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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학자로서 정년을 맞는 소회 (1)

Onepark 2018. 7. 9. 00:00

[주] 아래의 글은 경희법학연구소에서 2018. 6. 30 발행한 경희법학 제53권 2호에 실린 필자의 회고담 첫 번째 편이다.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요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리라. 잠언 2:10-11.

For wisdom will enter your heart, and knowledge will be pleasant to your soul.
Discretion will protect you, and understanding will guard you.

 

연보 대신 회고담을 남기는 이유

 

경희대 강단에 선 지 18년 만에 정년을 맞았다. 첫 직장인 은행에서 22년여 근무했으니 40년의 현역 활동을 마치고 물러나는 셈이다. 관례에 따라 논문집을 만들어 연구실적․활동이력을 나열하거나 학술 좌담을 나누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남달랐던 경력이나 관심사를 알리고 개인적인 소회를 나누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박사 제자를 많이 배출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내세울 만한 학문적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경희법학」은 법학연구소장을 맡기 전부터 편집위원으로 활동했고 소장을 그만 둔 후에도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정년기념호에 연보를 올리는 대신 그 동안 관심을 갖고 연구해 온 것을 후배와 후학들에게 부탁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필자는 은행에서 주로 국제금융업무를 다루다가 구조화금융에 관한 실무지식을 토대로 박사학위[1]를 받은 후 교수로 전직하였다. 이러한 경력 탓에 세월이 많이 흘러 이미 학술적 효용을 상실한 저서논문[2]을 소개하기보다는 나의 관심사, 학문적 기여, 후학에 대한 기대를 설명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연구생활은 시종 키워드를 실용주의와 高부가가치에 두고 그의 善순환을 위해 노력하였기에 이러한 프레임워크에 맞춰 서술하고자 한다.

 

 

* 이탈리아 코모 호반의 벨라지오 록펠러 컨퍼런스 센터

 

국제금융의 전문성을 갖추다

 

필자의 커리어는 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의 국제금융과 법제조사 업무에 집중되었으며 IMF 위기 당시에는 은행의 법무팀장을 맡아 적잖이 고생을 하기도 했다. 은행에서는 국제금융의 A부터 Z라고 할 수 있는 외화자금조달, 외화채권발행, 차관도입, 국제금융시장조사, 머천트뱅킹, 해외현지법인 통할을 두루 담당하였다. 은행의 장래 유망한 업무로서 지금은 구조화금융(structured finance)이라 일컫는, 프로젝트 금융과 자산유동화(ABS)를 깊이 있게 연구하여 실무자로서는 드물게 논문도 여러 편 발표하곤 했다.

그 덕분에 IMF 위기 당시 재정경제부의 자산유동화법 입법 태스크포스(task force: T/F)에 관여했고 그 T/F참가자들과 함께 입법연구자료를 토대로 「금융혁명 ABS」라는 책을 공저로 발간하였다. 그래서 한동안 이 책을 출판한 한국경제신문사 부설 한경 아카데미에서 ABS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직장에서 보내준 학술연수 케이스로 미국 댈러스 소재 남감리교대학교(SMU) 로스쿨에서 LL.M.과정을 이수했다. 유학 중에 국제거래법에 관심을 갖고 책을 써볼 생각을 하였다. 그 모델은 폴솜 교수의 International Business Transactions (IBT) 책이었다. 그런데 행내용(行內用) 업무자료로 책을 낸 것이 예상 밖의 호평을 받아 상업출판까지 하게 되었다. 우연찮게도 이 책의 서평을 읽은 경희대 최승환 교수가 갓 출범한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야간)의 국제거래법 강사로 추천하여 경희대 강단에 서게 된 것이다.

경희대 대학원에 적을 두고 학위논문을 준비한 것이 때마침 국내에서 관심이 고조되고 있던 자산유동화(ABS)였다. 정완용 지도교수와 상의하여 박사학위 논문은 프로젝트 금융과 자산유동화를 접목시킨 새로운 민간자금 조달 방식으로 정했다.

 

국제금융거래법 연구회 모임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 로스쿨 연수를 마치고 1994년 8월 은행에 복귀하였을 때 만들어졌다. 귀국인사를 받던 조사부장이 학술연수 갔다 온 사람들은 비싼 돈 들여 공부한 것을 잊어버리기 전에 업무참고용 책자를 만들어 놓으라고 엄명을 내리셨다. 연말까지 넉 달밖에 남지 않아 책을 내기에는 시일이 촉박했으나 폴솜 교수의 책을 번역ㆍ출간할 생각도 가졌기에 일단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부장에게 선뜻 그리 하겠다고 약속하고 미국에서 챙겨온 자료들을 펼쳐놓고 프레임워크를 짰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무실에서나 집에서나 쉬는 날도 없이 책 쓰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 결과 12월 들어 「세계화시대의 국제금융거래법」이라는 490쪽의 저서를 행내용으로 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조사부와 국제금융부, 국제영업부 관련부점에 배부하고 나서 표창까지 받았다. 모르는 은행 거래처에서도 좋은 참고도서를 펴내줘 고맙다는 감사인사를 받기도 했다. 나 스스로 국제금융업무를 취급하면서 가졌던 의문을 미국 로스쿨에서 공부하면서 해소할 수 있었기에 그 과정을 풀어쓴 것이었는데 내심 만족스러웠다.

