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의 옛 이름은 류큐국(琉球國)이었다. 홍길동전을 보면 홍길동이 활빈당 무리를 이끌고 남해 바다로 가서 세운 나라가 율도국이라고 하는데 류큐국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 오키나와는 아주 오래 전부터 한반도와 교류가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일본의 침공계획을 미리 알아차리고 조선과 명나라에 대비를 요청하기도 했다. 일본 측 기록에 의하면, 1500년대에 무거운 조세 착취에 항거하여 농민들의 편에 서서 봉기한 오야케 아카하치라는 인물이 있는데, 그의 별명이 홍가와라(洪王家)였고 그가 쌓았던 성터가 조선식이고, 그 곳에서 조선의 도자기 등의 유물이 나왔다고 한다. 홍길동이 실존인물이었다고 보는 견해는 전라남도 장성이 그의 고향이라고 하며, 장성에는 홍길동의 무리가 남해 먼 바다로 집단이주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오늘날의 오키나와는 태평양 전쟁 후 미군이 점령하고 있다가 1972년에 반환한 일본의 한 현으로서 아열대기후와 이국적인 풍광으로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우리 부부도 열심히 일했던 2017년을 마무리하는 셈으로 인천공항이 붐비기 시작하던 날 오키나와를 찾게 되었다.
인천공항에서 오키나와 나하공항까지의 비행시간은 2시간, 캐주얼 타입의 패키지 투어로 저가항공(LCC)인 진에어를 이용하였다. 스튜어디스들이 모두 청바지 차림이어서 경쾌 발랄해 보였다. 기내식은 삼각김밥과 빵 1개, 딸기잼이었으며 그 밖에 맥주나 탄산음료는 유료였다.
우리가 탄 항공기는 인천 공항의 이착륙이 번잡하여 50분 연발하였으나 나하 공항에는 오후 1시에 정상적으로 도착했다. 한국과 시차가 없는 일본 표준시가 적용된다.
오키나와의 하늘은 꾸무럭했지만 글래스 보트를 타고 산호초의 바다 밑을 구경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다음 코스는 치넨 미사키(知念岬) 공원이었다. 오키나와 남부의 나하시(那覇市) 정동 방향에 있어서 일출을 보러 많이 가는 곳이라 했다. 맑은 날씨에는 바다가 푸른 빛으로 보이겠지만 간간히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날에는 해풍이 거셀 뿐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이용하여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절벽 아래에서 끊임 없이 세찬 바람이 불었으므로 순간을 포착하면 패러슈트가 활짝 펼쳐지면서 사람이 둥실 떠올랐다. 이것은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하였으므로 전문 조종사가 손님을 앞에 태우고 날아 올랐다.
다음은 오키나와에서 제일 번화한 국제거리를 둘러볼 참이었다.
전쟁 통에 오키나와 전역이 파괴되었음에도 미군 상대의 점포들이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복구되었다는 점에서 기적의 1마일(Miracle One Mile)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거리에는 형형색색의 선물과 과자를 진열해 놓은 가게와 음식점, 약국이 즐비하였다.
우리 일행은 이곳의 명물 88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샐러드와 음료는 무제한 리필에 밥까지 나오는 퓨전 스테이크로 저녁식사를 했다. 전후 오키나와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미국인과 현지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된 퓨전 음식인데 지금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숙소인 로와지르(Loisir) 호텔로 이동했다.
이곳은 해수 온천과 풀장이 인기가 많다고 한다. 한국의 사우나 탕에 비하면 규모가 작았지만 밖에 나가서 노천탕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었다.
이튿날 아침 류큐국의 왕성이었던 슈리성(首里城)을 찾아갔다.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것을 대부분 복원하여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슈레이문이나 왕궁은 일본의 건축양식이 아니고 중국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양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609년 사쓰마 번의 침공을 받을 때까지 독립왕국이었고 그 후 일본에 조공을 바치다가 일본의 메이지 유신 후 1879년 일본에 강제로 병합된 역사를 갖고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의 저항이 거세었던 만큼 미군이 함락한 후 1972년까지 미군 지배하의 자치정부로 남아 있었다. 일본 해군사령부가 있던 지하 요새에서는 3천여 명의 병사와 민간인들이 자결(옥쇄/玉碎)할 것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2000년 7월에는 일본이 큐슈와 오키나와에서 G-8 정상회담을 개최하면서 슈리성에서 만찬을 가졌다는 기록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때 많은 외빈을 맞았기 때문인지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일본 삼나무(히노끼)로 내장되어 있어서 새삼 놀랐다.
