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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渡美 만학도 화가의 세상 보는 눈

Onepark 2021. 10. 13. 20:40

며칠간 늦더위에 비까지 뿌리던 꾸무럭하던 날씨가 화창하게 개었다.

10월 13일부터 인사동 마루 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김소연 개인전》을 보러 갔다.

 

여느 때 같았으면 차 없는 인사동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을 텐데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거리는 매우 한산했다. 덕분에 차분한 분위기에서 이곳 저곳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와 기념품 가게의 쇼윈도우를 구경하며 느긋하게 걸을 수 있었다.

 

* 인사동 마루의 입구

산은 입사동기회 홍기용 회장의 개인전 "축하 인사말"이 우리가 간간이 들었던 그 간의 홍 회장 개인의 히스토리를 전해 주었다. 60이 넘었어도 '청춘의 열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53세에 미국 유학 길에 올라 필라델피아에 있는 유서 깊은 펜실베니아 미술 아카데미(PAFA)에서 다양한 작품활동을 쌓고 11년 만에 귀국한 김소연 화백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 전시회는 방역수칙에 따라 관람객들이 모두 체온을 재고 출입자 명부에 인적 사항을 기재한 후 마스크를 쓰고 관람해야 했다. 사진 찍을 때만 잠깐씩 마스크를 벗고 포즈를 취했음을 밝혀둔다.

* 안양의 홍기용과 필라델피아의 김소연을 뉴질랜드 록다운이 맺어줬다.

같은 시기에 뉴질랜드로 떠난 두 사람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항공편이 끊기면서 그만 발이 묶이고 말았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이 남섬과 북섬의 여러 비경을 찾아 다니면서 인연을 맺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여겨졌다.

똑같은 경치를 보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와 미국에서 정통 미술수업을 받은 화가는 나눌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고 그만큼 의기와 정서가 상통하였으리라 짐작이 된다.

 

그 점은 김소연 화백이 미국에서 마주친 시카모어 나무(Sycamore tree)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린 여러 점의 그림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는 우리가 플라타나스 가로수로 알고 있는 시카모어 나무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너의 자아를 멋지게 펼쳐보렴.
해마다 가지를 잘라내서 미처 아름답게 뻗어나가지 못하는
한국의 플라타나스가 아닌 시카모어로.
"

 

* 미 유학 초기 화가에게 깊은 영감을 준 필라델피아 시카모어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삶에 대한 관점의 변화는 인물화와 정물화, 추상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알게 모르게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특히 한국의 색동 옷이 보자기로 펼쳐져 단아하면서도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은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로드사인처럼 여겨졌다. 

코로나로 인해 식은 올리지 못해도 두 분의 가연(佳緣)이 이번 전시회를 통해 영원한 사랑, 무한한 축복으로 이어지기를 빌었다.

 

* 미국에서 가져온 물감과 한국의 것을 섞어 입체감 나는 해바라기 그림으로 표현했다.
* 전시장 한켠에 마련된 홍기용 회장의 사진전시회

전시장에서 나올 때쯤 오늘 조용한 인사동 거리를 걸으면서 또 전시작품들을 보면서 느꼈던 상념이 내가 얼마전 읽었던 시 구절로 흘러 나오는 것 같았다.[1]

그래 춤을 추고 싶으면 남의 시선을 의식할 것 없이 춤을 추자. 노래를 부를 때에도 노래방(오디션) 점수를 의식할 필요 없이, 일을 할 때에는 돈이 얼마나 생기는지 개의치 말고, 마치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자.

그리하면 이 순간 천국 같은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Dance, like nobody is watching you.
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Sing, like nobody is listening you.
Work, like you don't need money.
Live, you're on heaven on earth.
Assume today is the last day you live.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마치 이승에서 천국에 있는 것처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여겨라.
[2]

 

* 김소연 작 "Blooming" 앞에 선 필자

그렇다! 오늘 전시회의 주인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마음 먹고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인생의 봄'을 현재형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침 마루 아트센터의 다른 전시실에서는 박승태 화가가 그린 봄동산의 진달래꽃이 온산을 핑크 빛으로 물들이며 만개해 있었다. 이 그림처럼 속히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인사동 거리에 사람들의 물결이 넘쳐 나기를 비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 아트마루 센터의 옆 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의 박승태 작, "진달래꽃 동산"

 

Note

1] 이와 반대로 시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전혀 새로운 단색화 스타일의 그림을 남긴 화가도 있다. 뉴욕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김환기 화백은 1971년 김광섭의 "저녁에"(1969)라는 시에 나오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시 구절의 의미를 생각하며 캔버스에 무수한 푸른 별을 그린 동명의 그림을 발표했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은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2] 알프레드 드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을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것으로 인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