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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학자로서 정년을 맞는 소회 (2)

Onepark 2018. 7. 9. 01:00

[주] 아래의 글은 경희법학연구소에서 2018. 6. 30 발행한「경희법학」제53권 2호에 실린 필자의 회고담 첫 번째에 이은 두 번째 편이다.

 

영어 강의와 영문 보고서

 

2007년 미국 UCLA 로스쿨에 방문교수로 가 있는 동안 서울에서는 로스쿨 인가신청 준비에 한창이었다. 필자로서는 미국 로스쿨에서 청강을 하고 미국 교수들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토대로 로스쿨이 발족하면 하고 싶은 과목을 개설하겠다고 적어냈다. 국제거래법과 은행법 외에 기업금융법, 개인정보유통법, 통일시대의 국제거래법은 영어로 강의하겠다고 자원했다. 로스쿨 인가조건을 보면 연구와 강의 자격을 ‘강의적합성’이라 하여 엄격하게 심사하고 특히 외국어 과목은 영어 강의는 물론 국제회의 참석이나 국제자문 경력까지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로스쿨 교육은 학문의 후속세대 양성이 목적이 아니라고 본다. 절대다수의 수강생들이 변호사시험에 무난히 합격할 수 있는가, 로펌 채용담당자에게 로스쿨에서 성실하게 공부하였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가에 관심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변호사시험과 무관한 선택과목이나 100% 토론 중심 영어 강의는 실시하기 어렵고 실무에 법률지식을 적용할 수 있는 응용력을 키우는 일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한국 법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고 우수하다는 점을 영어로 발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점을 지적하고 많은 영문자료를 요청한 분이 그린리프 교수님이거니와 그분의 교열 내지 공저로 많은 영문자료를 발간한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린리프 교수가 우리나라에서 새로 제정한 개인정보보호법의 내용을 알고 싶어 하기에 누구보다도 먼저 법률 전문을 번역해 드렸고 주요 내용을 분석·정리해서 보내드렸다. 그러자 그린리프 교수는 필자를 교신저저로 해서 PLBI에 한국의 새로 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을 소개하였고 이 논문[6]은 SSRN에도 게시되어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읽어본 상위 10%의 인기논문으로 랭크되어 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성과는 2017년 유럽연합(EU)으로부터 우리나라의 개인정보 보호수준이 EU기준에 비추어 적정하다는 평가(Adequacy Assessment)를 받게끔 자체평가보고서를 작성할 때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학자로서 마지막 연구저술도 그와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에스토니아 탈린 대학교의 마트 수시 교수의 제안으로 영국 루트리지(Routledge) 출판사에서 2019년에 펴낼 예정인 「인권, 디지털사회와 법」이라는 공동연구 저서의 한국 편을 맡아 집필하고 있다.

 

* 필자가 중심이 되어 작성한 EU 개인정보보호의 적정성 판정을 위한 자체평가 보고서

IT기반의 동산담보 관리를 제안하다

 

위와 같이 법학교수로서는 이색적으로 IT 관련지식을 갖게 된 것은 멀리 산업은행 재직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평소 역사물에 관심이 많은 김시형 총재의 지시로 조사부에서 산업은행 사료전시회를 열게 되었는데 필자가 그 기획과 전시 업무를 맡게 되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일이었지만 열심을 내어 “산은의 어제와 오늘, 미래”를 컨셉으로 잡아 전시회를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전시장 입구에는 은행을 상징하는 ‘三物’이라 하여 은행원들의 돈 계산에 빼놓을 수 없는 주판과 대표적인 통신수단이었던 전화기(텔렉스), 영업시간의 시작과 끝을 알리던 종(鐘)을 전시했다. ‘과거’의 코너에서는 해방 전 북한 지역의 식산은행 점포를 북한 지도상에 사진과 함께 표시하였고, 미래 코너에서는 전시장 한 쪽의 PC 모니터에는 전시물을 소개하는 사이버 뮤지엄을 오픈하였다. 시간이 없었으므로 내가 직접 웹 에디팅을 공부하여 사료관 홈페이지(Cyber Museum)도 만들었다.

