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직장 선교회에서 저와 같이 신앙생활을 했던 이귀재(사진) 집사가 '구원'에 관한 책을 냈습니다.
서울공대를 나온 공학도로서 은행에서는 주로 기술과 IT 파트에서 일을 했고 정년퇴직을 했지요. 옆에서 직장 일도 열심히 하면서 교우들과 성경공부도 하고 전도활동을 하는 것을 죽 지켜 보았습니다. 바로 '성실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 결실을 맺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입니다. 신학을 전공하고 목회를 하는 목사님들도 경탄해 마지 않는 이 책을 권해드립니다.
아래 메시지는 지난 7월 서울 노원구의 어느 교회 초청을 받고 전한 말씀을 이 집사님의 허락을 받고 그의 페이스북에서 옮겨실은 것입니다.
성경 말씀: 에베소서 2:8-10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설교 메시지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구원은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 받게 됩니다. 은혜란 댓가 없이 거저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마치 깊은 수렁에 빠진 사람에게 밧줄을 던져 주는 것과 같습니다.
수렁에 빠져 있는 사람이 전에 어떤 행위를 했는지는 상관하지 않고, 이 사람에게 은혜로 거저 밧줄을 던져 줍니다. 그래서 9절에서 그 은혜의 선물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우리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즉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밧줄을 붙잡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만약 밧줄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밧줄을 잡는 행위가 없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행함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즉 믿음과 행함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입니다.
10절에서의 선한 일 또는 행함은, 바로 구원 받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9절에 있는 구원 받기 이전의 행위와는 다른 것입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행함은 구원과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후에는 구원받은 사람으로서의 행함 즉 순종이 요구됩니다. 그 순종이 곧 믿음입니다. 이러한 순종은 구원을 이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구원이 무엇인지 가장 잘 표현한 것 중의 하나가 골로새서 1:13 입니다.
골로새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구원이란 어두움의 세상에서 (from) 하나님의 나라로 (to) 옮겨지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수렁에 빠진 사람에게 밧줄을 던져서, 그를 땅으로 건져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밧줄을 잡았을 때 이미 우리의 구원은 시작되었습니다. 밧줄을 잡았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로 들어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 이것이 곧 구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발이 땅에 닿을 때까지는 아직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땅으로 나올 때까지 계속하여 밧줄을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히브리 3:14 (새번역) 우리가 처음 믿을 때에 가졌던 확신을 끝까지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을 함께 누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즉 위의 말씀처럼 처음 믿었던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여야 구원을 완성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천국 티켓을 받는 것처럼 한번 받고 끝나버리는 소유가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칼빈도 구원을 “일생 이루어가는 과정(life-long process)"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밧줄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것, 즉 구원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순전히 우리의 노력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디도 2:11-12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
위 말씀처럼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동일한 은혜로 양육하십니다. 우리를 양육하는 것 즉 우리를 성화(聖化)시키는 일을,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하십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약속입니다. 즉 우리가 밧줄을 계속 붙잡을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처음 구원을 받는 것도 주님의 은혜이며, 그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역할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처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때에 믿음의 순종이 필요하고, 또한 구원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도 우리의 순종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순종을 통하여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최종적인 목적입니다.
이제 믿음에 대하여 좀더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11-12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은 이 땅의 왕으로서 이 땅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들이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왕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즉 믿음이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영접한다는 것은 집으로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손님으로 영접하여 현관에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으로 영접하여 안방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복음서를 보면,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는 초보적인 질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순종하라고 하였습니다. 순종이 곧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 청년이 율법을 지켰다고 하자 그렇다면 재물을 다 팔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하여 누구나 다 재물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청년의 경우에는 재물이 주인이 되어 재물이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방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재물을 포기하지 못하고 결국 구원의 길에서 멀어졌습니다.
이 청년의 경우에는 재물이 주인이었지만, 사람마다 안방을 차지하는 주인이 다를 수 있습니다. 건강이 주인이 될 수 있고, 또는 가족, 미래의 안전, 직업, 명예와 체면 등이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한마디로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는 의식이 곧 세례입니다. 세례란 내가 주님과 연합하여 죽고, 주님과 연합하여 사는 것입니다. 먼저 죽어야 합니다. 죽어야 삽니다.
만일 이 청년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왕과 주인으로 영접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구원을 받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구원의 시작일 뿐입니다. 이제 막 밧줄을 잡은 것입니다. 죄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출애굽한 것과 같습니다.
출애굽한 후부터는 광야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니 위해서는 가나안 땅에 이를 때까지 계속하여 구원의 밧줄을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즉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왕으로 모시며,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누가복음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런데 우리가 살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다시 주인이 되어 안방을 차지하고 주님을 문 밖으로 밀어낼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주님을 다시 영접하여야 합니다.
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위 말씀은 초신자에게 전도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그동안 믿음을 가졌던 기존 교인(라오디게아 교인 등)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저 역시 2~3년 전에 예수님을 다시 영접하는 기도를 진지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삶을 오랫동안 살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즉 내가 왕이 되어 욕심과 죄 가운데 계속 살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영생에서 다시 사망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구원에서 탈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 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말씀은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하는 교훈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욕심에 이끌려 계속 죄를 짓는다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를 점검하여 보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왕과 주인으로 명확하게 영접한 경험이 있는가? 이것이 구원의 밧줄을 잡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세례를 받고 거듭나는 것입니다.
둘째, 나는 날마다 내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이 구원의 밧줄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모두 주님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순종이 요구됩니다. 여러분 모두 밧줄을 손에서 놓지 말고 천국에 들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진한 활자는 필자가 임의로 붙인 것입니다. 진한 활자로 된 부분만 따라 읽어도 한 편의 기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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