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의 마지막 날 이번 여행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첫 날 가보기로 했던 수니언 곶의 포세이돈 신전을 찾아가 보고 아테네의 몇 곳을 더 보면 얼추 그리스에서 할 일은 대부분 완수한 셈이다.
피닉스 호텔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이번 여행에 대한 각자의 인상과 소감을 나누었다.
주말이라서 발칸 반도의 남단 수니언 곶으로 가는 도로는 바닷가로 놀러가는 사람, 무리지어 사이클링하는 사람들로 붐빌 정도였다.
이곳은 따로 백사장 있는 해수욕장이 없으므로 어디서든지 수영복 입고 들어가 해수욕을 즐기면 된다고 했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처럼 스트레스 받지 않고 또 있는 스트레스도 대화하는 것으로 풀며 삶을 즐길 줄 안다고 한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는 시에스터를 즐기지, 또 항산화물질이 듬뿍 들어있는 올리브와 야채 등 지중해식 식사를 하지, 수영 같은 운동을 많이 하지 그 덕분에 담배를 아무리 피워도 장수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를 이곳저곳 돌아보니 자연환경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찬란한 고대문화를 건설했고, 이웃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이겼을 뿐더러 알렉산더라는 걸출한 영웅의 지휘 하에 세계를 지배하고 천년 후에는 르네상스의 도화선이 되었던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우선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고 얼마 안 되는 평야지대도 석회암 토질이어서 밀 농사는 못짓고 보리를 재배하여 주식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나가도 바다이므로 그리스인들은 해외로 진출하여 지중해를 무대로 해상무역과 광산개발을 통해 부족한 식량을 충당하고 식민지를 건설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 결과 평민들도 부를 쌓고 해외견문을 넓혀 귀족 못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평민들도 민주적인 토론을 즐겼으며 귀족들에게 당당하게 참정권과 재산권을 요구하였다. 또한 평민 젊은이들로 구성된 그리스 군대는 나라를 지키고 영토를 넓히는 책무를 다하고 그만큼 목소리를 높였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있어서도 이들 용감한 그리스 보병부대는 노예와 피정복민 병사들로 구성된 페르시아 군대보다 병력이나 무기는 열세였지만 다리우스 왕과 크세르크세스 왕의 연이은 공격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 고전 속에 담긴 그리스 정신이 중세 암흑기를 끝내고 르네상스의 찬란한 불꽃을 일으켰다.
그리스 대표 자리를 놓고 아테나이와 겨루었던 포세이돈의 신전은 에게해를 지키는 수니온 곶에 있다.
아테네 항에 들어오는 뱃사람들은 햇빛에 빛나는 대리석의 포세이돈 신전을 보고 무사히 고향에 돌아왔음을 실감했을 것이다. 마치 뉴욕항 입구의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에 들어오는 사람들(특히 유럽 이민자)을 환영해준 것처럼.
포세이돈 신전 옆에 모진 바닷바람에도 꿋꿋이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가 대견스러워 보였다.
이번 그리스 여행에서 이 땅의 역사적 문화재를 파괴한 주역이 신앙심 깊고 권력을 가진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었다. 파르테논 신전에 눈 하나 깜짝 안하고 포격을 명한 베네치아 도제 모로시니가 그랬고, 이교도들을 제국에서 추방하고 그들의 신상을 파괴하도록 명령한 로마 황제 데오도시우스 1세와 2세가 그러했다.
오늘날에도 종교는 다르지만 아프간 불상을 대포로 파괴한 탈레반, 바그다드 박물관의 소장품을 파괴하고 약탈해간 IS도 종교적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들인 점에서 그들과 같다.
이들 근본주의자들은 왜 그러한 만행(vandalism)을 서슴치 않을까?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막지는 못해도 이를 함부로 드러내지 못하게 만드는 다른 강력한 규제장치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우선 역사적 문화재를 파괴하는 것은 복원 불가능한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세계문화유산(World Cultural Heritage)을 지정하고 있는 UNESCO의 활동은 치하 받아 마땅하다. 문화적 다양성(cultural diversity)은 생물학적 다양성 못지 않게 인류생존에 필요한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둘째, 특이한 문화재는 오늘날 중요한 관광자원으로서 현금 수입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만 해도 제주도에서 물길질하는 해녀가 고달픈 직업인이라고만 생각했지 외국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관광자원이라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여기에는 해외여행의 자유화, 인터넷을 통한 지식정보의 유통이 크게 기여하였음을 알아야 한다.
셋째, 문화재가 별로 가치가 없다고 보고 이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메커니즘에도 주목해야 한다. 그리스의 수많은 대리석 조각이나 기둥은 이것을 빻아서 소성시키면 손쉬운 시멘트 원료가 된다는 점에서 별다른 죄의식 없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전적, 도자기를 강냉이나 엿으로 바꿔먹지 않았던가! 문화재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주는 시장의 존재도 필수적이다.
이것은 국민들의 전반적인 문화적 소양과 형이상학적인 가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가능한 일이다. 결국은 '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아테네에서의 마지막 오찬은 체코식 흑맥주와 비프 스테이크를 주특기로 하는 레스토랑에서 가졌다. 한국에도 기네스 흑맥주가 있지만 마지막 오찬에 곁들인 이곳 흑맥주는 실로 별미였다.
이날 오전에 소지품을 분실하는 사건이 있었으나 포럼 회원의 연대감(Solidarity)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고 무난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우리는 큰 탈 없이 그리스에서 여러 가지 유익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을 서로 축하하였다.
공항 갈 시간까지는 아테네 시내에서 몇 군데 명소를 더 관광하기로 했다.
우리 일행은 근대 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스타디움, 오후 4시면 근위병 교대식이 열리는 국회의사당 앞 무명용사의 묘, 유명 패션 스토어가 즐비한 아테네의 명동 같은 에르무 거리 등을 자유롭게 둘러보았다.
출발시간에 맞춰 아테네 공항에서 무사히 체크인하고 1주일 이상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친절하게 안내해준 가이드 곽동훈 씨와도 작별하였다. 그리고 아테네 갈 때와는 역순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기내 영화 "The Man in the High Castle"은 영화 "Minority Report"의 원작자로 유명한 필립 K. 딕의 소설을 아마존에서 TV 시리즈로 만든 것인데 2차대전 때 독일과 일본이 승리하여 오늘날의 미국이 독일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이러한 대체역사(alternative history)를 일반화하여 만일 그리스 연합군이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군에 패배했더라면? 알렉산더 대왕이 몇십 년 더 살았더라면? 델피 신탁이 아직도 활발히 기능하고 있다면? 하는 상념이 계속 꼬리를 물었다.
비행기 안에서 보게 된 영화
"The Man in the High Castle" 은
미국을 비롯한 태평양 연안국들이
아직도 일본의 지배 하에 있다고 하네.
페르시아 대군을 격퇴한 그리스 사람들에게
물어볼까? 적국의 압제와 수탈이 심한 만큼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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