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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 노래 좋아하고 흥이 많은 한민족

Onepark 2022. 6. 8. 09:15

최근 선거와 정치, 전쟁에 관한 뉴스가 쏟아지는 가운데 우리 시니어 세대의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사진과 기사가 몇 가지 있었다.

5월 14, 15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월드컵 구장(Deutsche Bank Park)에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K-팝 행사가 열렸다. 차범근 선수가 분데스리가에서 뛸 때 속했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팀의 홈구장이고, 세계적 팝가수 콜드플레이, 비욘세가 공연했던 곳이다. 이번 ‘KPOP. FLEX’에는 EXO의 멤버인 카이, 마마무, 몬스타엑스, NCT DREAM, 드림캐쳐 등 정상급 K-POP 그룹들이 총출동했다.[1]

그리고 콘서트 기간 중 야외 행사장에서는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2022 Korea Festival’이 주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과 한국관광공사 프랑크푸르트지사의 주관으로 열렸다.

 

* KPOP.FLEX의 첫 공연장인 프랑크푸르트 월드컵 경기장을 가득 메운 K-팝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 EXO 멤버 카이의 무대. 사진: SBS 캡쳐

5월 20일에는 우상혁 선수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2022 세계실내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4를 뛰어 우승했다.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제치고, 한국 육상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세계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라 더욱 값진 것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는 영국 토트넘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 선수가 잉글런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공동 득점왕이 되어 황금축구화 트로피를 수상했다. 

 

또 5월 31일에는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을 찾아가 조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만났다. 그리고 ‘아시아계 대상 혐오 범죄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이날 백악관 북쪽 출입구 부근에 모여든 BTS의 팬 ‘아미’들은 한국인처럼 생긴 사람만 지나가도 환호하며 “BTS, BTS”를 연호했다. BTS가 백악관 브리핑룸에 들를 것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례 브리핑엔 평소보다 2배 이상 많은 취재진이 참석했다.

 

* 외신보도에 따르면 BTS 멤버들은 자비를 들여 백악관을 방문하고 기자회견도 가졌다. 사진: Getty

시니어 세대의 눈에는 이것이 일시적 현상인지, 아니면 지속가능한 트렌드인지 잘 가늠이 되질 않는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 캠퍼스를 방문해 연설하는 것을 보고는 금석지감(今昔之感)이 느껴졌다. 1960-70년대 국내 기업이 미국 기업과 합작투자를 추진할 때 벼라별 까다로운 조건이 붙었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 대통령이 나서서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요청하는 판국이다. 1980년대 해외 지상사 주재원들이 귀국할 때에는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가전제품을 이삿짐에 싣고 왔으나 지금은 국산 가전제품이 세계 최고수준에 이르러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된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도 전망이 아주 밝은 것 같다. 피겨의 김연아, 육상의 우상혁 선수한테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MZ세대 선수들은 즐기며 뛰는 모습이 아주 대견스럽다. 우리 세대의 비장감 넘치는 출전소감은 듣기 어렵게 되었다.

 

* 세계실내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에서 우승한 후 기뻐하는 우상혁 선수.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BTS 멤버들도 각자 개성을 살려서 각종 문화계의 행사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이 표지나 화보에 등장하는 잡지는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매진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는 발표 즉시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팬들이 공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사를 한국말로 따라 열심히 부른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 불고 있는 K-팝 같은 한류(Korean Wave)는 역사적으로 그 연원(淵源)이 깊고 오래 되었다.

중국의 역사서[2]에도 나오거니와, 우리 조상들이 바이칼 호반에서 살기 좋은 곳을 찾아 한반도로 이주[3]한 이래 가을걷이가 끝나면 모두 모여서 큰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이때 춤과 노래가 빠질 수 없었다.

신라시대에는 귀족 자제들인 화랑(花郞)들이 모여 산천경개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무술을 단련하는 한편 함께 풍류(風流)[4]를 즐겼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조선시대 선비들도 경치 좋은 곳마다 정자를 짓고 시화(詩畵)와 가무를 즐겼던 것이다.[5]

 

충효 사상에 입각하여 여러 세대가 함께 모여사는 대가족주의에서는 정(情)이 도타와지고, 자연재해와 외침으로 고향을 떠나야 할 때에는 한(恨)을 노래하며 시름을 달래곤 했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발전하여 더 이상 보릿고개 걱정을 하지  않게 되면서부터는 사회 전반적으로 흥(興)이 되살아 났다.

바로 이 점은 일찍이 탄허(呑虛) 스님이 "한국의 젊은이들이 갈수록 예뻐지는데 이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칠 때 한국이 세계의 중심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KBS가 전국 각지를 순회하면서 열었던 전국노래자랑에서 사회를 보던 송해 MC가 9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 프로를 볼 때마다 한국 사람은 정(情)과 한(恨)이 섞인 노래를 즐겨 부른다고 생각했다.

최근 들어서는 각종 오디션 프로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지원자가 몰려들고 어떤 장르의 곡이든 가창력과 댄스 실력으로 자웅을 겨루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요즘은 심사위원의 판정보다 방청객과 시청자들의 인기투표 비중이 큰 만큼 이들로부터 흥(興)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한 당선권에 들기 어려운 실정이다.

