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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파겁(破怯)이란 말을 쓴 만해의 詩

Onepark 2020. 11. 7. 08:30

라디오에서 '파겁(破怯)'이란 말을 들었다. 새로운 것을 할 때 두려움이 앞서지만 겁내지 않고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는 취지였다. 처음 들어보는 단어임에도 만해 한용운의 "예술가"라는 시에도 이 단어가 쓰였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내 삶에서 파겁한 순간이 여러 장면 떠올랐다. 수줍음이 많던 초등학생 시절 호명을 받고 전교생이 모인 조회 시간에 상을 받으러 앞으로 나간 일, 대학 다닐 때 마음에 드는 아가씨한테 데이트를 신청한 일, 그리고 지금의 아내를 두 번째 만나던 날 막무가내 청혼을 한 일 등이 생각났다.

 

그러자 영국의 시인 드라이든(John Dreyden)이 “None but the brave deserve the fair.”(용기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라고 한 말을 주문처럼 외었던 기억이 났다. '용기를 낸다'는 말이 마치 중세의 기사가 말을 타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면 '파겁'이란 말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수줍음 같은 내면의 갈등을 극복하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의미가 강한 듯 싶다.

 

"님의 침묵"을 쓴 만해 한용운이 "예술가"라는 시에서 '파겁 못한 성악가'처럼 부끄럼이 많아 짝사랑하는 심정을 노래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 전후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시 전문을 영어로 번역해보기로 했다.

 

* 살바도르 달리의 뮤즈였던 갈라의 삼종기도

 

예술가 (藝術家)만해 한용운 (卍海 韓龍雲)

Artist    by Han Yong-un

 

나는 서투른 화가(畵家)여요.

잠 아니 오는 잠자리에 누워서 손가락을 가슴에 대이고 당신의 코와 입과 두 볼에 새암 파지는 것까지 그렸읍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작은 웃음이 떠도는 당신의 눈자위는 그리다가 백번이나 지웠읍니다.

I'm an awkward painter.
Lying awakened on the bed with my fingers on the bosom,
I drew your nose, mouth and dimples on your cheeks in detail.
But I failed to describe your eyes filled with small smiles
by drawing and erasing them hundred times.

 

나는 파겁(破怯) 못한 성악가(聲樂家)여요.

이웃 사람도 돌아가고 버러지 소리도 그쳤는데 당신의 가르쳐 주시던 노래를 부르랴다가 조는 고양이가 부끄러워서 부르지 못하였읍니다.

그래서 가는 바람이 문풍지를 스칠 때에 가만히 합창(合唱)하였읍니다.

I'm a singer being still afraid of others' criticism.
Since neighbors were gone and insects ceased to sing,
I failed to sing the song which you taught me being ashamed of a sleepy cat.
So I chanted a song quietly when a breeze passed by the paper windows.

 

나는 서정시인(抒情詩人)이 되기에는 너무도 소질이 없나봐요.

'즐거움'이니 '슬픔'이니 '사랑'이니 그런 것은 쓰기 싫어요.

당신의 얼굴과 소리와 걸음걸이와를 그대로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집과 침대와 꽃밭에 있는 작은 돌도 쓰겠습니다.

I think I'm poorly talented to be a lyricist.
I would not write down 'pleasure', 'sorrow', 'love' or something like that.
Preferably, I want to describe your face, voice and footsteps as is.
Furthermore, I'm going to place in it
Your house, couch and small stones at your flower garden.

 

그런데 동학농민혁명에도 참여하였으며, 불가에 입문한 뒤로 재가승려(在家僧侶)로서 3.1 독립선언서에 불교계 대표로 서명하고 불교유신(佛敎維新)을 제창하셨던 분으로서 평범한 연애시를 쓰실 분이 아니었다. 일제의 삼엄한 감시의 눈을 이런 시를 쓰실 때에는 무슨 곡절이 있을 듯 싶었다.

 

우선 제목인 예술가를 자신을 드러내 놓을 수 없는 '애국자'로 바꿔놓고 보거나, 첨선을 하는 '수도자'로 본다면 수긍이 가는 면이 적지 않았다.

 

전자의 경우 제2연에서 파겁 못한 성악가란 자칭타칭 애국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감시의 눈길(버러지 같은 자들)에 위축된 자신의 모습에 졸고 있는 고양이가 부끄럽다고 자책하면서 혼자서 조국을 위해 조용히 합창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후자인 참선하는 수도승이라고 상정하면 제3연은 아주 구체적이다. 수도자로서 희노애락 애오욕(喜怒哀樂 愛惡欲)을 버리고 오직 부처님의 말씀과 수행을 그대로 본받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