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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CNN 현장보도의 기린아 앤더슨 쿠퍼

Onepark 2007. 9. 7. 01:25

2007년 4월 버지니아텍에서 총기 참사가 벌어졌을 때 세계의 언론이 현장에서 보도를 하는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끈 리포터가 있었다. 그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쉴 새 없이 사건 전말을 보도하고 있었는데, 젊어 보이지만 흰머리를 하고 고개가 약간 삐딱한 채 말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가 바로 CNN의 간판 프로 "360°"의 진행자 앤더슨 쿠퍼(Anderson Cooper)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말리아 종족분쟁, 사라예보·보스니아 내전, 쓰나미가 덮친 스리랑카 해변, 이라크의 바그다드,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뉴올리안즈 등 큰 사건 현장마다 쫓아다니며 전세계의 시청자들을 감동시킨 발로 뛰는 저널리스트(globe-trotting reporter, 1997년 ABC 방송의 다이아나 왕세자비의 장례식 현장보도로 에미상을 수상함)였다.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던 그의 회고록(Dispatches from the Edge, 2006) 첫머리에는 가슴 아픈 개인사가 소개되어 있었다. 그의 어머니(철도왕 밴더빌트 가의 상속녀이고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인 Gloria Vanderbilt)는 상류층 인사들과의 교제가 많았는데(모친의 두 번째 남편은 유명한 지휘자 스토코프스키였음) 그가 11살 때 아버지가 심장 수술을 받다가 돌아가시고 그로부터 10년 후에는 형마저 과도한 스트레스를 못 이겨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무엇으로도 보충할 수 없는 상실감의 극복이 그의 삶의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떤 사람은 살아남고 어떤 사람은 죽는 현실(Why do some people thrive in situations that others can’t tolerate?)을 파헤쳐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내면의 고통을 외부 세계의 고통스러운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2007년 8월 초 여름 휴가로 TV에서 잠시 눈에 띄지 않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8월 말에는 카트리나 참사 2주년을 맞는 뉴올리언즈에서 쉴 새 없이 말을 하면서 주요 인사들을 인터뷰하는 그를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 서재에 있는 큰 지구의를 돌리면서 세계에는 많은 나라와 인종이 살고 있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예일대에서 저널리즘이 아닌 정치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하였는데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이야기꾼(storyteller)의 기질과 유머 감각으로 TV 저널리즘의 기린아가 되었다.

 

그러한 앤더슨 쿠퍼가 독서를 하는 데 힘이 드는 경미한 난독증(mild dyslexia)이 있다는 것은 전혀 뜻밖이었다. 그가 TV 토크쇼에 나와 스스로 밝힌 사실이지만 예일대를 나오고 청산유수로 말을 하는 그에게도 남 모르는 고민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뉴스 보도를 하는 데스크에는 기사원고가 아니라 노트북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40세가 되었는데도 아직 미혼인 것은 그가 '게이'이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 내가 보기에는 워낙 자유분방했던 모친에게 너무 데어 그런 것 같지만(그가 태어났을 때 작가인 그의 아버지와 네 번째 결혼을 한 모친은 마흔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돈 많고 인기 많은 사교계의 여왕이었음) 돈도 잘 벌고(CNN에서의 연봉이 4백만달러라고 함) 스마트하게 생긴 남자에 대한 선망과 시기심의 발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9월 4일 주목할 만한 인터뷰를 하였다. 그의 뉴욕 스튜디오에 디나 맥그리비(Dina McGreevey) 전 뉴저지 주지사 부인을 초청하여 그의 남편(Jim McGreevey)이 사임하던 날의 소감을 물어본 것이다. 아이다호주의 크레이그(Larry Craig) 상원의원이 미네아폴리스 공항 화장실에서 동성애자 같은 행동을 한 게 문제가 되어 가족들을 둘러세우고 의원직 사퇴의사를 밝힌 직후였다.


앤더슨 쿠퍼의 성적 정체성(sexual orientation)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기분이 묘했을 것 같다. 그는 섹스 스캔들로 낙마한 미국 정치인의 사례로서 2004년 자신이 게이임을 커밍아웃하고 사임한 짐 맥그리비스 전 뉴저지 주지사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런데 포르투갈 이민자인 왕년의 뉴저지주 퍼스트 레이디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악몽이 시작되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며 그 자리에 나란히 서야 했던 배우자로서의 고통과 번뇌(pain and anxiety)를 참담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빼어난 미모의 그녀는 미국 성공회(Episcopal Church) 신부가 되려는 별거 중인 짐 맥그리비스와 어린 딸의 양육권 문제를 놓고 다투고 있는 중이다. 앤더슨 쿠퍼의 모친 역시 어린 나이에 막대한 신탁재산의 관리와 양육권을 둘러싸고 외할머니와 고모할머니 사이에 벌어진 법정싸움의 중심에 있었던 것을 잘 알기에 인터뷰를 하는 앤더슨 쿠퍼의 심정도 착잡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