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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공동체 교인들과 선교지 탐방

Onepark 2019. 10. 19. 22:30

10월 19일(토) 양재온누리 교회 서초B 공동체에서는 강화도로 선교지 탐방을 떠났다.

우리나라에 개신교가 어떻게 전래되었고 당시 어떻게 신앙을 지켜나갔는지 알아보는 한편 같은 공동체 교인들의 단합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몇 달 전부터 대표장로님(전한백)의 지휘 아래 계획을 세우고 가장 좋은 동선을 짜서 대형 관광버스 2대로 떠나게 되었다. 토요일 아침 7시 반에 교회 입구 대로변에 집합하여 순별로 버스에 분승하였다.

 

* 가정법원 옆의 잔디가 잘 가꿔진 동산은 횃불회관으로 가기 위한 중요한 랜드마크이다.

 

우리가 강화도에서 맨 처음 찾은 곳은 교산교회였다.

제물포(인천)에 도착한 감리교 존스 선교사는 강화도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애썼으나 서구열강의 잇따른 침공(프랑스 함선의 1866 병인양요, 미국 함선의 1871 신미양요 등)으로 주민들이 서양사람을 배척하였다.

그때 술에 절어 있던 이승환이란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새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존스 선교사에게 간청하여 어머니를 업고 와서 주민들 몰래 배 위에서 세례를 베풀어주시도록 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언행과 행동거지가 바뀌자 그 마을의 유지인 안동 김씨 김상임도 예수를 영접하고 자기 토지를 교회에 헌납하는 등 복음 전도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목사 안수를 한 달 앞두고 교인을 심방하고 온 후 장티푸스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것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강화도 이곳저곳에 교회가 세워졌다고 한다.

 

* 교산교회는 사도시대의 안디옥 교회처럼 강화도 곳곳에 교회를 개척하였다.
* 교산교회를 찾는 기독교인들에게 이 교회 목사 사모가 직접 선교의 역사를 해설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홍의교회를 방문하였다.

홍의마을에 기독교가 전해진 것은 훈장이었던 박능일이 앞서 예수를 영접한 교산교회의 김상임에게 따지러 갔다가 되레 감동을 받고 돌아온 뒤였다. 그는 1986년에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성경책에 나온 대로 그에게 빚진 마을 사람들의 빚을 전부 탕감해 주었다고 한다. 처음엔 체면치레로 박능일과 같이 예배를 드리다가 전원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홍의교회는 1년 만에 교인수가 80여 명에 이르고, 선교사의 도움 없이 예배당이 세워졌다. 그리고 서당을 학교로 바꾸어 신식 교육이 시작되었다.

초기 홍의교회의 교인들은 모두 예수를 믿는 한 형제로서 돌림자를 쓰기로 결정하고  한 일(一)자를 택했다. 그 이유는 ‘처음 믿었다’ 혹은 ‘한 가족이다’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 목사님이 전면에 붙어있는 글씨들은 장로 권사님들의 재능봉사 작품이라고 하셨다.
* 홍의교회의 강득구 목사가 마치 만담 비슷하게 선교의 역사를 설명해주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강화도의 유명한 토착음식점인 보리 비빔밥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먼저 이집의 시그너쳐 음식인 메밀 전병이 나오고 8색 야채로 밥을 비벼 먹었다. 된장국, 맑은 순두부국이 입맛을 돋우었다. 식후에는 정식 카페 스타일의 아메리카노 커피가 서브되었다.

 

 

식사 후에는 해병대 장병들이 지키고 있는 제적봉의 평화전망대에 올랐다.

오늘은 미세먼지도 없고 대기가 청명하여 북한 땅이 손에 잡힐 듯이 또렷하게 보였다.

전망대 옥상에 올라 가을 햇볕을 즐기며 사진도 찍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오늘의 마지막 방문지는 성공회(Anglican Church)의 온수리 성당이었다.

조선이 서구열강에 개항을 한 후 선교의 자유가 주어지자 영국 정부는 국교인 성공회를 전파하기 위해 강화도를 선교의 거점으로 삼고 이곳에 전통미를 살린 큰 교회당을 지었다.

그래서 외관은 전통 한옥 모양을 하고 있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직사각형의 큰 홀을 갖춘 바실리카 양식으로 되어 있다.

 

* 성공회 성당 옆에는 강화도령이 철종임금이 되기 전에 살았던 용흥궁터가 있다.
* 성공회 사제관은 겉으로만 보면 영락없는 양반집 한옥이다.
* 내부는 전혀 딴 판으로 서구의 성당 구조와 같이 천정이 높은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졌다.

 

성당 입구의 성수 담아놓는 돌항아리에는 큰 석판에 교인들이 지켜야 할 행동강령을 새겨 놓았다.

가로로 읽을 때에는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으나 세로로 읽으니 뜻이 통했다.
作善 去惡 洗心 修己 - "선을 이루고 악은 버리라. 마음을 씻고 자기 몸을 닦으라"는 아주 평범한 말씀이었다.

 

* 1900년에 축성한 후 여러 차례 복원 수리공사를 했다고 한다.
* 성당 출입문 옆에 이 성전의 증인 보리수가 거목으로 자라 있었다.

 

우리 일행이 탄 버스는 다시 강화대교를 건너 서울로 돌아왔다.

역시 올림픽 도로는 교통체증이 심해 코스를 방배로로 바꾸었는데 그 덕분에 내가 제일 먼저 내리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강화도 선교지에 가 보면
외침과 피란의 역사 속에서
유교전통에 젖어 있던 우리가
기독교를 믿게 됐구나
다시 한 번 은혜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