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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고교 동창들과 함께 떠난 여행

Onepark 2016. 11. 20. 17:24

지난 4월에는 대학 동창들과 안동으로 졸업 40주년 기념 수학여행을 떠났는데 이번에는 고교 동창들과 졸업 45주년 수학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지난 여름 회장단(회장 이선주)이 졸업 40주년 때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경주로 갔던 것처럼 45주년 특별행사를 갖기로 한 것이다. 이번에는 부부동반으로 가되 운동을 원하는 사람은 골프를 칠 수 있도록 하였다.

운영위원 여럿이 역할을 나누어 우선 희망자가 부부동반 여부, 관광/골프 선택 신청을 받았다.

"축복의 여수 수학여행"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카톡 방과 밴드를 열어 정보를 실시간으로 교환했다.

드디어 11월 18일(금) 새벽 첫 비행기로 107명(그 중 부부동반이 38쌍)이 여수로 떠났다. 부산에 사는 동기는 부부가 자동차 편으로 여수로 와서 합류했다.   

 

* 동기 한 사람이 비행기를 놓쳐 그가 다음 비행기를 타고 올 때까지 40분을 공항 주차장에서 기다렸다.
* 전면의 빨간색의 관광버스에는 소형 소화기는 물론 비상탈출용 해머도 3개나 비치되어 있었다.
* 남해로 들어가는 입구에 건설 중인 제2의 현수교. 주탑 사이에 케이블이 가설되는 중이었다.

운동을 택한 동기들이 버스 2대에 분승하여 떠난 후 관광을 선택한 동기들은 남해로 이동하였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독일마을의 원예예술촌을 이리저리 돌아보았다. 집집마다 핀란드, 호주, 일본 등 주택양식이 달랐고 정원에 심은 나무와 화초도 제각기 개성있게 꾸며놓았다. 맹호림, 박원숙 씨 같은 연예인도 예술촌 협동조합의 구성원이었다.

가이드의 해설을 통해 이곳에 지붕이 붉은 독일풍의 마을이 형성된 유래도 알 수 있었다.

독일을 방문 중이던 당시 김두관 김해군수가 파독광부/간호사들이 고국에 정착하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택지를 염가로 제공하고 원예협동조합 주민들과 이웃해 살도록 주선했다는 것이다.

 

* 이국적인 독일 마을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일상의 평온을 깨뜨리는 것을 싫어하니 주의해야 한다.

점심 때는 이곳의 명물인 멸치쌈밥을 먹었다. 추어탕에 미꾸라지 대신 큰 멸치가 들어있다고 보면 되었다. 하지만 너무 짜서 상치나 깻잎으로 위장을 달래야 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조선을 개창한 이성계가 명산을 다니면서 기도를 하던 중 왕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도량을 찾아갔다. 바로 금산(비단을 두른 산이란 뜻)의 보리암이다.

관음보살상 앞 전망대에 서니 안개가 끼어 시계는 흐렸지만 한려수도의 절경이 눈 아래 펼쳐졌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으므로 우리 일행은 서둘러 버스를 타고 여수 해안가에 있는 디오션 숙소로 직행했다.

 

이곳의 에너지가 충만하여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일으키기 전에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이곳 관음보살상의 영적 파워는 강릉 경포대의 해수관음상 못지 않다고 한다.

 

저녁의 이벤트는 숙소인 디오션 호텔 볼룸에서 만찬을 마친 후 성대하게 막을 올렸다. 

100명이 넘는 인원이었으므로 가나다 순으로 테이블 당 6명씩 앉았다. 이선주 회장의 환영사에 이어 총괄 신현준, 행사진행 김동욱이 수고하여 우리는 동반한 부인들과 즐거운 여흥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각자 노래와 춤, 부부합창, 강의 등 장기를 발휘하면서 사이사이 조별로 준비한 선물을 나눠가졌다.

 

* 이선주 회장이 환영사를 낭독한 후 역대 회장들이 건배사를 했다.
* 아무도 임원을 맡으려 하지 않아 회장을 19년이나 맡았던 이근일 동기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디오션은 호텔과 리조트(콘도)로 나뉘어 있는데 리조트 쪽에는 대형 워터파크가 조성되어 있다.

규모로 보아 여수 해양 엑스포 내방객들을 겨냥하여 만든 시설이었다. 나는 룸메이트인 문유현 동기와 새벽 일출도 볼겸 스파로 목욕하러 갔으나 짙은 안개로 인해 창 밖으로 펼쳐질 남해의 일출장면은 볼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순천만 갈대밭을 찾아갔다.

