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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대타(代打)로 출세한 음악가

Onepark 2022. 3. 18. 19:20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릴 예정이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에 비상이 걸렸다.

원래 러시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1]가 지휘하는 빈 필이 러시아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츠예프와 협연할 예정이었는데 그들이 푸틴의 크림반도 합병을 지지한 까닭에 교체가 불가피했다. 지휘는 야닉 네제-세갱(Yannick Nezet-Seguin)이 맡기로 했으나 공연날짜가 촉박하여 협연자를 구하는 일이 대략난감었다.

 

그때 독일 베를린에 있던 조성진이 빈 필로부터 긴급 연락을 받았다. 불과 얼마 전에도 조성진은 대타로 베를린 필하모니커와 협연한 적이 있었다. 조성진은 연습할 시간은커녕 뉴욕행 비행기를 타고 갈 시간 밖에 없었음에도 프로그램 곡목을 바꿀 필요 없이 그대로 연주하겠다고 말했다.

 

* 카네기 데뷔 무대에서 조성진과 야닉 네제-새갱

 

연주 시간이 40분에 가깝고 연주하기도 어려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그것도 함께 연주해 본 적이 없는 오케스트라와 리허설도 없이 곧바로 연주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2월 25일 악보를 다 외워서 연주하는 조성진은 야닉 네제-세갱의 빈 필과 리허설도 거의 하지 못 한 채 카네기 홀 무대에 올라 거의 완벽하게 연주를 마쳤다. 조성진의 카네기 홀 데뷔 무대는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각 언론이 극찬할 정도로 대성공이었다. 2022년 상반기에 조성진은 북미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쇼팽 콩쿠르의 조성진
카네기 홀 데뷔 성공.[2]
친(親) 푸틴 러시아 연주자의
대타(代打)로 홈런 친 격?!

 

대타로 성공한 음악가의 계보

음악사를 보면 지휘자, 연주자 중에는 대타로 나섰다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사람이 적지 않다.

피아니스트이자 명 음악해설가인 김주영 씨에 따르면[3] 공연을 준비하는 관계자들에게는 다신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이지만 청중에게는 깜짝 선물 또 다른 흥밋거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큰 공연일수록 대타 연주자는 언제 무슨일이 생길지 모르므로 항상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 대기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인구에 회자되는 인물이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1957)였다.

 

* 완벽주의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태어난 토스카니니는 본래 첼로를 공부했다. 18세 때부터 오페라 극장에서 첼로 주자로 일했는데, 그가 지휘자로 데뷔할 기회가 실로 우연히 찾아왔다. 그가 속한 오케스트라가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공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현지의 지휘자가 이탤리 단원들과 불화를 일으켜 지휘대에서 내려와버렸다.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를 포함해 몇 사람이 대신 지휘대에 섰으나 반응이 아주 나빴다. 그때 오케스트라 단원 몇 사람이 오케스트라 단장에게 토스카니니를 추천했다. 그는 당시 19세밖에 안된 첼리스트였음에도 평소에 악보를 모조리 외워서 연주[4]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실험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따로 준비도 없이 지휘대에 오른 토스카니니는 긴 곡을 악보도 보지 않고 아주 훌륭하게 지휘해냈다. 청중은 물론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젊은 지휘자의 극적인 데뷔 무대에 기립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대타 연주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특별한 기회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5]

미국의 피아니스트 앙드레 와츠(André Watts)는 소년 시절부터 음악 천재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16세 때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을 처음 만났다. 와츠가 리스트 협주곡을 연주하는 것을 직접 보았던 번스타인은 1963년 CBS TV를 통해 진행하던 뉴욕 필하모닉의 '청소년 콘서트'에서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협연자로 발탁했다. 그의 연주는 데성공이었다.

같은 달 뉴욕 필하모닉은 정기 연주회에서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글렌 굴드(Glenn Gould, 1932~1982)와 협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굴드가 갑자기 못오는 바람에 와츠가 굴드를 대신해 다시 한번 리스트의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소년 피아니스트 와츠는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 연주자로 발돋움했다.

 

세월이 흘러 와츠의 자리를 대신해 자신의 이름을 알린 연주자가 나타났다.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郞朗)은 중국 셴양에서 태어나 베이징 음악원을 거쳐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공부하였다. 그가 13세이던 1995년 청소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해 화제를 모았다. 1999년 라비니아 페스티벌에서 와츠가 몸이 안 좋아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자 랑랑이 와츠 대신 크리스토프 에센바흐(Christoph Eschenbach)가 지휘하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2017년 11월 랑랑이 사이먼 래틀(Simon Rattle)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니커와 월드 투어 협연을 하기로 했을 때 손을 다쳐서 더이상 연주가 곤란해졌다. 그때 랑랑을 대신해 피아노 앞에 앉은 청년이 2015년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로 우리나라의 조성진이었다. 조성진은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중국과 홍콩 한국과 일본에서 베를린 필과의 협연을 모두 성공적으로 마쳤다.