그러던 차에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석광현 변호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국제거래 실무상의 이슈를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같이 공부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그리하여 1995년 3월 은행 조사부 회의실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산업은행의 국제업무와 프로젝트 금융에 정통한 반기로 선배를 모시고 조사부에서는 필자와 정순섭 조사역(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금융위원회 비상임위원)이 참석했다. 그리고 외부에서는 IMF 당시 거의 모든 은행들의 합병 사건을 다루었던 대학 동기이기도 한 세종법무법인의 송웅순 변호사, 김앤장의 석광현 변호사(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한국은행 경제연구소 고동원 박사(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필자의 SMU 동문인 강세원 미국변호사(현재 미국에서 신학공부 중)와 SMU 후배인 외환은행의 김양곤 조사역(경희대대학원 박사)이 고정적으로 참석하였다.

그리하여 매달 관철동에 있는 산은 조사부 회의실에 모여 각자 연구한 것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 참가자의 대부분이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교수가 되었으니 그 당시 서로 연구하고 토론하던 것이 매우 진지하였고 각자 많은 자극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1년 만에 책자로 만든 세미나 자료집의 목차를 훑어보면, ▷대출양도 및 참가의 법적 성질(반기로),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효과적인 재원조성을 위한 법적장치 연구(박훤일), ▷화환신용장거래의 법률관계와 준거법(석광현), ▷스왑거래에 있어서 몇 가지 법적 문제점(정순섭), ▷국제거래와 담보의 취득(박훤일)이 실려 있다.

 

2018. 4. 오랜만에 모인 국제금융거래법연구회 회원들: 왼쪽부터 정순섭, 송웅순, 석광현,
필자, 스페셜게스트인 윤성근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김양곤, 반기로 (존칭생략)

 

개인정보 보호에 눈을 뜨다

 

경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여러 교수님들이 이끌어주신 덕분에 2000년 6월 경희대 전임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국제거래법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분야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학자로서 커리어를 마감할 때까지 연구주제가 된 개인정보의 국제이전(transborder data flow: TBDF)이었다. 중요한 계기는 은행 실무를 떠난 마당에 하루가 다르게 이노베이션이 일어나는 국제금융을 계속 연구 분야로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연찮은 기회에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대학교(UNSW)의 그레이엄 그린리프 교수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UNSW 법학대학원에 유학 중인 한국 신문기자의 요청으로 한국과 호주의 개인정보보호 법제를 비교하는 영어논문 심사를 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민간부문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정보통신망법이 본격 시행되던 당시 이 주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여럿 있었지만 영어 논문을 발표한 사람은 필자가 유일했던 탓이다.

그 결과 대외적으로 개인정보보호법 전문가가 되어 그린리프 교수의 천거로 프라이버시법 국제비교 연구진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2006년 초 미국 국립과학재단(NSF)과 록펠러재단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이태리 밀라노 북부 코모 호반에 있는 벨라지오에서 1주일간 워크샵을 가졌다. 벨라지오 맨션은 본래 로마 귀족의 영지였는데 그 후손이 록펠러 재단에 기부하면서 록펠러 재단은 풍광이 수려한 이곳을 예술가와 문인, 학자들의 연구장소로 제공하였다. 연수원 측에서 특급호텔 수준의 숙식을 제공하는 덕분에 미국, 호주, 프랑스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학자들과 교분을 나누며 각국의 법제와 현실을 비교하는 세미나를 알차게 가질 수 있었다.

그 결과물이 에드워드 엘가 출판사에서 발간된 Global Privacy Protection[3]이다. 개인정보보호 법제가 등장한 후 한 세대가 지난 40년 성과를 기록한 책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린리프 교수의 추천으로 아시아 프라이버시 전문가 네트워크(Asian Privacy Scholars Network: APSN)에도 가입하고, 그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에디터로 있는 개인정보 국제전문지(Privacy Laws and Business International Report: PLBI)에 한국 관련 기사를 기고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법률정보를 전하다

 

