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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Free Access to Law Movement 회의

Onepark 2015. 11. 13. 23:21

6년 만에 가는 시드니는 출발부터 조짐이 좋았다.

하나는 학기 중이었음에도 내가 운영하고 있는 KoreanLII의 Free Access to Law Movement (FALM)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보강을 조건으로 해외출장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인천공항 카운터 앞 모닝캄 회원들이 일반석 못지않게 장사진을 이룬 것을 보고 놀랐는데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었기 때문이다. 보딩을 할 때 항공사 여직원이 일반석이 만석이라며 날 보고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비즈니스 티켓으로 바꿔준 것이다.

 

비즈니스 석은 기내식 메뉴부터 다르다. 비행 도중에 특별히 요청해 황태까지 넣어 끓여 준 라면을 먹기도 했다.

야간비행 중 누워서 잘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특권인지 비즈니스석을 타 본 사람은 일반석으로는 장거리 여행을 못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시드니 공항에서 입국수속을 밟을 때에도 비즈니스석 승객은 eFlash 카드를 나눠주어 오래 줄을 서지 않고도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할 수 있었다.

비록 업그레이드 추가요금을 내진 않았지만  Money talks 를 실감했다.

 

역 앞에 위치한 Ibis World Square 호텔에서는 마침 빈 방이 없다고 하여 체크인 시간까지 지하 물품보관소에 트렁크를 맡겨 놓고(A$7) 지리도 익힐 겸 밖으로 나갔다.

우선 Hyde Park를 거쳐 Royal Botanical Garden 으로 갔다. 예전이나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하늘은 푸르고 사방에 봄빛이 완연했다. 공원 구내의 파빌론에 앉아서 고즈녁한 상념에 잠겼다.

 

* 처음엔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나쳤으나 호주와 뉴질랜드의 수많은 젊은이가 희생된 갈리폴리 전투 기념관이었다.

하이드파크 초입에 단순한 외관의 건물이 눈에 띄었다. 그저 무슨 기념관이려니 하고 지나쳤다.

지금 이 글은 그 후 뉴질랜드의 퀸즈타운, 터키 앙카라의 아타튀르크 기념관을 가본 후에 쓰고 있다. 여행을 할 때에는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미리 사전조사를 하고 떠나거나 가이드의 설명을 잘 들어야 한다는 말을 유념해야 한다. 아니 한편의 노래나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웅변으로 증명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호주 출신 러셀 크로우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Water Diviner'(호주 황야에서 우물 파는 사람, 2015)가 단적인 예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해군장관 윈스턴 처칠은 독일 연합국인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손발을 묶어놓을 필요성을 절감했다. 수에즈 운하를 확보하고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려면 유럽과 소아시아가 접한 다나넬스 해협을 장악해야 했다. 연합군 함대가 흑해로 진출할 수 있다면 러시아도 방어하고 오스만을 꼼짝 못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오스만 제국 군대는 연전연패 오합지졸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호주-뉴질랜드 연합군(ANZAC)을 갈리폴리 반도에 상륙시키면 땅 짚고 헤엄치기로 필승을 확신했다. 오스만 정부도 막강한 앙탕트(Entente) 군사력에 겁을 먹고 반제국 성향의 케말 파샤 장군에게 소규모 병력만 주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영국군을 저지하라고 명령했다.

1915년 4월 25일 ANZAC 젊은 병사들이 갈리폴리에 상륙은 했으나 케말 파샤 군대에 막혀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오합지졸을 천하무적의 정예군사로 조련해 놓은 케말 파샤의 존재를 몰랐던 게 처칠과 연합군 지휘부의 치명적 오산이었던 것이다. 결국 8개월간 피아간에 수십만의 젊은이들을 희생시킨 채 ANZAC 군대는 갈리폴리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호주는 8,700여 명, 뉴질랜드는 2,700여명의 희생자가 나왔으니 가정뿐만 아니라(영화 Water Diviner의 스토리) 나라가 결딴날 판이었다. 그래서 호주는 시드니에 ANZAC Memorial을 세우고, 두 나라는 매년 4월 25일을 ANZAC Day로 추념하고 있다.

 

* 시드니 하이드 파크 분수대
* 호주를 죄수의 유형지에서 근대적 식민국가로 탈바꿈시킨 Lachlan Macquarie 총독의 동상

하버 브리지가 바라다 보이는 오페라 하우스에는 많은 관광객들, 대다수는 중국 관광객들이 가족끼리 또는 단체로 몰려다니고 있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나서 지리도 익힐 겸 Circular Quay에서 도심 쪽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옛날 생각이 났다. 도심의 고가철도는 없어졌는데 그 자리에 맥도널드가 있었다. 쿼터파운드 햄버거를 세트로 시켜서 먹고 잠깐씩 졸면서 호텔 체크인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호텔에 여장을 푼 다음 AustLII 시설을 견학하기 위해 서둘러 센트럴(중앙역) 부근의 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학교를 찾아갔다. 금년은 AustLII 창립 20주년이 되는 해여서 세계적으로 법률정보의 인터넷 공개를 앞장서 실천한 UTS와 UNSW가 공동으로 Law via the Internet 2015 연차총회를 시드니에서 개최한 것이다. AustLII 안내책자를 보고서야 그린리프 교수님이 필립 정에게 Managing Director 자리를 넘겨주신 것을 알았다.

UTS 캠퍼스 구내에 있는 AustLII를 방문하니 FALM 회원들이 여러 명 와 있었다. 나는 일행과 함께 책을 통째로 복사하여 pdf 파일을 만드는 고성능 로봇 스캐너를 구경했다.

 

오후 3시에 UNSW 그린리프 교수 주재로 제15차 FALM 연차총회를 가졌다. KoreanLII가 신입회원으로 소개를 받아 나는 이번 회의를 통해 비영리 기관(Non-Profit Organization)을 운영하는 좋은 사례를 배우고 싶다고 짤막하게 말했다. FALM 회원들은 새로 엠블럼을 정하기로 하고 여러 개의 후보작을 놓고 투표를 하여 하나를 채택하였다.

회의가 끝나고나서는 웰컴 드링크 리셉션을 가졌다. 그린리프 교수님과 그 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단한 술안주와 함께 샴페인과 와인을 여러 잔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