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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글] 아, 김정보 선배님!

Onepark 2018. 2. 22. 17:00

아, 김정보(金正寶, 1949~2018.1.9) 선배님이 하늘나라로 가셨다. 퇴직하신 후에 건강이 좋지 않다는 말은 들었으나 언제 한번 연락드리지 하고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에 우리 곁을 떠나신 것이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조문을 하자 사모님(추미경)이 한 분에게만 부고를 하였음에도 많이들 빈소를 찾아주셨다고 하시면서 고인의 시와 그림을 엮은 책자를 보내주셨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고인이 은행 공보실장과 부산지점장을 맡아 하는 동안 틈틈히 써놓은 시와 그림을 원고 그대로 인쇄하신 책 「My Favorite Things - 자연과 현대문명」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군대 가 있을 적에 '꿈결에 만난 님' 약혼녀를 향해 부른 노래 CD도 있었다.

 

Please listen to the Love Song for his fiancee-to-be-wife.

 

책장을 넘기는 동안 비교적 가까운 후배였음에도 몰랐던 선배님의 면모가 조금씩 드러나 보였다.

바닷가에 서서 물끄러미 저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는 선배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고인에게 바다는 그리움을 안겨주는 대상이었다. 추억 속의 섬들은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다가왔다. 고인의 그림 중에 많이 등장하는 두 개의 섬은 영원한 고향 ― 엄마 품속의 젖꼭지처럼 보였다.

너무 익숙해 보이지만 지금은 가볼 수 없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인 것이다.

 

김정보 선배님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이 뛰어난 분이셨다. 몸가짐이 바르셨을 뿐만 아니라 말씀도 간단명쾌하기 그지 없었다. 고인의 1999년 저작 「창조적 경영만이 살아남는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소유를 통한 행복도 추구해야 하지만, 무소유가 주는 정신적 열락도 누릴 줄 알아야 한다.
소유의 대상인 물질도 결국은 부패하여 분해되듯, 소유의 대상도 영원할 수도 없는 것이며 또한 덧없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처럼 소유의 극대화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개인들은 물질적 포지티비즘과 정신적 네거티비즘의 균형선상에서, 자아를 상실치 않고 현명하게 대처해 가는 것이 진정한 삶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중국인의 중용지도도, 과유불급의 철학도 결국은 이 균형주의 표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 존재 그 자체로부터 생의 환희를 음미하며 소유를 넘어선 저 지평선을 바라볼 때, 삶은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을 안겨줄 것이다.”

 

고인은 미션스쿨인 대광중ㆍ고등학교를 나와 바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였다. 자타가 검사를 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고시공부하면서 도진 위염 때문에 사법시험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한국산업은행에 입사하여 인사부를 거쳐 미국 시애틀 소재 워싱턴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980년대에는 대학 출강이 가능하였으므로 한국외국어대, 성균관대 등 여러 학교에서 경영학을 강의했다. 은행에서는 뉴욕사무소 부소장, 공보실장, 부산과 서울의 여러 지점장을 역임하였다.

고인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후배인 필자도 사법시험에 실패하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던 차에 고인이 산업은행의 신입사원 채용 계획을 알려주셔서 선배님의 뒤를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고인의 "헌 구두"라는 시에도 이러한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이 시는 "Old Shoes"라는 제목으로 필자가 영문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헌 구두

 

새구두를 신으면

길이 아무리 매끈하여도
항상 발이 아프다

 

발뒤꿈치에 물집이 나거나
앞발가락은 매우 심한
통증을 일으키곤 한다

 

새구두를 신는 것은
결혼과 같은 이치
처음엔 맞지 않아서
이리저리 고생을 하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마침내 타협을 이룬다

 

새구두를 신으면
조강지처 생각이 난다
오랜 세월의 물결 속에
발과 구두의 관계가 된
조화의 조강지처여

 

역시 낡은 것이 편하다
역시 오래 된 것이 좋다
역시 정들은 것이 좋다

 

Here is JB Kim's Love Song arranged by Chung Dong-sup (Instrum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