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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 글] 외우 장성구 회장에게 거는 기대

Onepark 2018. 2. 21. 22:00

4자성어에 '괄목상대(刮目相對)'란 말이 있다. 고3 때 같은 문과반이었던 친구를 2,30년 만에 보니 몰라볼 정도로 식견과 위치가 달라져 있었다. 외우(畏友) 장성구(張聲九) 교수를 일컫는 말이다.

장 교수는 2018년 2월 말로 경희대학교에서 정년을 맞고, 3월부터는 대한의학회 제23회 회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2월 21일 장 교수가 32년간 몸 담았던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비뇨의학교실 주최로 경희의료원에서 "MRC 미래의학"에 대한 정년기념 심포지움이 열렸다.

 

* 심포지움에 참석한 대한의학회 이윤성 회장의 축사

장 교수는 경희대학병원장을 역임했고 대한의사협회 감사와 대한비뇨기종양학회장, 대한암학회장을 지냈다. 대한의학회는 지난 50년 동안 의학회 원로들이 지명한 후보를 평의원회에서 인준하는 형식으로 회장을 선출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뀜에 따라 2017년부터는 경선을 통해 회장을 뽑기로 했는데 장 교수가 이른바 非서울대ㆍ非연세대 출신으로서 그 해 3월 경희대 출신이 단 한 명도 없는 평의원회에서 직접 선출되는 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고3 때만 해도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동창이 어떻게 거물급 인사가 되었을까?

같은 캠퍼스에서 10여 년을 같이 지내다 보니 그 비결을 알 수 있었고, 그것은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개선방향이기도 했다.

우선 장 교수의 전공분야가 30년 전만 해도 피부비뇨기과라 해서 주변부로 취급되었으나 지금은 노년의 남성 치고 전립선 걱정을 안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고 방광과 요로에서 생기는 각종 병변과 종양이 건강과 웰빙의 큰 문제로 부상한 시대가 되었다.

장 교수는 이 분야의 연구를 천착하여 처음부터 외국의 학술지에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데 주력했으며 임상의학을 하면서도 국내외에서 240여 편의 연구논문과 7권의 전문서적(공저)을 냈다.

 

* 제4차 산업혁명과 미래의학의 변화를 논하는 심포지움의 주제발표 장면

둘째는 장성구 교수의 샘 솟는 듯한 인문학적 소양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청년의 꿈을 품고 써온 작품만 300여 편에 달한다고 한다. 그 중 일부는 "여강(驪江)의 꿈"이라는 시집과 "이 몸은 내 몸이 아니오"라는 의학수필집으로 펴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수십 편의 시 중에서 고르고 골라 10여 편은 김동진 경희대 교수가 곡을 붙인 한국 가곡으로 재탄생했다.

장 교수가 강혜정, 이재욱 등 유명 성악가들과 뮤지션들의 도움을 받아 자비로 한국 가곡 CD를 제작했다. 이 CD의 타이틀 곡이기도 한 "초심"[1] 노래를 들어보자.

 

      나는 돌아가리라

      세월의 강물 위에

      벗은 모자 훌쩍 던져 흘려보내고

      번뇌마저 삼켜버린 별을 헤아려

      흰 고무신 허리춤에 꿰어 차고서

      나는 돌아가리라

 

      나는 돌아가리라

      달려온 오솔길의 풀섶 사이로

      흠뻑 젖은 저녁 이슬 손을 씻으며

      도라지꽃 산나리가 어우러지고

      밝그레 소년의 꿈이 피는 곳

      나는 돌아가야 한다.

 

여러 성악가들이 제창을 한 "예맥(濊貊, 고대 만주지역에서 활동하였던 부여ㆍ고구려 등 한민족을 중국에서 일컫는 말)의 노래"(12번 트랙)에서는 남다른 기상이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장 교수는 여주의 시문에 뛰어난 유학자로서 구국 의병활동을 벌였던 만락헌(晩樂軒) 장석인(張錫寅) 공의 후손이고 월전 장우성 화백과 같은 집안이라고 하니 말이다. 또 선친은 바둑에 조예가 아주 깊으셨다고 한다.

