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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알함브라 궁전과 전주 한벽루

Onepark 2012. 10. 28. 15:19

스페인을 여행할 때면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1] 궁전(Palace of Alhambra)을 빼놓지 않고 들르게 된다.

‘알함브라’ 하면 트레몰로 기타 주법으로 유명한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부터 연상되기에 그곳에는 뭔가 애잔함이 깃들어 있을 것만 같고 꼭 찾아봐야 한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2012년 초 어느 날 아침 일찍이 찾아간 알함브라 궁전에는 스페인 남부지방을 780년간 지배했던 무어인 지배자(Nasrid Sultan)들이 좋아했던 모든 것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북 아프리카 사막에서 살던 그들이 천국의 것으로 동경했던 물이 분수대로, 연못으로, 목욕실로 사방에 넘쳐 났다. 궁전의 벽과 천장 곳곳에는 아름다운 아라베스크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알함브라 궁전의 어느 방 앞에 “Washington Irving … 1829”라 쓴 팻말이 붙어 있었다. 바로 영어 교과서에도 나오는 “립 반 윙클”을 쓴, 미국의 외교관이자 작가였던 워싱턴 어빙이었다.

호기심 많던 그는 1829년 세비야에서 노새를 타고 여러 날 여행한 끝에 알함브라 궁전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스페인 기독교인들(Reconquista)이 무어인들을 몰아낸 뒤 한동안 스페인 왕국의 하계별궁으로 사용되다가 오랫동안 방치된 끝에 분수도 끊어지고 폐허가 되다시피 한 것을 목격하였다.

 

워싱턴 어빙은 이 곳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들은 알함브라에 얽힌 슬프고 아름다운 전설과 역사 이야기를 글로 옮겼다.

무어인들이 지상낙원으로 건축했던 석류알처럼 붉은 난공불락의 성채는 아라곤 왕과 카스틸라 여왕의 협공에도 끄떡없었다. 그러다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던 1492년 성 안에서 일하던 집시가 기독교군과 내통하여 쪽문을 열어놓는 바람에 그만 허무하게 함락되고 말았다.

무어인들이 북아프리카로 축출 당하고 난 뒤 궁안의 모스크는 성당으로 개축되었고 한동안 스페인 왕의 하계별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신대륙 개척이 본격화되면서 정치는 마드리드로, 경제는 무역항인 세비야로 중심축이 이동했다.

알함브라 궁은 어느 사이에 집시와 부랑자, 박쥐와 올빼미가 주인이 되고 말았다. 성안의 가치있는 문화재들이 마구 훼손되고 있었다.

 

워싱턴 어빙은 이러한 사실을 그의 여행기에 담았다.

그리고 런던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1831년 뉴욕에서 아라비안나이트 비슷한 “알함브라 이야기”(Tales of the Alhambra)[2] 책을 펴냈다.

그리하여 알함브라 궁전이 서구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 곳을 찾는 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스페인 정부는 서둘러 이교도(무어인)의 궁전을 복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날에는 UNESCO 세계 문화유산(World Cultural Heritage 1984 & 1994)으로 등재되어 하루 방문인원을 제한하는 스페인 제일가는 이그조틱한 문화유적[3]이 된 것이다.

 

내 고향 전주에서도 이렇게 잊혀질 뻔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문득 한벽루가 떠올랐다.

얼마 전 전주에 갔을 때 아련했던 옛날의 추억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교동 한옥 마을에서 향교를 지나 전주천으로 나갔을 때 그곳에 자리했던 한벽당이 4차선 육교(한벽교)와 둘레 길에 포위되다시피 하여 간신히 옛 누각만 남아 있음을 보았다.

본래 한벽루(寒碧樓)는 조선 개국공신으로 집현전 직제학을 지낸 월당 최담이 자신의 집 근처에 지은 별장이었는데, 전주천 맑은 물이 바위에 부딪쳐 백옥처럼 흩어지는 물이 시리도록 차갑다 하여 ‘한벽당(寒碧堂)’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주천변 바위 위에 솟아 있던 한벽당을 찾아가는 길은 옹색하게도 한벽교 밑으로 내려가야만 했고, 누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풍경도 山川은 온 데 간 데 없고 차들이 쌩쌩 다니는 길뿐이었다.

최근 들어 전주천이 생태하천으로 정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옛날 한벽루에 올라 멀리 남고산성을 바라보거나 그 아래 전주천에서 멱을 감던 일은 도저히 머릿속에서도 재연(replay)할 길이 없었다.

 

도시계획 상으로 남원으로 가는 교통로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런 코스 밖에 책정할 수 없었는지 아쉬움이 남았다.

비슷한 일은 80여 년 전에도 있었다. 1920년대 말 일제가 전주에서 남원으로 가는 철도 전라선을 설계할 때 이성계 장군이 자기네 조상(왜구)을 섬멸하고 황산대첩 전승축하연을 벌였던 오목대를 깔아뭉갤 계획을 구체화했다. 오목대로 가는 산세를 끊고 한벽당 옆에 굴을 뚫어 이곳에 충만해 있는 조선인의 정기를 흩어버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어렸을 적에 기적을 울리며 터널을 통과하는 기차가 한벽루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 일제는 철도 터널 공사를 하면서 한벽루에 붙어 있던 별당을 헐어버렸다. 그 당시 연기를 뿜으며 지나가는 증기기관차를 오목대 옆 아치형 육교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일제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도 나오는 이씨조선 건국신화를 조롱할 심산이었던 것이다.

기차는 터널을 통과하기 직전에 기적을 울리게 마련이므로 옛날 시인묵객이 그러했듯이 한벽루에서 목전에 펼쳐진 경치를 바라보며 고요한 사색을 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 . . to be Continued

 

* 필자의 또다른 스페인 여행기는 이곳을 클릭

Note

1] 알함브라는 영어식 발음이며 현지 스페인어로는 알람브라라고 부르는데 ‘붉은 것’이라는 뜻이다. 궁전 외벽이 붉은 빛이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2] 워싱턴 어빙의 「알함브라 이야기」는 생명의 나무에서 2007년 두 권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원서도 호주 아델레이드 대학 도서관이 제공하는 e북 형태로 온라인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3] 알함브라 관광안내 사이트는 이곳을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