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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iness

[인물] 의지의 한국인 : WTCA 이희돈 박사

Onepark 2007. 6. 1. 11:43

2007년 5월 중순 LA 동양선교교회(OMC)에서 세계무역센터협회(WTCA) 수석부총재인 이희돈 박사(Dr. David Hee-Don Lee)의 간증집회가 열렸다. 한국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분이고 9.11 사태 때 기적적으로 살았다는 간증기를 전에 어디서 본 것 같아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5월 20일 OMC 설교 시간에 이 박사의 신앙간증(아래 사진)을 듣고 난 후 이 분이야말로 "의지의 한국인"의 표상이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 박사의 석세스 스토리는 이민 1세대로서 미국 주류사회(main stream)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신앙고백은 크리스천들에게 많은 도전을 안겨주는데 관련 기사동영상(Click here)을 통해 볼 수 있다.

 

현재 워싱턴시 성광교회의 장로로 시무하고 있는 이 박사는 직책상 1년의 절반 이상을 세계 곳곳으로 출장을 다닌다. 이 박사는 어느 곳에서나 새벽기도와 주일예배를 거르지 않는다고 하며, 2012년 4월 중순에는 서울 오륜교회에서 간증집회를 갖기도 했다.

 

이 박사는 아주 동안(童顔)이지만 1959년생으로 1982년 외국어대 서반아어학과를 졸업하고 석사과정까지 마친 후 스페인 유학 길에 올랐다. 5대째 기독신앙가정에서 자란 이 박사는 "조상의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며 달랑 편도 항공권만 사주신 부모님 덕분(?)에 처음부터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학력을 보면 매우 화려하다. 스페인 국립 마드리드 대학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영국 옥스퍼드 해리스 맨체스터 칼리지에서도 수학하였다. 미국 LA 풀러턴 소재 웨스턴 스테이트 유니버시티 로스쿨에서 JD 과정을 마쳤고, 경제학 교수로서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 San Diego)과 일본 교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박사의 간증을 들어보면 결정적인 시기에 그의 부인(이순성 여사)이 그의 인생진로를 바꿔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스페인에서 학위과정을 마치지도 않고 무작정 대서양을 건너 온 것이나(재정보증서도 없이 "내가 미국에 가야 할 10가지 이유서"만 제출하고 미국 영사로부터 3시간만에 미국 비자를 받았다고 한다), 교토대학 초빙교수를 마치고 미국에 돌아오자마자 멕시코 오지의 선교사역에 뛰어든 것도 부인 때문이었다.

 

* LA 동양선교교회에서 간증하는 WTC 수석부총재 이희돈 박사

 

그러나 '무역확대를 통한 지역개발'을 주제로 한 그의 논문이 WTC의 주목을 받아 1993년 WTC에 영입되고, 1997년에는 최연소 이사로 선임되었으며 2002년에는 Vice Chairman으로 직위가 수직상승하였다. 지금은 연임에 성공한 수석부총재로서 고령인 현 총재가 사임하면 총재직을 승계할 수 있는 유력한 지위에 있다고 한다.


이 박사는 WTCA 총재가 자기를 보고 "당신은 다 좋은데 능력의 일부밖에는 WTCA를 위해 쓰질 않아"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그가 주일날 교회 출석을 위해 사회활동도 자제하는 등 헌신적인 신앙생활(fully committed to God)을 하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자기의 능력(capacity)은 솔직히 Chairman의 30%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WTCA 사무실에 출근할 때마다 하나님께 "100% 인물의 20% 헌신을 받으시는 것보다 30% 짜리인 자신의 100% 헌신을 원하시지 않습니까?" 하고 기도를 올린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무역협회 회장은 부총리나 산자부장관 또는 재벌기업의 총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자리이기에 세계 92개 회원국에 320개 센터를 총괄하고 있는 그의 역량이 더욱 돋보인다.

