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별렀던 터키 여행길에 나섰다. 금년 회갑을 맞은 아내도 주변 이야기를 듣고 터키 여행을 희망하였다.
우리 내외는 카파도키아에 가서 열기구를 타보고 이스탄불의 소피아 사원을 가본다는 정도의 계획만 갖고 모두투어의 7박9일(2015.5.16 ~ 5.24) 터키일주 패키지 투어에 참가하였다.
여행을 마친 소감은 아래의 일정에서 보듯이 여행지마다 칼라가 달라 마치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Rainbow) 여행을 한 것 같았다.
제1일 인천 공항 →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
제2일 이스탄불 → (항공편) → 앙카라 → 카파도키아 <터키 구국의 영웅 아타튀르크의 재발견>
제3일 카파도키아 (괴레메, 우치히사르, 파샤바 계곡) → 데린쿠유 → 코니아 <기암괴석과 열기구 비행>
제4일 코니아 → 시데, 아스펜도스 → 안탈리아 <지중해 연안의 그리스-로마 유적지>
제5일 안탈리아 → 파묵칼레 <성서 이야기 1>
제6일 파묵칼레 → 에페소 → 쿠사다시 <성서 이야기 2>
제7일 쿠사다시 → 이즈미르 → (항공편) → 이스탄불 <이스탄불의 매력 1>
제8일 이스탄불 → (기내 1박) <이스탄불의 매력 2>
제9일 인천 공항 도착
그런데 터키에 가서 보니 건국의 영웅 케말파샤 아타튀르크를 빼놓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 '아타튀르크'는 터키 국회가 1934년 국가의 수호자 무스타파 케말에게 '조국의 아버지'라는 뜻의 경칭을 헌정한 것임
한때 로마제국에 필적할 정도로 중동과 아프리카 북부를 지배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까지 위협하였던 오스만 투르크. 600년을 지속하였던 이슬람 제국이 20세기 들어 누란의 위기에 처했다.
오스만 투르크가 제1차 세계대전에 말려들어 전 영토를 대부분 상실하고 영국, 프랑스, 러시아, 그리스가 본토까지 분할통치하러 파병을 하였을 때 그는 국토를 수호하고 술탄 왕정을 폐지하였으며 민주공화국을 세워 터키를 근대화시킨 구국의 영웅이었다.
우리가 해외 출국하러 인천공항에 갈 때 더블데크인 영종대교의 위칸이나 아래칸을 택하는 것(아래 사진)과는 차원이 달랐다.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군사학교에 들어가 두각을 나타낸 무스타파는 전제군주정이냐 공화정이냐, 유럽 땅(이스탄불)을 수호할 것이냐 포기할 것이냐, 러시아에 맞서 독일.이태리와 연합할 것이냐 아니면 미국을 가까이할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서 항상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국가와 민족을 이끌었다.
군사지도자로서 그는 패배를 몰랐으며, 유럽식 근대화를 지향하고 여성의 지위향상을 꾀하였다. 회교도였음에도 세속주의를 택하였으며 대중교육과 문화생활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아르메니아인, 쿠르드족 등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운동을 일체 용납하지 않았다.
그가 내린 결단은 정말로 마호멧의 현신이라 할 정도로 국가적으로 유익하고 올바른 것이었다.
1930년대 국제정세가 예측불허일 때 그는 "독일의 히틀러는 정신이상자이고, 이태리의 무솔리니는 국민들이 등을 돌릴 것이니 절대로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말고 미국을 가까이 하라"고 일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터키가 국교도 맺지 않은 한국에 파병을 한 것도 미국 편을 들라는 그의 유지를 따랐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미국은 1952년 터키의 NATO 가입을 지지했다.)
아타튀르크는 그리스에 연안도서를 양보하는 대신 끝까지 유럽쪽에 붙어 있는 이스탄불을 고수하였으며, 터키어를 알파벳으로 표기하도록 하여 문맹률을 낮추고, 샤리아법을 부인하고 유럽식 세속법을 택하는 한편 여성의참정권을 인정하고 산업개발을 촉진하였다.
이스탄불에는 석양 무렵에 도착하였기에 일박만 하고 그 이튿날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하여 앙카라로 이동하였다. 행정수도인 앙카라 공항은 주말이라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고 구내에는 여기저기 터키인들이 최고로 여긴다는 삼성(터키에는 건국 당시 아타튀르크가 거점을 마련했던 Samsun이란 지명이 있음) 갤럭시 제품광고가 눈에 띄었다.
