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People

People

[일상] 5월 마지막 주 여러 모임에서 느낀 소감

Onepark 2019. 5. 31. 23:00

5월의 마지막 주에 잇달아 저녁 약속이 있었다.

 

5월 27일에는 대학원 석ㆍ박사 제자들과 중국 여행을 하느라 미뤘던 스승의 날 식사 모임을 가졌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 했던 터라 나의 중국 여행기를 비롯해 각자 근황을 이야기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스승의 날 선물(지갑)을 받고 오늘 식대는 고마움의 표시로 내가 낸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의 소감을 다음과 같이 17음절의 연시(聯詩)로 읊었다. 

 

대학원에서 맺은 학연 그때는 사제지간,
지금은 다 같이 나이 들어가는 동료지간.
강단에 서서 하고 싶은 연구 다 해보았지만
그 연구성과를 학맥으로 잇지 못해 아쉽네.

 

5월 29일에는 분기별로 마지막 수요일에 모이는 사회 친구들의 정례 모임이었다.

다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은퇴를 한 처지라 건강관리와 노후대책이 주된 화제였다.

큰 은행에서 외국계 회사로 옮겼다가 CEO를 마지막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친구가 Leadership Coaching이라는 새로운 사업활동을 설명하면서 우리 각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라는 질문에 즉석에서 대답하진 못하고, 그 후 여러 날 이 질문을 놓고 17음절의 시를 짓는 씨름을 하였다. 어쨌든 최우선 과제는 우리나라의 법률 문화를 영어로 설명해주는 KoreanLII Project를 완수하는 일이다.

 

세상 떠난 후 뭘로 기억되고 싶냐는 물음에
한 친구는 상식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했네.
나는 망설이다가 세상지식 갈무리해주는
큐레이터 겸 하이쿠 시인이면 족하다 했지.

 

큐레이터란 박물관 등에서 소장품의 기획ㆍ분류ㆍ전시ㆍ해설을 담당하는 학예사를 말한다. 여기서 세상지식을 갈무리해 준다는 것은 이를테면 2019년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을 보고서 뭔가 체계적인 설명을 해준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 영화 장면에 포함된 영화적 은유(cinematic metaphor)를 10개 이상 찾아 KoreanLII.or.kr에 분석해 놓았다(위의 사진).

 

KoreanLII는 본래 로스쿨에서 외국 유학생들을 대상(LL.M. 과정)으로 한국의 법제에 대해 영어로 설명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러나 정년퇴직 후에는 범위를 넓혀 법개념과 관련이 있는 문화, 예컨대 한국사람의 정(情, affection)과 한(恨, sorrow)에 대하여 이를 체감할 수 있는 시구(詩句)와 사례를 들어 해설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 묘비명은 이렇게 쓰면 좋겠다.

 

꿈을 찾아
세상지식 갈무리한
하이쿠 시인

Nice curator of
World knowledge,
Rest in peace.

 

* 사진작가인 박시호 이사장이 내 프로필 사진을 멋있게 만들어줬다.

5월의 마지막 금요일에는 KDB 입사동기들과 월례모임을 가졌다.

맛집에 일가견 있는 동기의 제안으로 필동 냉면집에서 모였다.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해도 20대 중반에 만나서 40년 가까이 한 솥밥을 먹으며 청춘을 바쳐 일하고 노후를 함께 걱정하는 사이가 되었다. 내 경우에는 같이 보낸 시간이 20년 밖에 되지 않지만 이러한 우정과 친밀함은 예사로운 게 아니다.

 

첫 직장 우정이
지속되어
이젠 황혼을 같이 보네

The initial friendship at KDB
Lasts long enough
To share the twilight.

 

음식점에서 나오니 남산타워가 선명하게 보였다.

길거리에 서서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하늘이 점점 저녁노을로 물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