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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이상한 그림 해설과 Bosch Dreams

Onepark 2017. 3. 25. 21:00

스페인을 여행 중인 친구가 프라도 미술관에서 [쾌락의 정원]을 보고 왔다고 자랑을 했다.

나도 몇 년 전에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가서 베라스케스의 [시녀들]은 보았지만 그 그림은 못 보았는데. . .

인터넷을 찾아보니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은 실로 괴기스러운 16세기의 그림이었지만 상징적인 메시지가 너무나도 강렬했다.

 

* Hieronymus Bosch,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1500)

로댕도 [지옥의 문]에서 묘사하고자 했지만, 세 폭으로 구성된 [쾌락의 정원]에서는 에덴 동산에서 쫒겨난 인류가 현세에 어떻게 타락했는지 보여주면서 최후의 심판에서 고통 받는 장면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 지옥에 떨어진 영혼들이 거대한 귀 두 개에 의해 으깨지는데 그 귀 사이에는 칼이 있다.

- 머리에 솥을 쓰고 발에는 병을 신은 새처럼 생긴 괴물이 거대한 변기 의자에 앉아 사람을 한입 가득 삼키고 있다.

- 막대기에 거대한 열쇠가 매달려 있는데, 술에 취한 남자가 열쇠의 구멍 속에 축 늘어져 있다.

- 거대한 류트에 묶여 있는 남자는 뱀 같은 괴물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

- 휴대용 풍금 위에 눈먼 거지가 앉아 있는데 손잡이를 한 번 더 돌리면 그 아래에서 트라이앵글을 연주하는 여자의 머리가 잘릴 참이다.

 

위의 그림에서 해당 부분을 확대한 것이 아래의 그림이다.

음악에 도취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생명이나 명예를 위태롭게 하는 유혹에 빠지거나, 예술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다가는 타인을 죽음에 빠트릴 수도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최후의 심판 그림에 대한 설명은 Huffington Post의 관련기사 참조.

아마도 보스는 악몽 같은 환각 상태에서 이 그림을 그렸음에 틀림없다.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그는 "안토니의 독"으로 알려진 단독(丹毒)에 중독되어 있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 그림은 공연예술가들에게는 영감의 소재가 되었다. 이 그림을 남기고 떠난 화가의 서거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보스 재단이 보스 작품을 기반으로 한 작품을 공모하자 캐나다의 세븐 핑거스(Les 7 doigts)가 보스의 그림 [쾌락의 정원]을 들고 나왔다. 태양의 서커스 출신 일곱 명의 아크로배트는 덴마크의 리퍼블리크 씨어터 제작팀의 도움을 받아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을 실제로 연기하며 그림과 애니메이션, 열쇠 모양의 링 곡예를 넘나들었다.

Seven Fingers의 "Bosch Dreams" 공연은 2018년 4월 초 서울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기괴스러운 오리지널 작품 때문인지, 아니면 어두운 무대조명 탓인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Click here to see "Bosch Dreams" teaser on YouTube.

 

그 밖에 술(알코홀)에 의한 중독현상을 찬미한 시인도 있었다.

보들레르는 술, 마약 등의 복용으로 인한 환각이 사람의 생각을 기름지게 만들어 풍성한 사고를 탄생시키는 등 인간 개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을 "인공낙원"이라고 불렀다.

생각해 보면 산업화 사회에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쉽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값싼 술 뿐이었다.

 

* 일본 야스다 보험사가 당시 최고가에 구입한 반 고흐의 해바라기 (1888)

화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화가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인공낙원'은 바로 압생트라고 하는 55도가 넘는 독주였다. 특히 반 고흐는 알코올 중독증세마저 보였다. 반 고흐가 아를에 간 이후 그의 작품에서는 노란색이 훨씬 강렬해진다. 압생트를 과음한 나머지 산토닌 중독처럼 물체가 노랗게 보였던 것이다.

반 고흐는 압생트를 마시고 해바라기를 보면, 노란 해바라기가 황금빛으로 이글거린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숨김없이 그림으로 재현했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이 그로부터 100년 후인 1987년 5월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팔렸다. 무려 3,990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가격에 일본의 야스다 해상보험에 낙찰되었다.

반 고흐의 그림과 같은 시기에 그려졌지만 "자체발광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또 다른 그림을 보자.

 

* Jean-Léon Gérôme, Phryne revealed before the Areopagus (1861)

이 그림은 기원전 4세기 아테네에 실제로 벌어졌던 재판 장면을 프랑스의 화가 장-레옹 제롬이 극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어느 조각가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신상을 만들 때 그 모델이 될 정도로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프리네는 그에게 치근덕거리는 고관을 거절했다가 그만 신성모독죄로 고발을 당해 법정에 서게 되었다.

프리네의 연인이기도 한 변호인은 고민에 사로잡힌다.

- 고발자(그림 왼편의 어둠 속에 앉은 남자)의 흉계를 어떻게 폭로할 것인가.

- 표정이 제각각인 것처럼 완고하기 짝이 없는 배심원, 재판관들의 마음을 어떻게 돌릴 것인가.

- "타고 난 아름다움도 죄가 될 수 있느냐?"는 호소를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

 

변호인 히페르데스는 프리네를 큰 천으로 감추고 법정에 데려가 극적인 순간에 천을 벗기고 아름다운 누드를 배심원들에 직접 보여주기로 작정하고 그대로 실행에 옮긴다.

아름다운 여인의 누드를 직접 살펴보고 판단하라는 격정적인 호소였다. 그 말에 고발자인 에우티아스는 스스로의 눈을 가리고 만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균형잡힌 아름다움을 '절대선'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고발자의 음흉한 웃음대신 변호인의 솔직한 말에 수긍했고 프리네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음모와 수근거림을 백일하에 드러내놓고 직설적으로 호소한 방법이 주효했던 것이다.

* 그림 속에서 프리네의 발 아래 떨어진 벨트에는 KAHH (아름다움)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