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역대급 가장 긴 하루를 보낸 우리 일행은 아침 일찍 아침식사를 마치고 8시 반 버스에 올랐다.
아침까지만 해도 먹구름으로 덮였던 하늘은 점차 개이면서 해가 비치기 시작했다.



버스가 해안도로를 달리는 동안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비록 팔레르모가 시칠리아 제1의 도시이긴 하지만 차량통행이나 물동량이 많지 않아보이는데 고가 도로를 건설하고 터널을 굴착하여 유료 고속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만일 프로젝트 금융(PF) 민자사업으로 해안고속도로를 건설했다면 통행료를 받아서는 공사비를 충당하기 어려워 보였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예비적 타당성조사를 먼저 받아야 하지 않았을까!
쪽빛 지중해를 바라보며 해안도로를 달릴 때 저 끝으로 체팔루(Cefalu)가 자리잡은 산이 보였다.




체팔루까지 불과 몇 시간 차로 달리는 사이에 다시 여름이 온 듯 싶었다. 관광버스의 에어컨이 쉬지 않고 가동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해안도로를 따라 구시가지로 접어들자 마을의 중앙 고지대에 두오모 성당이 우뚝 서 있었다.
본래 회랑이 있는 직사각형의 건물을 로마에서 바실리카(Basilica)라고 불렀는데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거래하는 장터가 되었다가 일이 있으면 법정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313년 기독교가 공인(公認)되면서 바실리카는 예배당으로 사용되었고 제단이 있는 앞쪽에 예수 구속(救贖)의 상징인 십자가를 높이 걸어놓기 위해 그 천정은 훨씬 높아야 했다. 그러므로 교회의 앞쪽 지붕을 돔(dome)형으로 건설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교회 건물이 웅장해졌고 그 지역의 가장 큰 성당을 '두오모'(Duomo)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편 해당교구의 주교좌가 자리잡은 성당은 '카테드랄레'(Cattedrale)라고 불렀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첫 머리에 나오는 "The Age of Cathedral"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세에 로마 가톨릭의 교세가 확장되고 주교좌 중심으로 권위와 재물이 집중되면서 웅장한 성당 건물이 속속 건축되었던 것이다.
체팔루에서도 도시의 중앙 고지대에 두오모 성당이 서 있었다.




체팔루 두오모에서는 앞쪽에서 미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관광객들이 연신 드나들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했다.
두오모 앞 광장에는 계단에 앉아 일광욕을 하는 사람, 오픈 카페에 앉아 커피와 음료를 마시는 사람, 우리처럼 광장 주변의 골목길을 바삐 오가면서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가이드는 마을의 공동 빨래터도 있다고 했지만 나는 어서〈시네마 천국〉에 나오는 현장을 가보고 싶었다.
점심식사 장소가 빨래터 부근의 파스타집이었다. 우리는 마당에 차려놓은 테이블에 모여앉아 나비넥타이처럼 생긴 파스타와 생선구이, 그리고 단맛이 강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시네마 천국〉촬영현장으로 가이드를 따라서 갔다.






아뿔싸! 기대했던 로케이션 장소는 전혀 뜻밖이었다.
탈의실이나 샤워실도 보이지 않는데 넓지 않은 해변 모래밭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도 물속을 걸어다닐 뿐이었다. 물속에서 헤엄을 치는 것은 작은 물고기들 뿐이었다. 바닷물이 아주 맑아 물속이 들여다 보였다.
해변에는 우리처럼 빈손으로 온 사람들에게 돗자리를 펼쳐놓고 파는 행상들이 많았다. 오히려 영화의 로케 현장을 보러 온 사람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그들이 자기들만의 영화를 찍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으기 실망한 채로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Palermo)로 이동했다.
교외의 아파트촌을 지나 도심으로 진입했는데 서울 같이 외관이 번듯한 것은 아니고 오래된 아파트가 대부분이었다.
우리 일행은 시칠리아의 문을 지나 노르만 궁정이 있는 광장으로 갔다. 처음엔 이슬람 지배자들이 통치기구의 건물을 지었다가 1072년 시칠리아를 점령한 노르만 족이 이곳에 왕궁을 건설했다. 근대식 오피스 건물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시칠리아 의회가 사용하고 있다. 이곳 광장은 돌이 아닌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었고 광장 앞에는 키큰 나무들이 우거진 공원이 있었다.





우리 일행은 팔라멘트 정원을 거쳐 팔레르모 대성당(Cattedrale)으로 갔다. 여러 민족이 팔레르모를 지배했던 까닭에 본래 기독교 뱍해 당시 순교했던 이들을 기려 세워진 교회가 이슬람 교도들이 점령했을 때는 모스크로 개조되었다. 노르만 족이 시칠리아를 차지한 후에는 미나렛이 종탑으로 교체되었고,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비잔틴, 고딕, 바로크 양식으로 신ㆍ증축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아랍-노르만-고딕-신고전주의 양식이 혼재(混在)되어 있다는 점에서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 일행은 가이드를 따라서 도심 상가를 걸어갔다. 교차로 광장의 4면에 각기 상징적인 조각상과 건축양식을 선보이는 콰트로 간티(Quattro Canti)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팔레르모의 번화가인 만큼 자유시간을 갖기 위함이었다.
이곳 재래시장도 볼 만하다고 해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불상사에 대비해 주변을 경계하며 걸었다. 팬데믹 이후 경제사정이 어려워짐에 따라 서민들에게는 이러한 재래시장이 삶의 터전이 되고 있다 한다.
마침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으므로 베르디 광장 쪽 길가 카페에 앉아 시칠리아의 명물 주먹밥인 아란치니를 먹으며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베르디 광장에 있는 마시모 극장의 가이디드 투어가 5시로 예정되어 있어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이탈리아 3대 오페라 극장 중의 하나라는 마시모 극장은 규모가 웅장했다. 영화에서 보았던 프라이빗 부스가 여러 층에 줄지어 있었고 일반 객석까지 합쳐서 1300석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어디선가 곧 있을 연주의 리허설 악기 소리가 들렸다.
2층 로열석에도 들어가 보고 그 옆 귀빈접견실에도 가 보았다. 이곳 원형홀은 음향 설계가 잘 되어 있어서 그 센터에서 노래를 하면 미니 리사이틀이 된다고 했다. 현지 가이드가 "You Raise Me Up"을 한 곡조 뽑았다. 정말로 고운 소리가 홀 가득히 퍼졌다.











우리는 극장 옆 문을 나와 정문쪽으로 돌아서 가니 영화 〈대부 III〉(1990)에서 알 마치노의 딸이 아버지 대신 반대파의 총격에 쓰러진 유명한 계단이 나왔다. 출입을 통제하였지만 방금 극장 투어를 했다고 말하고 각자 계단 앞에서 인생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저녁 베르디 광장에서는 무슨 자동차 관련 큰 행사가 있는지 난리법석이었다. 광장 주변의 도로가 통제되는 바람에 거리가 몹시 혼잡했고 우리는 저녁식사 예약이 되어 있는 레스토랑으로 걸어서 가야 했다.
식사 메뉴는 생선초밥과 라면이었다. 그러나 초밥에 딸려 나오는 생강도 낙교도 없이 일본 음식 흉내만 낸 것이어서 초밥에는 손도 대지 않는 분도 있었다. 나는 1인당 10피스씩 나오는 것 이상으로 초밥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에는 신도시에 위치한 머큐어 호텔(Merecure Hotel)로 가서 여장을 풀었다.
⇒ 시칠리아 3: 몬레알레 두오모 대성당, 에르체 마을의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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