공항에 내려 우리 일행은 바로 아타튀르크의 영묘로 향하였다.
아타튀르크는 우리나라로 치면 전쟁터에서 외적을 물리치고 전승을 거둔 점에서는 이순신 같았고, 무능한 정권을 무너뜨린 점에서는 박정희 같았으며, 국가의 기틀을 잡고 나라말을 새로 제정한 점에서는 세종대왕 같았다. 게다가 잘 생긴 외모로는 안성기(오마 샤리프?) 같은 사람이었다.
정문에서 간단한 보안검색을 받고 사자(Lions)의 길을 거쳐 넓은 광장과 부속 전시관을 둔 영묘에 이르렀다.
일견 미국 워싱턴에 있는 링컨 기념관 같은 건물 안에 거대한 대리석이 놓여 있고(그의 무덤은 그 아래 있다고 함) 사람들이 그 앞에서 참배하거나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시 광장으로 내려와 국기 게양대를 거쳐 테라스로 가서 앙카라 시내를 바라본 다음 아타튀르크 기념관 안으로 들어갔다.
각 전시실마다 그의 사진과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부문에 걸쳐 그의 치적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가 치뤄야 했던 주요 전쟁은 사진과 기록화에 음향효과가 곁들여져 실감나게 보였다.
그러나 어디서도 그를 우상숭배하는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타튀르크가 대통령 재임 중 매력적인 여성과 결혼하였으나 3년 만에 이혼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그가 국정에 몰입하여 가정을 멀리하였다기보다 후사를 두게 되면 전제군주정에 익숙한 터키 국민들이 그의 가족을 지도자로 옹립하는 것을 경계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술과 담배에 탐닉하였던 그는 결국 간경화증으로 58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스탄불 동과 서의 교차로
아타튀르크 뜻대로 이뤄졌으면
터키는 이미 유럽국가.
터키에는 아직
오스만 시대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은지
아시아 땅에서 미적거리네.*
* 애르도안 현 대통령은 그의 관저와 권한을 술탄 못지 않게 키웠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길게 줄지어 서 있는 관광버스 중에서 우리가 탈 버스를 찾아야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는 태양이 사정없이 내리쬐었다. 갑자기 우리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단군 이래 제일 잘 살고 있다는 우리가 국내에서는 국가 지도자에게 경의를 표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외국에 나와서 우리와 별로 관련이 없는 외국의 지도자를 경배한다는 사실이 멋쩍게 느껴졌다.
앙카라 한국 공원을 찾아갔으나 마침 휴관일이어서 담장 밖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나와야 했다.
점심식사는 앙카라 역 구내식당에서 했는데 이상하게도 우리가 머무는 동안 기차가 도착하거나 떠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앙카라 시가지를 돌아다니는 택시가 서울의 택시와 똑같아 보이는 것도 신기했다.
그 다음 행선지는 소금호수였다.
소금물을 퍼다 말리면 식용 소금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소금 값이 싸다고 했다.
터키의 제 철 과일인 오렌지와 석류를 즉석에서 착즙하여 내주는 생쥬스가 아주 인기였다. 2-3개를 짜서 주는데 1컵에 2유로였다.
터키 정부가 EU 가입을 원하고 있는 탓인지 자동차 번호판도 EU 표준형이었으며, 외국의 관광객들도 미국 달러화나 유로화를 쓰는 데 별 불편이 없었다.
높은 산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평야지대를 지나 한참을 달려가니 저 멀리 구릉지대가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지질구조나 토양의 빛깔이 특이해 보였다. 드디어 카파도키아의 지경에 도달한 것이다.
여행사에서 이색 체험을 해보라고 예약해 둔 동굴 호텔에 투숙하였다. 비록 방은 비좁았지만 화장실에 욕조까지 갖춘 유스프(Yusuf)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우리 일행은 버스로 이동하여 지하 동굴에서 공연을 하는 터키의 민속춤을 구경하였다.
남자들이 무대에 나와 검정 겉옷을 벗어 던지고 치마 같은 흰 옷을 입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수백수천 번을 빙글빙글 도는 수피 춤(Sufi whirling dance)을 선보였다. 종교적 의식으로서 춤을 추는데 한참을 돌다 보면 무아지경 속에서 신과 교감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 순서로 벨리 댄스를 보여주었다. 조금 나이가 들어보이는 매력적인 무희는 마지막 순서로 관중 속에서 파트너를 찾아 구애를 하고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벨리 댄스로 연출하였다.
To be continued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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