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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수술은 잘 끝났지만 환자가 죽으면?

Onepark 2018. 10. 23. 16:06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5층에서 법무부 상사법무과에서 주관하는 기업구조조정 세미나가 열렸다.

자료집을 훑어보니 법무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 성격으로 글로벌 기관투자자의 관점에서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어떠한가 현황을 보여주는 토론회 같았다.

 

* 엘리트 검사가 기용되던 자리에 2017년 8월 판사 출신 변호사가 임명되어 화제를 모았던 이용구 법무실장

나로서는 정년퇴직 후에 나가는 학술세미나라서 방관자적 입장이었지만 발제자와 토론자의 면면이 특색이 있었다.

발제자는 네덜란드 연금기금(APG Asset Management)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책임자인 박유경 이사였다.

토론은 서강대 법전원 장덕조 원장, 서울대 천경훈 교수, 기업지배구조원 김형석박사, 참여연대 이상훈 변호사가 각자 자신이 대표하는 학계, 연구소, 시민단체의 입장을 대변하듯 나누어 맡았다.

나보다 반년 먼저 정년을 맞은 외국어대 최완진 명예교수가 사회를 보았다.

 

* 외국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하다가 네덜란드 연기금의 아시아 지역 투자를 총괄하고 있는 박유경 이사

예상은 했지만 APG 박유경 이사의 지적과 비판은 아주 신랄했다.

한국 대기업의 주주총회에 참석해보면 기업경영의 투명성, 특히 이사와 이사회의 회사경영에 대한 책임성에 의문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한국 기업의 수익성과 장래성을 믿기에 투자를 많이 하고 싶어도 자기 팀의 담당자들은 기업지배구조, 특히 오너 리스크를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의 재벌 총수 치고 범죄자, 전과자 아닌 사람 있나요?" 

 

박 이사가 보여준 글로벌 기관투자자의 입장에서 본 대기업의 기업지배구조 그림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법에 의하면 주주와 투자자의 이익이 이사회를 통해 기업경영에 반영되어야 함에도 그룹 기획조정실을 통하거나 또는 계통도 밟지 않고 오너의 의사가 계열사의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었다.

 

* 좌로부터 장덕조 교수, 이상훈 변호사, 최완진 교수, 천경훈 교수, 김형석 박사

오늘 로스쿨 심사를 받는다면서 먼저 토론을 하고 떠난 장덕조 교수는 법학자의 입장에서 오늘의 발제자와 상법 개정안을 비판했다. 외국에서 타당성이 입증된 제도라 하더라고 우리나라 기업풍토에 맞지 않으면 도입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감사위원회 제도가 미국에서처럼 한국에서도 기능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오늘날 정부와 여당에 대한 최대의 발언권자인 참여연대의 이상훈 변호사는 기업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요구가 다소 과하더라도 한국의 대기업이나 제도환경은 이를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자인 최완진 교수는 평생 동안 상법을 연구해온 학자로서 할 말은 많지만 사회자로서 다른 기회로 미룬다고 말하고 플로어에서 회사법 교과서를 쓴 율촌 임재연 변호사와 상장협회 김춘 팀장에게 발언기회를 주었다.

나도 한 마디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다. 그러나 "정년퇴직 교수가 뭐하러 나서는가" 하는 생각에 참았다.

하지만 지혜가 담긴  다음과 같은 촌평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나 혼자의 독백

 

"박 이사님, 한 가지 물어봅시다. 해외 의학교과서에 쓰여진 대로 환자 수술은 잘 끝났어요. 그런데 환자의 체력이 수술을 견디지 못하고 환자가 죽어버리면 그 수술 잘 한 겁니까? 그 병원에 다른 환자가 또 찾아올까요?

지금처럼 대기업을 잠재적인 범죄집단으로 몰아가는 기업환경 하에서 외국인 주주들이 주주총회에서 본사를 오너리스크가 없는 싱가포르로 옮기라고 의결하면 그대로 따라야 할까요? 죽 쒀서 X 주는 격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