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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3] 몬레알레 두오모 대성당, 에리체 마을의 성벽

Onepark 2025. 10. 25. 09:00

우리가 투숙한 메르큐어 호텔 앞길은 팔레르모 신도시의 유명 관광코스인지 관광객을 태운 마차가 아침부터 다녔다.

오늘도 8시 반에 버스가 출발하였는데 팔레르모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몬레알레에는 그만큼 볼 거리가 많다는 의미였다. 다만 하늘이 맑았다가도 수시로 비를 뿌리는 변덕스러운 날씨가 문제였다.

 

 

본래 몬레알레(Monreale)란 '왕의 산'이란 뜻으로 노르만 왕조가 시칠리아를 지배할 때 왕들의 사냥터로 쓰였다고 한다.

북아프리카 아랍 족을 내쫓고 시칠리아를 다스리던 굴리에모가 사냥을 하다가 나무 밑에서 깜박 잠이 들었는데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이곳에 보물이 묻혀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 나를 위한 성당을 지으라"고 말씀하셨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실제로 굴리에모 왕은 성모를 위한 두오모 성당을 지으면서 엄청난 분량의 황금으로 성당 벽면을 장식하였다. 모자이크로 표현한 벽화가 모두 성경 창세기와 예수의 생애를 주제로 한 것이어서 성당에 들어온 사람들은 2층 3층으로 그려진 총 130장면의 벽화를 보면서 성경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 두오모 성당이 건설된 것이 13세기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이미 팔레르모 대성당의 호화로운 외관과 내부를 보고 온 터라 몬레알레 두오모 성당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입구 회랑에는 굴리에모 왕이 성당을 건축하여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는 모습을 조각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성당 건축에 관한 전설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외래(外來)세력인 노르만 왕조가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신적 정통성을 인정 받고 인근 팔레르모의 주교좌와 경쟁을 벌일 때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굴리에모 왕이 애쓴 흔적으로 비쳐졌다. 또한 그 과정에서 귀족과 주문들로부터 금붙이와 재산의 헌납을 압박했을 터이니 부가 군주에게 이전되는 효과도 거두었으리라.

 

 

자신이 개신교 신자임을 밝힌 김경철 가이드는 벽화의 내용을 설명하자면 종교적인 의미가 포함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갖거나 무교인 분은 예술적인 측면만 보아도 된다고 양해를 구했다.

천지 창조와 아담과 하와의 등장, 선악과와 뱀(사탄)의 유혹, 에덴 동산에서의 추방, 카인과 아벨,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죽 이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여러 일화, 빌라도 재판정과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도 절절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 성경 창세기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
* 위 모자이크 화는 롯의 가족이 소돔성을 탈출할 때 뒤돌아보는 그의 아내, 아래는 몬레알레의 수호성인 성 카스트렌시스가 풍랑을 일이키는 사탄을 저지하고 배와 선원들을 구하는 모습

 

성당 밖으로 나와보니 비가 제법 세차게 뿌리고 있었다. 우리는 빗속에서 몬레알레 마을 골목길을 누비면서 시내를 구경하였다.

다행히 버스를 탈 때쯤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서치라이트 같은 햇살이 비치기도 했다. 마치 사냥을 하던 굴리에모 왕이 계시를 받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김경철 가이드는 여기까지 온 이상 에리체(Erice) 마을을 보지 않을 수 없다면서 오전에 비가 와서 산정에 올라가는 푸니비오(케이블카)가 운행을 안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언제 비가 왔냐 싶게 날이 화창하게 개어 푸니비오를 타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우리 일행은 4~6명씩 짝을 이뤄 곤돌라를 타고 10여 분만에 산정에 오를 수 있었다. 뜻밖에도 높은 산 위에 제법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전에 여행했던 니스 부근의 에제(Eze) 마을이 연상되었다.

 

 

우리 일행은 전망이 좋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들 이집의 파스타가 제일 우리 입맛에 맞았다고 말했다. 메인 요리는 얇게 슬라이스하여 양념과 함께 익힌 생선 요리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할까 마을 외곽으로 나가니 성벽 위 전망대에서 해변과 평야지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 오기 전엔 일기불순하여 기대하지 않았으나 이렇게 온통 푸른 하늘과 바다를 보니 가슴이 툭 트이는 것 같았다.

 

 

 

맑게 개인 하늘아래 저 멀리 바다를 배경으로 툭 트린 경관에 다들 할 말을 잊었다. 그리고선 이내 사방을 둘러보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갑자기 하늘에서 윙윙 거리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어느 사람이 드론을 날려 산정과 하늘에서 입체적인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산 위에는 성채와 함께 너른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한쪽에는 전몰자 위령비가 세워져 있었다. 말하자면 이곳은 에리체 마을을 외적으로부터 지키는 파수대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안고 푸니비오를 타고 내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행선지인 마르살라 와이너리에 예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살라 지역에 있는 와이너리에서는 DonnaFugata (도망친 여인)이라는 레이블로 포도주를 블렌딩하여 판매하고 있었다.[1]

와이너리 측에서는 1987년 가족기업으로 포도주의 제조 판매를 시작했다면서 최고급 포도주를 숙성시키는 창고를 보여주고 여러 가격대의 4종류 포도주를 그에 맞는 안주와 함께 시음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원하는 사람은 견학 코스가 끝난 후 매점에서 포도주를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하였다. 

 

 

와이너리 견학을 마친 우리 일행은 5시 30분 예정보다 조금 이르게 시워터 호텔(Seawater Hotel)에 투숙했다.

이름에 바닷물이 들어가서인지 호텔 구내에 풀장도 운영하고 있었으나 수영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와이파이도 이용할 수 있었는데 비번이 987654321이어서 이채로웠다.

비가 왔다 개었다, 산 위에 올라 툭 트인 경치를 구경하다 감미로운 포도주에 취했다가 이래저래 오늘은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

 

Note

1] DonnaFugata는 이탈리아어로 '도망친 여인' 또는 '피난처의 여인'을 뜻하는데 19세기 나폴리 왕국의 마리아 카롤리나 왕비를 가리킨다. 1798년 나폴레옹의 군대가 이탈리아를 침공하자 그녀가 시칠리아로 피난한 역사적 사건에서 유래했다. 1987년 마르살라에 가족기업으로 와이너리를 세울 때 비록 이곳에 포도원은 없지만 에트나 등 여러 곳에서 재배한 포도를 가지고 포도주를 만들어 블렌딩을 할 때 적합한 브랜드 이름이라 판단했다고 한다.

DonnaFugata는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와인 브랜드가 되었으며  이탈리아 통일시기에 시칠리아 귀족 가문이 몰락하는 스토리를 다룬 표범(Il Gattopardo)〉이라는 소설에도 등장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DonnaFugata 레이블이 붙은 포도주를 마시면서 이탈리아어의 역사와 문학을 논할 수 있게 해놓은 것이다.

 

 

 

⇒ 시칠리아 4: 아그리젠토 신전의 계곡, 라구사 대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