      

      태초에 하늘이 고운님 보내

      비단폭에 섬섬옥수 수를 놓으니

      청량한 물줄기 장강을 이루고

      장엄한 용트림 준령을 이루었다

      높은 산과 깊은 골은 명승을 잉태하고

      계곡마다 푸른 물은 지사의 터전

      동녘의 서광이 대지를 어루만져

      반만 년의 향기가 온누리에 스며드니

      뉘라서 말을소냐 고운님 높은 뜻을

 

      빗살무늬 새긴 가슴 하늘의 뜻을 받고

      흰 적삼 곱게 여며 미리내 사랑이라

      수많은 시새움에 고달픈 언덕마다

      아픈 마음 서로 달래 손잡고 지킨 터전

      높은 얼과 푸른꿈이 백두대간 뛰오르니

      검푸른 대양 위에 끝모를 고향

      비바람 눈보라 대지를 스쳐간 뒤

      상서로운 무지개 대륙에 이어지니

      오천년 기상이 창공에 가득일세

 

끝으로 장 교수는 임상교수로서 바쁜 와중에서도 휴가 대신 연 1회 이상 의료봉사를 다녔다.

그것도 의료혜택이 닿지 않는 개도국을 찾아다녔는데 몇 년 전에는 키르기스탄에 의료진을 이끌고 가서 의료봉사를 벌이고 현대식 의료장비와 기술을 전수하고 돌아왔다.

나는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교훈을 가진 대광고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낸 것을 큰 축복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때 같은 학창시절을 보낸 장성구 교수를 같은 캠퍼스에서 괄목상대하며 20년 가까이 교유(交遊)하고 지낸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것은, 장 교수가 본을 보여준 것처럼, 시대가 요구하는 전공분야를 택해 각고면려한 끝에 뛰어난업적을 남기고, 또한 타고난 소양을 갈고 닦아 조상을 빛나게 하고 이웃을 널리 이롭게 하는 일이다. 이것이야 말로 오늘날 대학교에서 배출해야 할 가장 바람직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 외우 장성구 교수와 그 부인. 장남 장기백 변호사는 경희대 로스쿨 출신이다.

장성구 교수는 똑똑한 천재 한 명이 1,2천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은 이제 죽은 말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스스로 입증했다시피 문과반에서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문학과 예술을 이해하는 의사가 되었으며, 이 모든 것을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는 시대 흐름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제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변화는 우리에게 현실로 닥치고 있다고 말하고, 앞으로 의료분야에 있어서도 검진 결과를 가지고 치료하는 것(Evidence-based Medicine)에서 환자의 유병가능성을 예측하고 치료하는 것(Predictive Medicine)으로 발전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므로 의료계는 AI 같은 첨단 기술을 적용하여 유용한 플랫폼을 구축하고 의료복지 증진을 위한 각종 서비스업을 이에 편입할 필요가 있다[2]는 것이다.

학자로서 정년을 맞은 후 이제 의사ㆍ의학자 단체인 대한의학회의 수장으로서 더 나은 의료정책을 정부에 건의하고 현장에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실천하는 데 앞장서게 될 장성구 외우(畏友)의 건승을 기원해 마지 않는다.

Note

1] "초심"은 CD의 8:00에 시작하는 네 번째 트랙에 수록되어 있다. 가곡 "가고파"로 유명한 김동진 교수는 장 교수의 시에 곡을 붙인 후 사실상 유작이 된 "이 작품들이 살아 숨 쉬도록 세상에 알려달라"고 당부하셨다고 한다. 성악가와 뮤지션을 섭외하고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고 음반으로 제작하는 것은 남다른 능력을 가진 장 교수의 몫이 되었다.

 

2] 이 말은 장성구 교수가 2018.2.21 심포지움이 끝나고 만찬장에서 발표한 "삶에 대한 도전과 응전"의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