 

본래 이곳 갯벌은 개발대상지였으나 환경단체의 호소를 순천시에서 귀담아 듣고 갈대숲을 보존하기로 했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은 시장이 바뀌어도 이 정책을 그대로 유지했으며 2006년에는 람사르 연안습지로 지정되었고 2013년에는 세계 정원박람회가 순천만에서 열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목재데크로 통행로를 만들어 놓아 갈대 숲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 도둑게가 여기저기 파놓은 구멍도 볼 수 있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짙은 안개가 가시질 않아 여러 사람이 용산 전망대까지 올라갔지만 눈 아래 펼쳐지는 풍경은 상상으로 그쳐야 했다.

 

수문옆 물가에 홀로 서 있는 재두루미 한 마리밖에 볼 수 없었으나 어느 시인은 멋진 새떼의 장관을 보았다. 

 

11월의 갈밭 하늘에
먹물 몇 점이 번진다
창공 높이 도요새떼 떴다
비오리 고방오리 쇠오리 청둥오리 재갈매기 고니떼
연이어 솟아오르고
일필휘지 검은 밧줄을 늘였다 당기며
기러기떼 행렬이 먼 산마을 쪽으로 들어간다.

(송수권 시인이 순천만 위로 비상하는 새떼를 보면서 읊은 시, 목재데크의 갈목비4)

 

* 바닥에 고인 빗물 위에 비치는 피사체의 영상까지 담느라 카메라멘들의 수고가 적지 않았다.
* 고3 때 짝궁이었던 정진철.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지금은 KOTRA에서 중국사업 자문을 하고 있다.

순천만 갈대숲을 본 다음에는 순천만 국가정원을 볼 차례였다. 

2013년 국제정원박람회를 열었던 곳을 그 이듬해 제1호 국가정원으로 재개장함으로써 순천만을 향해 뻗어가는 도심의 팽창을 차단하는 생태 축 역할을 하고 있다 한다.

순천만을 본떠 조성한 인공호수에는 영국의 가든 디자이너 찰스 쟁스가 설계한 둥근 피라밋 모양의 봉화언덕이 이채로왔다.

 

호수 중앙의 봉화언덕은 좁은 소로를 통해 빙빙 돌아서 올라가야 했는데 코스를 분리해 놓은 까닭에 올라가고 내려오는사람들이 뒤엉킬 염려가 없었다.

정원 곳곳에 여러 국가 별로 특색있는 가든이 전시되고 있다는데 우리 일행은 다음 일정을 좇아 이동해야 했다. 순천만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필자가 운영하는 KoreanLII 사이트 참조.

 

점심은 진짜 상다리 부러지게 나오는 남도의 한정식이었다.

대형버스가 여러 대 주차할 수 있는 여수 항구 앞 음식점 한일관(엑스포점)으로 갔다. 

한상 걸게 차려진 해산물 중심의 음식을 먹으며 우리는 "가성비 최고"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 고3 문과반에서 서울치대에 현역으로 합격한 기록을 세웠고 현재 부산에서 치과를 하고 있는 이강주 부부

여수 해양엑스포 때 인기를 끌었던 해상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긴 줄이 늘어서 있었음에도 여행사 직원이 미리 표를 사놓아 우리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6-8명씩 탑승했다. 

우리는 소리없는 헬리콥터를 타고 가듯이 거북선 대교를 옆으로 통과했다.

이런 케이블카, 로프웨이는 시간 없고 다리힘 약한 교통약자를 위한 관광시설인 만큼 명산에도 설치하면 좋으련만. . .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인 산신령 사상 때문에 산 위에 쇠말뚝을 세우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한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전망대에서 여수 시내 사방을 둘러보았다. 

여수 신항과 여수 세계박람회가 열렸던 엑스포 공원 쪽을 내려다보며 친구들과 사진을 찍었다.

오른편으로는 옛날부터 "비 내리는 오동도" 같은 노래에 많이 등장했던 오동도가 보였다.

 

짙은 안개로 비행기가 연발착하는 바람에 시간 여유가 생겨 레일바이크를 타러 갔다.

우리 모두 어린아이들처럼 환성을 지르며 레일바이크에 올라 탔다. 제법 긴 터널을 지나가니 반환점에서 인력으로 바이크의 방향과 선로를 옮겨주었다. 

해안 언덕위의 선로 위를 바이크 페탈을 밟으며 달려 갈 때 가두리 양식장 너머로 노을지는 여수 외항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 레일바이크 코스는 해변도로를 따라 용도 폐기된 터널까지 이용함으로써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 레일바이크를 처음에는 안 탈 생각이었으나 우리 모두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는 여수 공항에서 안개 때문에 연발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다음에 또 언제 만날지 모르기에 우리는 마지막인 것처럼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리고 5년 후의 졸업 50주년 행사 때도 재회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랬다.

어제 저녁에 김동욱 동기가 공약을 한 것처럼 우리 모두 건강하게 5년 후에 하와이로 부부동반 여행을 떠나자고 말했다. 

 

마침내 출발하였던 김포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수고가 많았던 이선주 회장을 비롯한 행사 운영진의 노고에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악수를 나누고 해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