슈리성에서 나와 유료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차탄에 있는 아메리칸 빌리지로 갔다.
본래 비행장이 있던 곳을 상가와 유원지로 개발하여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도시를 방불케 했다.
아메리칸 빌리지 입구에는 대관람차(Big Wheel)가 있었고 아메리칸 데포(American Depot)에는 가지각색의 미국 물품을 파는 잡화점과 다양한 물건을 파는 상점, 레스토랑, 커피숍 들이 몰려 있었다. 여전히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있는 것이 '일본 속의 미국'이라 부를 만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가데나(嘉手納) 미 공군기지가 있는데 그 반환 문제는 오키나와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와 미국의 오랜 현안으로 남아 있다.
실로 아메리칸 빌리지에서는 단체로 식사할 필요가 없다. 일식이든 양식이든 중국식이든 자기의 기호대로 골라 먹으면 된다. 이에 따라 여행 가이드는 1인당 1천엔을 나눠주고 2시간의 자유시간을 주었다.
우리 내외는 아메리칸 데포의 상점들을 구경한 후 건너편 창고형 매장에 들러 우리에게 필요한 생필품과 반려견 간식을 구입했다. 각종 집안수리도구와 자재, 꽃나무, 화분을 판매하는 매장이 나란히 있어서 일본 사람들은 정초에 무슨 꽃을 사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교토 라면집에 들렀다. 의외로 사람이 많았는데 외출 나온 미군 병사들도 열심히 젓가락 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시킨 소유 라면은 푸짐하게 온갖 토핑을 다 했는데도 980엔이었고 우리 입맛에도 맞았다.
아메리칸 빌리지 다음 코스는 오키나와 원주민의 민속촌인 류큐무라였다.
악귀를 쫒는다는 시사가 입구에서 버티고 서 있었다. 류큐무라의 주된 일은 사탕수수로 흑설탕을 만들어 각종 과자류를 제조하는 것과 흙으로 빚은 크고 작은 시사를 가마에 구워서 파는 일인 듯 했다. 용인의 민속촌을 여러 번 가 본 우리들로서는 류큐무라의 민속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예정시간보다 일찍 나와 내일로 예정된 만좌모(萬座毛)를 앞당겨 보기로 했다.
토기를 굽는 가마는 여전히 가동 중이었다.
그리고 오키나와의 주산업인 사탕수수를 가지고 흑설탕을 만드는 작업은 물소가 동원되고 있었다. 물소는 피부에 땀구멍이 없기에 체온이 오르면 물속에 들어가 열을 식혀야 한다고 한다. 물소가 느릿느릿 움직일 때마다 사탕수수 다발에서 설탕 즙이 흘러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류큐국의 쪽빛 바다
장보고와 홍길동이 있었기에
팬터지 랜드처럼 보이네
The blue ocean of Ryukyu State was
the Stage of Jang Bogo and Hong Gildong,
Korean heroes of old famous stories.
* 장보고는 9세기에 전라남도 청해진(완도)을 중심으로 한국(통일신라)과 중국(당나라), 일본(헤이안) 간의 교통과 무역을 지배했던 해상세력이었다. 그러나 신라의 왕위계승전에서 패퇴하면서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동아시아 해상무역의 실제 모습은 일본의 구법승 옌닌(圓仁)의 기록을 발굴한 미국의 라이셔워 하버드대 교수(케네디 정부의 주일대사 역임)를 통해 1955년에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홍길동은 16세기 허균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이다. 서출(庶出)이기에 출세 길이 막힌 홍길동은 영국의 로빈 훗(Robin Hood)처럼 의적활동을 벌인다. 마침내 그는 관군에 붙잡히게 되었으나, 활빈당 무리와 함께 남해의 율도국으로 떠난다. 그곳 왕이 가렴주구로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자 홍길동은 그를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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