그린리프 교수와의 인연은 그를 경희대 해외석학(International Scholar)으로 초빙하면서 더욱 돈독해졌다. 젊어서부터 한국 고아를 둘이나 입양하여 키우고 있던 그린리프 교수 내외분은 기꺼이 경희대를 찾아 오셨다. 그리고 가든 플래너인 사모님[4]은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과 다른 한국의 정원에 매료되었다면서 나도 몰랐던 여러 가지 사실을 알려 주셨다. 이를테면 중국의 정원은 스케일은 크지만 높은 담에 가두어 놓아 폐쇄적이며, 일본의 정원은 아기자기하고 예쁘긴 하지만 너무 인공적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한국의 정원은 툭 터진 산과 들판을 바라보며 바깥경치를 빌려온 것(借景)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린리프 교수는 필자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그것은 상업적인 법률 데이터베이스를 통하지 않고 누구나 법률정보를 인터넷을 통해(Law via the Internet) 쉽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미 1996년에 공동 창업한 AustLII (Legal Information Institute)를 통해 이 사업을 벌이고 있는 그린리프 교수의 강력한 권유로 한국의 법률정보를 영어로 소개하는 KoreanLII.or.kr 사이트를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결정적인 동기는 2010년 9월 국회도서관이 주최한 세계법률정보 네트워크 (Global Legal Information Network: GLIN) 서울 총회에서 한국 대표로 발제하였는데 그 작업을 실천에 옮길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린리프 교수의 채근에 못 이겨 내가 직접 그 작업을 실행하기로 했다.

 

2018.4.10. KoreanLII는 1800 항목을 달성했다.

 

위키피디아식 법률백과사전 제작

 

마침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국제법무대학원 김현준 조교의 도움을 받아 Wikipedia처럼 생긴 온라인 영문 법률백과사전을 2011년 9월 말에 론칭하였다. 당초 집단지성을 이용하여 위키백과와 같은 사전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으려니 생각했으나 학술지의 영문초록을 전재하는 것조차 저작권 문제로 용이하지 않았다. 더욱이 법전원생들을 참여시키는 것은 변호사시험이나 변호사 경력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기에 바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결과 6년이 지나도록 동역자(collaborator) 없이 혼자서 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말이 백과사전이지 사전으로서 구실을 하게끔 콘텐츠를 구성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필자가 전에 편집진으로 참여했던 한국금융연수원의 「금융법사전」원고를 토대로 내용만 업데이트하면 될 줄 알았으나 백과사전 틀에 맞게 최신정보를 올리는 작업은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500 항목 정도면 그 기능을 수행할 줄 알았으나 마치 ‘탄탈루스의 벌’처럼 항목이 늘어날수록 부족한 점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그린리프 교수는 2015년 11월 시드니에서 열린 연차총회에서 KoreanLII가 Free Access to Law 국제기구[5]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추천해주셨다. 더욱이 자신의 논문과 저서에서 개인정보에 관한 KoreanLII 기사를 참고문헌으로 인용하기까지 했다. 학술논문에서는 언제든지 내용이 바뀔 수 있는 Wikipedia 기사가 참고문헌으로 금기시되는 데도 말이다.

그리하여 2017년 말에는 1700여 항목을 달성하고 어떠한 주제이더라도 한 학기 강의가 가능할 정도의 분량을 축적할 수 있었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외국 유학생을 상대로 LL.M. 과정을 운영한다면 경희대 로스쿨에서는 이것을 수업자료로 쓸 수 있겠다는 희망과 기대를 가졌으나 아직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다른 매체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컨텐츠를 보유함으로써 인공지능(AI)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지식자산을 축적하는 것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2016.12.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교에서 열린 APSN 회의에서 발표하는 필자. 오른쪽 아래는 플로어에 나란히 앉은 그린리프 교수와 필자

 

 

Note

1] 학위논문 「민간주도에 의한 프로젝트 금융의 법적 연구는 민간주도의 프로젝트 금융 – PF와 ABS의 접목」 단행본으로 2004년 경희대 출판국에서 간행되었다.

2] 필자의 모든 저서와 논문, 에세이, 시론, 영화평, 여행기는 개인 홈페이지에 주제와 시간 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3] James Rule and Graham Greenleaf (Ed.), Global Privacy Protection - The First Generation, Edward Elgar, 2008; 그린리프 교수는 이 책의 범위를 크게 확장하여 2014년 Oxford 대학출판부에서 Asian Data Privacy Laws – Trade and Human Rights Perspectives 라는 제목의 두꺼운 책을 출판하였다. 한국 편에서 필자의 KoreanLII 여러 기사를 직접 참고문헌으로 인용하였다.

 

4] 질 매튜 여사는 어느 한국인보다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전국을 답사한 성과를 2018.6. 한림출판사에서 Korean Gardens-Tradition, Symbolism and Resilience 책으로 출판하였다.

 

5] 2002년 결성된 Free Access to Law Movement (FALM)는 “Law via the Internet”이라는 기치 아래 LII(Cornell)을 비롯한 전 세계의 60여 회원들이 공통관심사를 논의하고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매년 총회를 열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법제연구원과 KoreanLII가 각각 2009년과 2015년에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학자로서 정년을 맞는 소회 (2) to be continued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