 

* 소프라노 임선혜

 

성악가 중에도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소프라노 임선혜도 독일 유학 당시 베를린 오페라의 급한 연락을 받고 대타로 소프라노 역을 훌륭히 수행해 유럽 오페라 계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다. 베를린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악보를 보고 연습하면서 갔다고 한다.

페루 출신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Juan Diego Flórez)는 1996년 페사로에서 열린 로시니 페스티발에서 합창단에 서 있었다. 어느날 로시니 오페라의 주역을 맡은 성악가가 나올 수 없게 되자 23살의 그가 대타로 나와 멋진 데뷔 무대를 만들었다. 그후 플로레스는 High C 같은 고난도의 높은 음[6]을 자유자재로 부를 수 있는 대표적인 로시니 테너 가수가 되었다.

 

뭐니뭐니 해도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얻고 성공(Luck favors the prepared.)하는 법이다. 그것은 단지 행운만이 아니다. 그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지만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중세 페르시아의 시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자기 앞의 문이 닫혀 있다고 불평하지 말라고 했다. 그 문을 만들고 잠가놓은 신(神)이 열쇠도 갖고 계시므로 잠자코 그것을 받을 채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경구(警句)였다.[7]

 

Note

1] '러시아 음악 차르'라고 불리던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에프(Valery Gergiev, 1953-  )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세계 음악계에서 퇴출 위기에 몰렸다. 그는 푸틴과의 친분 때문에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을 지지한 바 있으며, 현재 마린스키 오페라극장 총감독, 차이콥스키 콩쿠르 공동 조직위원장, 상트페테르부르크 백야 축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그는 뮌헨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게르기예프 페스티벌, 에딘버러 페스티벌,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트벌의 음악감독에서 해고되었고,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 뉴욕 카네기홀로부터는 출연중단 조치를 받았다. 조선일보, 2022.3.3.

 

2]    Korean pianist [Seong-jin] Cho / made a dramatic debut / at Carnegie Hall.

       Pro-Putin Russian pianist [Denis Matsuev] / gave him / a surprising chance to make it.

It’s my hobby to describe everything by condensing it into 17-syllable verses. You’re cordially invited to visit My haiku for further information.

 

3]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조성진도 '대타'로 무대에 깜짝 등장한 적 있었다", 조선일보, 2018.11.

 

4] 20세기 중반까지 최고의 명성을 누리며 존경을 받았던 토스카니니는 평소에 아무리 복잡한 악보라도 전부 외워서 암보로 지휘했다. 그것은 그가 아주 심한 근시였던 까닭에 어두운 무대에서는 악보가 잘 보이질 않아 미리 악보를 머릿속에 완전히 넣은 상태로 연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악보에 충실한 엄격한 해석으로 유명했으며, 오페라와 교향곡을 넘나드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랑하였다.

 

5] 이러한 인연과 보은(報恩)의 대물림은 작곡자의 경우에도 있었다. 젊은 시절 슈만의 칭찬과 격려에 힘입어 작곡자로 성공한 브람스는 1874년 그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오스트리아 작곡음악제에서 체코의 한 무명 음악가에게서 뛰어난 재능을 엿보았다. 그리고 드보르작(Antonín Leopold Dvořák, 1841~1904)이 작곡한 슬라브 무곡이 출판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 대성공을 거두게 만들었다.

 

6] 대타 가수였던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는 데뷔 10년차에 74년간 이어져 온 라스칼라 극장의 전통을 깨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2007년 2월 라스칼라에서 도니제티의 <연대의 딸(La fille du régiment)>에서 플로레스가 "친구들이여, 오늘은 즐거운 날"를 불렀을 때 청중의 앙콜 요청이 끊이질 않았다. 지휘자가 이를 수락함으로써 토스카니니가 극의 흐름이 끊어진다며 금지시켰던 오페라 공연 도중의 앙콜이 벌어진 것이다. 이날 플로레스가 앙콜을 받은 아리아는 9번의 하이 C를 발성해야 하는,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2007)에게 ‘하이 C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안겨준 어려운 곡이었다.

 

7]   BE SILENT by Rumi (Jalāl al-Dīn Muḥammad Rūmī, 1207-1273)

Be silent that the Lord who gave thee language may speak,

For as He fashioned a door and lock, He has also made a key.

잠자코 있으라, 그대에게 언어를 주신 신이 말씀하시도록.

왜냐하면 문을 만들고 잠가놓으신 것처럼 신은 열쇠도 만드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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