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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티끌이 티끌에게

Onepark 2025. 2. 17. 11:00

시를 한 편 읽었다.

요즘 물질의 최소단위인 양자(量子, quantum)의 역학, 양자 컴퓨터가 화제인데 자신이 티끌로 환원이 되어 우주를 유랑한다는 다소 뜬금없는 내용의 시였다.

 

티끌이 티끌에게  - 김선우 (1970 ~  )

A Speck Toward Other Specks by Kim Sun-woo

 

― 작아지기로 작정한 인간을 위하여

내가 티끌 한점인 걸 알게 되면

유랑의 리듬이 생깁니다

나 하나로 꽉 찼던 방에 은하가 흐르고

아주 많은 다른 것들이 보이게 되죠

드넓은 우주에 한점 티끌인 당신과 내가

춤추며 떠돌다 서로를 알아챈 여기,

이토록 근사한 사건을 축복합니다

때로 우리라 불러도 좋은 티끌들이

서로를 발견하며 첫눈처럼 반짝일 때

이번 생이라 불리는 정류장이 화사해집니다

가끔씩 공중 파도를 일으키는 티끌의 스텝,

찰나의 숨결을 불어넣는 다정한 접촉,

영원을 떠올려도 욕되지 않는 역사는

티끌임을 아는 티끌들의 유랑뿐입니다

 

― For a human being who decided to be small

When I realize I'm just a speck.

I have a rhythm of wandering.

A galaxy flows in a room filled by me.

And I see so many other things.

You and I, a speck in the vastness of the universe,

Here we are, dancing and wandering, noticing each other,

We bless this wonderful event, and

The specks that we sometimes call ourselves.

When we find each other and sparkle like first snow,

The stop we call this life becomes bright.

The occasional step of a speck that makes a wave in the air,

An affectionate touch that breathes a fleeting breath,

A history that's not blamed for eternity

Is the wanderings of specks that know they are specks.

 

* 파리의 야경, 비행기의 날개 끝 오른편에 에펠탑이 보인다. Photo courtesy: Charles

 

위 시는 "작아지기로 작정한 인간을 위하여"라는 부제를 붙였는데 요즘 갈수록 사람이 티끌처럼 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지하철역에서 다음에 오는 전동차를 몇 분 동안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고 하자.

지하철 선로에 전력을 공급하고 제어하는 일, 지하철 역사의 각종 조명과 신호, WiFi 통신 기기를 켜고 끄는 일, 우리가 스마트폰 액정을 보며 원하는 콘텐츠를 찾는 일 등 모두 컴퓨터로 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이 하는 일이란 시설을 갖춘 다음 시스템에 연결하는 것뿐인데 이제는 그마저 생성형/추론형 인공지능(AI)에 맡긴다고 하니 사람의 존재가 티끌처럼 작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1] 

 

이러한 상상을 하며 위의 시를 영어로 옮겨 다시 읽어보았다.

Rhythm of wandering이 광대한 Galaxy에 충만할 때 dancing and wandering 하며 다닌 끝에 wonderful Event가 벌어진다고 했다. 

이 시를 평한 시인은 ‘나’를 티끌과 같이 생각한다는 것은 먼지나 부스러기처럼 하찮게 여긴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나’라는 존재는 비록 한없이 연약하지만, 온전함을 갖춘 우주적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는 맥락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2025. 2. 17.

 

양자역학의 관점에서도 맞는 말이다. AI 컴퓨터가 만들어주는 '여유와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춤추고 유랑을 다녀야' 영원한 것으로 욕먹지 않을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시인의 상상력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인이 비행기를 타고 파리 샤를르 드골 공항에 접근할 때 저 아래 멀리 에펠탑이 티끌처럼 보이더라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하지만 작년 여름 파리 올림픽 때도 보았거니와 에펠탑은 인간의 상상력과 이를 구현하는 기술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 낮이나 밤이나 잘 보여주는 구조물이다. 그 엄청난 위용과 상징적 의미는 비행기에서 보았을 때의 크기와는 다른 모습인 것이다.

더욱이 사람은 유랑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출 줄 안다. 위 시의 평자는 우리가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빗방울과 눈송이, 바람과 물결, 싹이 트는 화초, 일출과 석양도 모두 춤이라고 말했다.

 

우리 인간의 하는 일이 티끌처럼 작아지더라도 우주적 존재임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2]

① 첨단기술이 가져다 주는 자유와 여유로움을 만끽하되.

② 보다 적극적으로 내가 하는 일에서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고,

③ 무엇을 하든지 질적인 변화(quantum leap)를 모색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티끌처럼 작아 보이더라도 우주적 존재라는 자존감(自尊感)을 가져야 한다는 견지에서 Self-esteem이라는 항목을 KoreanLII에 새로 만들고 위의 시를 함께 소개하였다.

 

Note

1] 2025년 2월 태재미래전략연구원이 주최한 포럼(‘슈퍼 휴먼의 슈퍼 워크: AI-인간 시너지가 만드는 일의 의미와 미래’ )에서 산학계 전문가들은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의 직업을 개별 과업과 활동으로 ‘분해’ 또는 ‘해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변호사의 경우 판례 검색 등 AI로 자동화가 가능한 과업과, 대체가 어려운 비정형적 과업을 구분하고 후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대형 로펌에서 기업 소송과 자문을 담당하는 어느 중견변호사는 업무 방식의 변화를 실감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적어도 5년 차 경력까지는 관련 판례를 정리하고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업무 시간 대부분을 쏟아부었는데, 오픈AI의 챗GPT와 퍼플렉시티 등 생성형 AI를 활용하면서 거의 자동화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상대 측의 서면에서 쟁점을 추출하는 데는 회사 내부 AI를 쓰고, 간단한 사건은 AI로 서면 초안을 손쉽게 작성한다”며 “AI 덕분에 업무 시간을 절반 이상 단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I가 전문직 업무 방식까지 바꾼다", 2025.2.18.

 

2] 요즘 대학 캠퍼스에서의 수업 방식도 크게 바뀌었다. 요즘은 교수의 강의내용을 열심히 필기하는 학생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은 교수의 강의를 녹음한 후 음성 파일을 텍스트로 변환(S2T)하고 그 결과물을 챗GPT에 요약시켜 파일로 저장한다고 한다. 교수가 과제를 내주면 강의록 파일에서 관련자료를 찾아 일정 분량의 리포트를 작성하도록 시키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러니 이제 교수의 학생평가는 AI를 효율적으로 다루되, 모두 AI에 맡기지 않고(표절 시비) 관련 참고문헌을 리서치하여 얼마나 자기만의 창의성을 발휘해 과제를 처리하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제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원시인의 생존능력을 갖추는 일이다. 왜냐하면 불시(不時)에 컴퓨터가 없고 전기나 인터넷을 쓸 수 없는 '석기 시대'(Stone Age)의 환경에 내던져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과업을 수행하는데 컴퓨터 없다고, AI를 쓸 수 없다고 두 손 놓고 앉아 있다가는 그의 생존(生存)마저 위협받게 될지 모른다. 내가 교수하던 시절에도 강의자료를 PPT로 준비했으나 빔프로젝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럴 때 조교를 불러 고치라고 하면 안된다. PPT 자료 없이도 청산유수로 강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실력 있는 교수임을 입증하는 길이기도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