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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알함브라 궁전과 전주 한벽루

Onepark 2012. 10. 28. 16:29

 

전주고등학교의 교가 가사에도 나오다시피 옛날에는 전주천에 맑은 물이 항시 흘러 내렸다.

한벽루 주변이 이렇게 초라해진 것은 전주 인구가 증가하면서 상류 상수원에서 취수가 늘어남에 따라 전주천의 수량이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벽루 바로 밑에 인공보를 설치하여 한벽당 위 전주천의 수량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전주천은 정부가 4대강 사업에서 배제된 지방 주요하천 살리기 일환으로 실시한 ‘고향의 강’ 시범사업에 선정되어 수백 억원의 예산을 들여 정비사업을 벌이고 있다 한다.

주로 한벽루 상류지역에 여울과 소, 가동보를 설치하여 쉬리와 수달이 서식할 수 있을 정도의 1급수로 수질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벽당이란 말 그대로 맑고 시린 물이 흘러내리길 기원해본다.

위 사진의 인공보를 예고없이 낮추는 바람에 2012년 11월 1일 상오 아래 사진의 징검다리를 건너던 유치원 원아들이 물에 휩쓸려 익사할 뻔한 사고가 일어났다.

 

 

알함브라 궁전은 이 궁전을 세운 무하마드 1세가 천상의 낙원(celestial paradise)을 만들고자 한 염원에서 비롯되어 궁전 전체에 수도와 분수, 연못이 배치되어 있다.

궁전을 복원함에 있어서도 안정된 수량을 확보하여 옛날 무어인들의 방식으로 분수와 물의 흐름을 재현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중앙 정원에 있는 돌사자 입에서 분수가 나오게 하는 것은 현대 기술로도 복원이 쉽지 않은 듯이 보였다.

 

 

전주역이 교외로 이전한 후 수십 년 전에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지나다니던 철로는 한옥마을 둘레길로 바뀌었다. 그래도 한벽당 앞에 남아 있는 오모가리[4] 음식점은 옛날 일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우리들의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한벽루 아래 전주천은 하동(河童)들의 유명한 물놀이터였다. 조금 더 올라가면 각시바위, 서방바위가 있었는데 그곳은 물살이 급해서 종종 익사사고가 나는 위험 수역이었다. 그 대신 한벽당 아래는 전주천이 중바위(僧岩山) 아래서 굽이를 틀기에 점프도 할 수 있을 만큼 수심이 깊었다.

전주교대부속 초등학교 부근 방천(防川)가에 있는 집에 갈 때에도 전주천에서 모래를 채취해서 달구지에 실고 가는 조랑말을 따라 내려가면 되었다. 여름철 비가 많이 내린 뒤에는 으레 그물을 던지는 사람이 등장했고,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주천에서 빨래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광목을 세탁하여 자갈 위에 널어 말리는 풍경도 자주 볼 수 있었다.

 

* 전주시 남동쪽에서 서북쪽으로 흘러가는 전주천

 

어렸을 적에 전주천은 그 폭이 매우 넓다고 생각되었는데 지금은 청계천 만하게 보이는 것은 서울에서 오래 살아서일까, 아니면 그만큼 몸이 자란 탓일까 의문이 든다.

여름철이면 전주천 얕은 물에 ‘ㅅ’자 모양으로 돌을 쌓고 그 끝에 어항을 묻은 다음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물고기를 쫓아가 잡던 일을 지금은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그 동안 전주시가 북쪽으로 넓게 확장되고 발전하였지만, 전주천 주변에서도 거센 도시화의 바람에 눌려 소박하였던 옛 추억이 사라지는 것은 못내 아쉽게 생각된다.

 

 

한편 생각해보면 세월이 흐르면서 산천의 모습도 달라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옛일은 추억과 함께 묻어두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오늘 일을 맡겨야 하지 않을까.

알함브라 궁전에서도 후대에 축조한 기독교식 카를로스 5세 건물(밖에서는 사각형이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원형)이 부조화를 이룬 것을 볼 수 있다. 새로 만든 주변시설에 압도되어 한벽루의 모습은 옛날과 비길 바 없이 되어 버렸지만 많은 돈 들여 알함브라 궁전을 찾아가 보는 것 못지않게 한벽루를 찾아가서 옛 모습을 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치 분수대 물소리를 연상케 하는 스페인의 기타 음악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아름다울지라도 우리에게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로 시작하는 정지용의 “향수”가 훨씬 더 우리의 정서에 맞듯이 말이다.

 

 

한벽루에서 멀지 않은 중바위 치명자산에는 멀리서도 보이는 십자가가 높이 세워진 천주교 성지가 있다.

1784년(정조 8년) 호남 지방에 처음으로 복음을 들여오고 선교사 영입과 서양문물 수용에 앞장섰던 유항검과 그의 일가족이 안타깝게도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 때 처형되었다. 그런데 그의 아들과 며느리는 세계 유례가 없는 순교자 동정부부(童貞夫婦)[5]로서 기림을 받고 있다.

이들이 순교하였던 남문 밖 처형장에 유서 깊은 전동성당이 들어선 것처럼 한벽루 역시 형색은 초라해보일지라도 우리의 추억 속에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맑은 물 흐르던 전주천의 한벽루도 거기서 멀지 않은 중바위 승암산(루갈다山) 순교비와 함께 우리의 가슴 속에 길이 남아 전주를 지킬 것이다.

 

Note

4] 오모가리란 민물고기와 시래기를 넣고 매운탕을 끓이는 뚝배기를 지칭하는 전라도 사투리이다.

 

5] 유중철(요안)ㆍ이순이(루갈다) 부부는 결혼은 하였지만 신앙심으로 동정을 지키며 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전주 남문 밖에서 순교했다. 이들의 독실한 삶을 그린 평화방송의 TV드라마가 2012년 6월 바티칸에서 처음으로 공식 상영되어 화제가 되었다. 평화신문, 2012.6.17자 [11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