라 그룹이 나와 찬양을 하였다.

오늘의 말씀 중에서 27절을 보면 예수님은 밖으로 나가셨다. 이적을 행하시자 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사람들을 떠나 한 사람을 찾으러 나가신 것이다. 마태에게는 다른 사람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집요하게 세금을 거두는 것처럼 복음도 집요하게 전할 것임을 아셨다.

그 결과 마태는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계보에 속하고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족보를 조사해서 밝혀냈다. 그리고 구약에 나오는 메시아에 관한 기록을 100곳이 넘는데도 일일이 찾아내 예수님이 그 메시아임을 증명했다. 그때까지 어느 누구도 하지 못했던 큰 작업이었고, 유대 서기관들도 이를 반박하기 어려웠다.

여러분도 나만의 장점과 가능성을 알아보는 지도자를 만나는 축복이 있기를 기원한다. 목사 개인적으로도 어려서부터 생각이 아주 많았는데 이번에 기도원에 가서 깨달았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묵상을 통해 말씀을 정리하고 선교의 메신저로 활동하라”는 것이었다. 성도 여러분도 이와 같이 간구하며 노력할 때 주님의 말씀이 삶 속에 나타나는 순간이 올 것임을 축원한다.

 

In my opinion,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것(medical practice)이나 세리 마태를 부르신 것(religious practice of calling)은 그때가 아니면 주님의 기적 같은 은혜를 바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폴란드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심보르스카의 "두 번이란 없다 (Nothing Twice)"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는 "우리는 연습 없이 태어나서 실습없이 죽는다"고 읊었지요. KoreanLII의 'Practice' 항목을 찾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