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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 해] 자연과 어우러진 삶 (2)

Onepark 2015. 5. 2. 10:50

높은 성채 안 감방에서 홀로 회한에 잠긴 사나이(라이테나우 대주교)가 있었다.

그는 교황이 임명한 대주교이지만 잘츠부르크 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해 온 통치자였다. 그는 레지덴츠 궁전에서 거주하면서 정사를 돌보았고, 대성당에서는 미사를 집전하고 교무를 처리해왔다. 

바로 창 밖으로는 자기가 소중하게 여겼던 잘츠부르크 시가지와 아름다운 미라벨 정원이 보였다.

교회의 돔 지붕과 첨탑도 보였다.

그는 자신이 평생 이룩한 명성과 재산을 송두리째 뺏긴 것을 억울해 했을까?

아니면 그가 계율을 어기고 여러 여인을 사랑했던 것을 속죄하고 회개하였을까?

 

땅 속에서 캐낸 황금 같은 소금으로 쌓아올린 부와 명성은
전쟁과 같은 큰 물결 속에 사라져버릴 수 있지만,
아름다운 미라벨 정원과 궁전은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와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의 간절한 심정으로 남아 있으리.

Though the cash out of salt mine was swept away by war,
The magnificent Mirabell garden and "Sound of Music" scenes
Will never perish like the founder’s unconquerable soul.

 

호엔잘츠부르크 성채는 퍼니큘라를 타고 올라갔다. 

올라가 보니 주변의 파노라마 경치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저 멀리 백년설을 머리에 인 알프스 연봉이 보이고 가까운 집과 저택 어디에선가 <Sound of Music>의 주인공들이 도레미송 노래를 부르며 뛰어나올 것 같았다.

 

 

성채의 중정에 가보니 우물가에 보리수 나무가 서 있었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로 유명해진 뷜헬름 뮐러의 시 "보리수"는 시인이 이곳에 올라와 보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성채 안 감옥에는 할라인(Hallein) 소금광산을 소유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잘츠부르크 대주교가 바바리아 왕국과의 전쟁에 패하여 죽을 때까지 갇혀 있었다. 그는 대주교의 신분이었지만 살로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와 자녀들에게 미라벨 궁전과 정원을 만들어 주었다. 
 

 

일행들이 카페에 가고 쇼핑을 하는 사이 나 홀로 미라벨 정원에 다시 가 보았다. 아침보다 관광객 수가 늘었고 분수도 힘차게 물을 뿜고 있었다.

화창한 날씨에 미풍을 받으며 이곳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마치 별세계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정원에 와서 꿈과 사랑을 키우고 새로운 세상을 맞을 준비를 했을 것이다.

잘츠부르크 관광을 마치고 점심을 먹을 때 포도주 잔을 기울이며 내 나름대로 흥이 솟았다.

 

 

귀국하는 비행기를 탈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가기 전에 뮌헨을 둘러보고 그 교외에 있는 아우구스부르크에서 마지막 일박을 할 예정이었다. 

뮌헨은 처음 가보는데 도심에는 쌍탑의 마돈나 성당(Frauen Kirche)과 시 청사 등 석조건물이 즐비하였다.

사람들로 붐비면서도 아름다운 이 도시는 구석구석이 문화의 수준을 보여주는 예술적인 동상과 조형물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제한된 시간의 주마간산격 관광이었지만 뮌헨의 랜드마크인 제일 유명한 광장을 빼놓을 순 없었다.

이 광장의 주인공은 바이에른 왕국의 초대 왕인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Maximilian I. Joseph, 사진 속의 동상)이고, 그의 오른편에는 왕실이 거주지였던 레지덴츠 궁전(Residenz), 뒤에는 연극을 좋아했던 국왕을 위한 국립극장(Staatsschauspiel)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광장의 이름도 막스 요제프 광장(Max Joseph Platz)이라 불리고 있다.

광장 복판에 서서 주위를 바라보니 뜨내기 관광객인 나의 눈에도 바이에른 사람들의 문화적 전통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세계 정상급 교향악단도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뮌헨 필하모닉 등 3개나 되고 BMW, Siemens, Aliantz 같은 세계 굴지의 기업 본거지이기도 하다.

 

 

뮌헨은 베네딕트 수도사들이 처음 정착했기에 도시 이름이 '꼬마 수도사'(Little Monk)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지금도 도시의 문장이 어린 수도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어느 저축은행(Sparkasse)에서는 꼬마 수도사의 모습을 엠블럼으로 쓰고 있었다.

 

 

뮌헨의 도심은 세계의 어느 도시보다 녹지 공간이 많지만 넓고 고즈녁한 영국 정원(English Garden)으로도 유명하다.

루이저 린제의 <생의 한 가운데>를 떠올리며 지도를 보고 홀로 찾아간 영국정원 초입의 다리 밑에는 급류가 흘러 젊은이들이 많은 사람의 갈채를 받으면서 파도타기(surfing)를 즐기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사색하고 토론함으로써 이 지역에서 세계적인 학자와 과학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것이라 여겨졌다. 시내 어느 곳이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자전거도 사색과 토론의 장소를 찾아가는 데 편리할 것이다.

오래 전부터 자유도시(Free City)라 일컬어진 뮌헨에서 18세기 초에 프리메이슨의 일파인 광명파(Illuminati)가 결성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뮌헨 시내 관광을 불과 몇 시간만에 해치우고 오후 5시 국립극장 앞을 출발했다.

마침 일행 중에 결혼기념일 등 기념일을 맞은 커플이 두 쌍이나 되어 마지막 숙박을 하는 이날 저녁 아우구스부르크의 유명 레스토랑 <Cisa>(로마의 수호여신)에서 기념만찬을 갖기로 했다.

 

 

이윽고 이번 여행일정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다싱-아우구스부르크 베스트 웨스턴 호텔 창밖으로 열기구가 떠가고 옆 건물 지붕에는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었다. 어제 밤에는 몰랐는데 호텔의 로비 벽은 원색의 추상화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독일 남부의 고속도로 주변 들판에도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었다.

독일의 아우토반은 속도제한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데 버스 옆을 스쳐지나가는 승용차의 넘버판을 식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시속 180km가 넘는 것이라 한다.

아우토반 확장공사하는 곳을 보니 아스팔트가 아닌 콩크리트로 포장하고 있었다. 보수하는 구간은 아스콘을 적용한 것으로 보였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로텐부르크(Rothenburg ob der Tauber) 민속촌을 찾아갔다.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필요한 선물을 구입할 예정이었다.

마치 동화 속의 마을을 방문한 것 같았다. 1년 열두 달 크리스마스 용품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간간히 빗방울이 뿌렸지만 마을에서는 결혼식이 열리고 중세 민속의상을 한 가장행렬도 있어 구경거리가 적지 않았다.

 

 

순식간에 모든 일정을 마감하고 종착지인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였다.

여러 날 우리와 고락을 함께 한 메르세데츠-벤츠 버스 기사와도 작별을 했다. 지난 9일 동안 매일 아침 8시에 출발하고 저녁 8시 40분까지 하루 일정을 마감하는 등 속도위반 없이 성실하게 운전을 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루프트한자 카운터로 가서 출국 수속을 밟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