사료전시회를 마치고 나니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당시의 남북 해빙무드를 타고 북한에 평양지점을 개설한다면 무슨 영업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토지와 기계 같은 생산수단은 국가소유이므로 남한에서 하듯이 담보로 잡을 길이 막연했다. 그래서 토지 대신 담보로 이용할 수 있는 동산이나 매출채권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몇 해 전 미국 로스쿨에서 배웠던 동산담보관리(secured transactions)가 핵심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정보기술(IT)을 활용해야 한다는 데 착안하였다.

사실 학술대회에 나가서 이런 주장을 몇 차례 했는데 어느 학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에 실망하고 내가 직접 연구할 결심을 하였다. 이러한 일들이 은행의 2급 부부장 직을 내놓고 연봉이 은행의 절반도 못 되는 대학 전임강사로 전직하게 만든 동기가 되었다.

 

동산담보법 입법작업에 참여하다

 

그 후 연구를 계속한 결과 RFID(무선주파수 인식)라는 새로운 기술이 나온 것을 알았고 이를 이용한 동산담보관리가 가능함을 깨달았다. 고가의 기계․기구를 빼돌리면 담보권자는 되찾기 어려운데 RFID를 해당 기계․기구에 붙여놓으면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착안점을 당시 특허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던 손경한 변호사에게 말했더니 특허 등록을 해보라면서 변리사를 추천해 주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적잖은 돈을 들이긴 했지만 RFID와 AIDC(자동인식 데이터수집장치)를 이용한 자산관리에 관한 특허를 출원하였고 두 건의 특허를 등록하는 개가를 올렸다. 당초 해외진출에 뜻을 두고 특허조약(PCT)에 의한 해외출원을 하였으나 미국, 일본 등 외국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 다음 문제는 이를 상용화하는 것이었는데 법제화가 되기 전에는 은행들이 일체 취급하려 들지 않는다는 벽에 부딪혔다. 마침 법무부에서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을 원활히 하기 위한 동산채권담보법의 입법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국제거래법학회 손경한 회장이 필자를 천거하여 기라성 같은 민법․상법 학자들과 법안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동산담보의 현황조사를 위해서는 전자식별표의 활용이 반드시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일부 반론이 있었음에도 최종 국회 심의 과정에서 담보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전자식별표를 붙일 수 있다는 조항(동법 제17조 1항 후문)이 들어가게 되었다.

사실 IMF 위기 당시 자산유동화법 입법 과정에서도 내 아이디어를 관철시킨 적이 있다. 유동화계획을 금융위에 제출할 때 그 내역을 반드시 전자기록 등의 방법(예: CD롬)으로 작성하여 제출하도록(동법 제6조 3항) 했다. 그 결과 자산유동화의 표준화가 이루어졌는데, 이 일은 은행에서 국제금융 업무를 다룰 때의 경험이 많은 참고가 되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를 할 때 거의 예외없이 ISDA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는 것은 1981년 세계은행이 IBM과 통화스왑 계약을 체결하면서 그 계약서를 전격 공개한 데서 비롯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는 자산유동화의 제반 문서(계약서 포함)가 CD롬에 수록되었고 이것이 전자공시(DART) 시스템을 통해 그대로 공개됨으로써 ABS 법률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7]

이러한 연유로 해서 KoreanLII는 독창적이고 참신한 한국의 법제기술을 외국에 알릴 수 있는 좋은 창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2011년 9월부터 KoreanLII에 혼자서 죽자 사자 매달려 있는 것도 이러한 확신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업그레이드된 통일에 대한 준비

 

앞서 말한 산은 사료전시회를 기획하면서 북한에서의 은행영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때부터 동산담보법제에 매달렸던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인프라를 재건할 때에도 프로젝트 금융과 자산유동화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러한 주장을 펼쳤고 통일에 대비한 여러 학회와 단체에도 관여하였다. 경제와 금융 측면에서 통일문제를 생각하는 사람이 흔치 않은 상황에서 여기저기 세미나에 불려나가 주제발표와 토론을 하였고 그때마다 내 주장을 논문으로 정리해 발표했다.