 

그렇다면 이 박사의 성공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그는 유학에 떠날 때 "세계를 그의 품안에"(World in His Arms)라는 꿈과 비전을 품었다고 한다. 그는 복음전도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시간만 나면 유럽 전역으로 전도여행을 다녔다. 그 과정에서 자연히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영어, 불어, 이태리어를 마스터할 수 있었다(그는 새벽기도를 두 시간 이상 하는데 각 나라 말로 기도를 하다보면 2시간도 부족하다고 한다). 여러 나라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설득력과 협상력이 저절로 길러졌다.
처음 미국에 갈 때에는 비행기 표를 살 수가 없어 원양선원들이 타는 스판덱스라는 좌석도 없는 비행기를 얻어 탔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누구나 벌벌 떠는 문신 투성이의 왕고참에게 대담하게 전도를 하여 그의 회심을 가져오기도 했다.

 

두 번째 비법은 글로벌화 전략이다. 그는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스페인과 영국, 미국에서 각각 공부를 하였다. 학위논문의 주제는 "무역증진을 통한 지역개발과 세계평화"였다. 그도 자신의 주장이 나중에 WTC나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의 이론적 토대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이 박사는 미국으로 이주한 후 바로 미국 시민권을 받았지만, 태생이 한국인이기에 '서구를 가장 잘 이해하는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그가 옥스퍼드 대학의 리전트(이사회) 멤버가 된 것이나, 풀브라이트위원회, 노벨상위원회의 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것도 그의 글로벌한 배경이 큰 힘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그의 성공비결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신앙의 담대함과 신념에 찬 열정이라 하겠다. 그는 어떠한 자리에서도 신앙인으로서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있었다. 스스로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자인하고 하나님께 함께 해주시기를 간구하기에 대담함이 생긴다고 말했다.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성공하면 자신의 능력으로 성취한 것이라고 자부하겠지만, 자신은 워낙 부족한 사람이기에 자기가 이룩한 것은 모두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이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재정관은 너무나 뚜렷하다. 수입을 예상하고 미리 십일조를 드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빚을 지움으로써 "이래도 축복해 주지 않으시렵니까"하는 기도를 한다고 한다. 그는 마음속으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회가 있을 때면 1백만불, 2백만불씩 선교헌금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스스로는 선교 능력이 부족하지만 전세계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물질적으로 돕는 일은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9.11 아침 9시 경 WTC 빌딩에 충돌하는 항공기

 

이 박사는 이럴 때마다 그의 부인이 자신을 이끌었다고 고백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OMC에서의 마지막 집회시간에는 반려자가 "World in Her Arms"가 될 수 있어야 자신도 성공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내가 보기에도 이 박사보다 그의 부인이 참으로 놀라운 분이었다. 이 박사의 간증을 통해 들은 것만 해도 그와의 결혼을 피해 미국으로 먼저 떠나 온 것, 일본에서 초빙교수를 마치고 미국에 도착하자 곧바로 멕시코 오지 선교를 강권하다시피 한 것, LA에서 워싱턴으로 옮겨갈 때 집 판 돈을 선교헌금으로 바치자고 한 것 등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결과는 매번 전혀 예상치 못한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으로 이어졌다. 특히 9.11 사건 전날 밤 경련을 일으키며 밤새 잠을 못 이룬 것도, 영화 "Minority Report"에서 보듯이, 남편이 끔찍한 사고를 당해서는 아니되겠다는 예지(precognition)능력의 소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 박사의 사무실이 테러리스트의 항공기가 충돌한 바로 그 층에 있어 NYT는 당연히 이 박사를 사망자 명단에 올려놓았다). 간증 가운데 이 박사는 위의 사건들을 이야기하면서 결혼한 것을 후회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일종의 반어법(反語法)적인 애정고백처럼 들렸다.

 

나는 그의 간증을 처음 듣고 인터넷에서 간증녹음과 동영상을 여러 편 들어보았는데 그는 신앙간증을 하는 것만으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가 행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미국식 이름인 다윗이 물매돌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렸듯이, 실제로 바위가 깨지는 놀라운 광경을 우리 모두 그를 통하여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P.S.

애석하게도 2020년 9월 3일 이희돈 박사가 위암이 발병하여 향년 61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박사는 아시아계로는 최초로  세계무역센터협회(WTCA)의 수석 부총재와 총재를 연이어 역임했다.

이 박사의 신앙간증기를 여러 번 접했던 입장에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적인 WTCA 네트워크를 통해 신앙심 못지 않게 한국의 위상을 제고할 수 있었음에도 너무 일찍 하늘나라로 가신 고인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