 

* 세계적 메가히트 "강남스타일" 말춤을 추면서 노래하는 싸이(Psy). 사진: 연합뉴스.

바야흐로 흥겨운 한국 노래와 춤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뭐니뭐니해도 그 도화선이 된 것이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었다. YouTube에 올려진 뮤직 비디오 동영상은 YouTube에서 여러 신기록을 세우고 싸이의 '말춤'을 세계적으로 널리 유행시켰다. 또한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 영화도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연속 수상을 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몇 년 전 독일을 여행할 때 현지의 십대 소녀들이 드레스덴 광장에서 K-팝송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들의 온라인 춤 선생은 불과 반세기 전 광부와 간호사로 돈 벌러 왔던 코리언들의 자녀 세대가 아니던가!

 

많은 전문가들이 이러한 한류 바람이 노래나 영화, 드라마, 게임에 그치지 않고 웹툰과 웹소설, 미용, 음식, 문화 전반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젊은 세대의 자율성을 살리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과 제도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원천(源泉)이 되는 국내에서 한류 소비자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다이너믹하게 그 수원(水源)을 공급할 수 있다면[6] 현재의 추세는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Note

1] KPOP.FLEX’는 SBS가 영국 파트너사 KPE, 독일 파트너사 PK Events와 EFS, 한국 파트너사인 ㈜성수동미디어그룹, ㈜세중인터내셔널과 함께 추진하는 다국적 K-POP 콘서트 프로젝트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진정됨에 따라 2022년 5월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기점으로 하여 유럽 여러 지역에서 K-POP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2] 중국의 역사서인 위지 동이전(魏志 東夷傳)에서는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同盟) 같은 수확기의 국중행사에서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3] 한민족의 뿌리나 그 정체성을 알고 싶다면 바이칼호 알혼섬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 흙으로 된 큰 섬 한 쪽에 불쑥 솟아있는 부르한 바위(Cape Burkhan, pictured)는 보통사람의 눈에도 그 자체가 의지의 표상이다. 오래 전 이 섬에서 몽골 샤머니즘이 유래하였으며, 지금도 샤머니즘의 성지(우리의 서낭당 같은 '세르게')로 많은 순례객들이 찾고 있다.

 

알혼섬 토산(土山)에 불쑥 솟은 바위는 응축된 지력(地力)

하늘 향해 외치는 피조물들의 간절한 기원(祈願)

살기 좋은 땅 찾아 밝은 땅에 이른 [우리] 배달(倍達) 겨레

Pointed rocks surging from an earthy island must be condensed power of Earth.
It's the earnest desire of all creatures on Earth toward the Heaven.
Looking for a good land to live, they came down to the Land of Brightness.

 

4] 일찍이 신라시대의 최치원은 어느 화랑을 기리는 ‘난랑비서(鸞郞碑序)’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그 가르침을 베푼 근원은 ‘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는데, 실로 삼교(三敎)를 포함하여 중생을 교화한다. 들어와 집에서 효도하고 나가서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이다. 무위로 일을 처리하고 말없이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노자의 뜻이다. 악한 일은 하지 않고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부처의 가르침이다." 출처: 두산백과, 풍류(風流) [Naver]

 

5] 조선조에서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보길도에 있는 고산 윤선도의 세연정(甫吉島 洗然亭)을 들 수 있다. 윤선도는 완도에서 탐라로 가는 길에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잠시 피신했다가 아주 이곳에 정착하였다. 이곳에 연꽃을 닮은 마을이라는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짓고 사람들을 동원하여 인공호를 파고 정자를 지었다. 그 후 윤선도는 새벽 닭울음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깬 후 독서를 하고 시가를 짓거나 후학들을 가르쳤다. 오후가 되면 술과 음식을 들고 악공, 무희와 함께 세연정으로 향했다. 그리고 악공들의 연주소리에 인공 연못 사이로 작은 배를 띄워 무희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술과 음식을 즐기곤 하였다고 한다. 고산은 광해군-인조-효종-현종 연간의 치열한 당파 싸움 속에서 중앙 관직에 제수, 사임, 탄핵, 파직, 유배를 여러 차례 반복하여 공직생활 약 50년간 10년은 관직, 20년은 유배, 20년은 보길도 등지에서 은둔생활로 보냈다.

 

6] 우리의 시와 노래를 영어로 번역해 놓는다면 한류 열풍과 함께 한국의 시와 노래도 세계 문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것은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시에 감동하여 분발하고 몸을 단속하여 세우며 즐거움으로 덕을 이룬다)라는 논어[孔子]의 말씀을 따르는 일이기도 하다.

영국이 19세기 중근동으로 진출을 꾀할 때 페르시아의 루바이야트(Rubaiyat)도 덩달아 주목을 받았다. 이것은 12세기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Omar Khaiyyam)의 사행시를 1859년 영국의 피츠제럴드가 영어로 번역하여 펴낸 시집이 효시가 되었다. 루바이야트는 오리엔탈리즘이 가세하면서 후세의 서양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