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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탐방] 중국 시안의 진시황 병마용 방문기

Onepark 2014. 12. 31. 19:38

錦上添花 (금상첨화) : 좋은 일이 겹쳐 일어남

 

학자들에게 해외 학술행사는 약방의 감초와 같다. 연구실과 강의실, 집을 오가는 생활에 생산적인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학자, 전문가들을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학술적인 토론을 하면서 학문의 지경을 넓힐 수 있다.

2014년 12월 중순 한국법제연구원(KLRI) L 연구원의 연락을 받고 중국 시안(西安) 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중국 서북정법대학(西北政法大學)에서 열리는 한-중 금융법 포럼의 주제에 걸맞는 논문을 써놓은 게 있기에 가능했다.

 

그리하여 12월 28일 일요일 아침 인천공항에서 시안으로 떠났다.

산시성(陝西省) 시안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주(周) 나라 때부터 수도였으며, 중원을 통일한 진(秦) 나라 시황제의 궁전(阿房宮)이 있었고, 한(漢), 수(隋), 당(唐) 나라 때에는 장안(長安), 낙양(洛陽)으로 불렸던 곳이다. 황하 유역의 비옥한 관중평원(關中平原)을 그리 높지 않은 여산(驪山)이 감싸고 있으며, 2014년 5월부터 삼성 반도체공장이 시안에서 가동을 개시하여 우리에게도 낯이 익다.

 

시안은 중국 서부개발의 관문이자 실크로드(도로 및 철도)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공항에서 병마용으로 가는 도로 변에도 산업에 필요한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와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아파트 공사장이 도처에서 눈에 띄었다.

 

溫故知新 (온고지신) :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배움

 

우리 일행은 호텔에 투숙하기 전에 시간을 아껴 진시황릉과 병마용을 보러가기로 했다.

월요일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술행사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말로만 듣던 병마용이 전시된 박물관은 마치 체육관을 방불케 했다.

진시황릉을 지키는 장병과 군마가 셀 수도 없이 땅에 묻혀 있었다.

진시황은 무력으로 중원을 통일하였기에 죽어서도 외적이 그의 자리를 침탈할까 두려워한 것일까?

그러나 그의 염원은 내전이 벌어지고 낙양성을 제일 먼저 처들어온 초 나라 항우에 의해 유린되고 말았다.

그렇기에 병마용 발굴 및 복원작업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었다.

박물관 곳곳에 설명자료와 함께 함부로 손대지 말라는 주의판이 눈에 띄었다.

 

夢回秦朝 (몽회진조) : 꿈이 옛 진 나라를 되살려 놓음

Dreams from the Qin Dynasty Come True.

 

과연 진(秦) 나라의 꿈은 이루어졌을까?

박물관 입구에는 밭을 갈다가 병마용을 처음 발견한 농부가 앉아서 관람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병마용의 위용에 놀라고 감탄하는 VIP들의 사진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미국 클린턴 대통령 가족사진도 있고, 우리나라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도 보였다.

병마용 모조품 앞에서 사진을 찍게 하고 10위안씩 받는 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병마용의 계급과 인상이 서로 달랐는데 대부분 신장이 180cm 나 되고 체격이 건장하여 한족이 아니라 진시황이 따로 고용한 외인부대가 아닌가 추정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아래 경례를 하는 모습의 병마용은 조금도 손상없이 발굴이 되어 복원작업의 표준이 되었다고 한다.

마부의 표정이나 말의 외형은 말꼬리조차도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병마용 박물관에서 나와 한국측 참석자 일행은 단체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경희대에서는 필자와 이창규 박사가 참가했다.

아래 사진 왼편부터 오용규 창원지법부장판사, 박해원 통역사, 주영환 부산고검부장검사, 한국법제연구원 이원 원장, 필자, 이창규 박사, 법제연구원의 박광동 박사와 이상모 박사.

 

主客顚倒 (주객전도) : 주인과 손님의 입장이 뒤바뀜

 

병마용의 위용에 압도된 탓인지 인근 진시황릉을 찾아갔을 때에는 별것 아닌 듯 싶었다.

얕으막한 언덕 아래 어마어마한 땅속 궁전(地宮)이 있을지 몰라도 사람들이 마구 밟고 올라다닌다고 했다.

옛날에는 중원을 평정한 황제였을지 몰라도 그의 주검을 묻은 땅은 얼마든지 산 사람이 밟고 다닐 수도 있는 것이다./p>

그러나 막상 가까이 가보니 능 위로 올라가는 길을 막아놓아 더 이상 오르지 못하게 하였다.

그 아래로 넗은 평야가 한 눈에 들어 왔다.

 

진시황릉에서 내려온 우리 일행은 인근 양귀비가 살았던 화청성(華淸城)으로 서둘러 갔다. 그러나 매표시간을 10분 넘겨 들어가는 데는 실패하고 성 주변을 산책하였다.

당 나라 전성기 때 낙양성은 국제적인 도시였고 문물이 성행하였다.

곳곳에 책을 읽고 악기를 연주하는 동상들이 즐비하였다.

 

형형색색 (形形色色) : 사물이 온갖 모양과 빛깔을 띄고 있음

 

일요일 오후 교통체증이 아주 심한 도심의 만두(饅頭, 餃子)로 유명한 음식점을 찾아갔다.

이 집은 온갖 모양의 만두를 무려 33종이나 만들어 판다고 했다. 우리는 그 절반만 시켰다.

시내 곳곳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야간조명과 함께 빛나고 있었다. 

 

刮目相對 (괄목상대) : 남의 학식이나 재주가 크게 는 것을 보고 인식을 새롭게 함

 

시안 도심의 제일 번화한 골목 풍경을 구경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불과 몇 시간 떨어진 곳에서 거대한 중국의 단면을 눈과 입으로 체험한 뒤라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창밖으로 새날이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