그 중의 하나는 통일에 즈음하여 북한 주민들이 살던 고장을 떠나 유․이민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했거니와 통일에 즈음하여 북한 주민들에게 주민등록증 대신 스마트폰을 선물로 지급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것은 여러 체제전환국들이 사유화(mass privatization)의 과실을 바우처로 지급한 것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북한에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바탕이 되었다. 북한 주민들이 사유화의 성과를 배분받기 위해서는 일정 지역을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나아가 요즘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을 다루는 것처럼 북한 주민들이 휴대폰을 통해 공론조사에 참여하거나 현장에 밀착된 정보수집과 통계조사에 활용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여러 용역과제에 참여하거나 세미나를 통해 관계요로에 전달한 바 있다.

 

끝을 맺으며

 

출퇴근 때 이용하는 길은 회기역에서 나와 이문로를 건너 골목길로 접어들면 청량초등학교 후문을 지나 약학대학 옆으로 해서 경희중ㆍ고등학교 앞을 지나게 된다. 말하자면 불과 몇 분 사이에 도보로나마 초등학교에서 중학교-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 과정까지 섭렵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오르막길은 사전정보 없이 혼자 걷다가는 십상 막다른 골목처럼 보여 발길을 되돌리기 쉬운 길이기도 하다.

학문의 길도 그러하다. 우왕좌왕하기 쉬운 후학들을 친절히 안내하는 것이 선행 연구자의 도리인 것이다. 첫머리에 소개한 성경 말씀처럼 Understanding → Knowledge → Discretion → Wisdom을 쌓아올리는 일에 주력하면서 20년 가까이 학문 활동을 벌여왔다. “명철-지식-근신-지혜”야말로 학자의 본분이 아닌가 싶다.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기회가 주어진 일을 유감없이 해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행운을 누린 셈이지만 내가 못 다한 일을 후배들에게 떠넘기지 않았는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쪼록 보다 안전한 개인정보의 국제이전, IT기반의 동산담보관리,[8] 온라인 영문 법률백과사전 등 위에서 설명한 나의 관심사를 유능한 후배들이 완성하고 발전시켜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끝으로 「경희법학」정년기념호에 필자와 크고 작은 인연을 맺었던 여러 교수, 전문가들이 옥고를 투고해 주신 데 대하여 충심으로 감사드린다.

 

학문의 길은 계주(繼走),
바톤 넘길 때까지
힘껏 달리세.
Learning is like a relay race
Do your best
Until the baton touch!

* 17-syllable English Haiku

Note

6] Graham Greenleaf and Whon-il Park, “Korea’s New Act: Asia’s Toughest Data Privacy Law”, Privacy Laws & Business International Report, Issue 117, pp.1-6, June 2012; UNSW Law Research Paper No. 2012-28.

 

7] 우리나라에서는 창의적인 노력을 통해 ABCP 같이 자산유동화법에 의하지 않는 비공개(비전형) 유동화 사례가 크게 늘어났다. 우리나라에서 DART시스템에의 공시를 통해 자산유동화 계약서가 표준화된 것처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EDGAR 시스템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SEC는 이미 1993년부터 EDGAR 시스템을 통해 전자적인 방법으로 등록을 받은 결과 SEC에 제출되는 모든 법률문서가 공시되어 있다. 이러한 계약서를 데이터베이스화하여 거래유형별로 주요 내용을 무료 공개하는 LawInsider.com 사이트가 인터넷에 등장하였다.

 

8] 5월 23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필자가 2014년에 연구과제를 수행하였던 한국기계거래소에서 중소기업, 금융계 인사들과 간담회를 갖고 필자의 아이디어를 상당부분 반영한 IoT기반의 빅데이터를 이용한 동산금융 활성화추진 전략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