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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휴양지 고성에서 마주한 현실과 통일의 무게

Onepark 2025. 8. 2. 09:15

여름 휴가철을 맞아 강원도에서 피서를 즐겼다. 

은퇴자에게는 사철이 모두 방학이고 휴가인 셈이다. 하지만 손자가 학원을 쉬는 기간에 아들네 식구와 함께 편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어 이 시기를 택한 것이다.

초등생인 손자를 염두에 두고 조각미술관과 통일전망대, DMZ박물관이 있는 고성으로 갔다.

마침 고성에서 일박한 리조트 호텔은 골프장을 끼고 있었다.

어제는 종일 구름에 가리워있던 설악산과 울산바위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 발코니로 나갔다.

동트기 전이지만 구름이 걷히고 울산바위가 똑똑히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골프장 1번홀에서 라운딩을 시작하는 골퍼들이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였다.

 

* 고성 델피노 소노캄 골프 CC 출발선에서 바라다 보이는 울산바위

 

불현듯 오래 전 추억이 떠올랐다. 나도 한때 골프에 아주 열심이었던 적이 있었다.

뉴욕에서 3년 은행 주재원 생활을 했고 겨울에도 골프를 칠 수 있는 댈러스로 유학을 갔으니까 골프를 잘 할 수 있는 여건은 충분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개인적인 사정으로 골프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시력이 나빠서 공이 날아간 것을 볼 수 없으니 공을 찾으려면 일행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한창 골프에 열이 오를 때쯤엔 허리를 다쳐 병원에 열흘 이상 입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댈러스에서는 로스쿨에 유학 가서 골프를 칠 시간을 내고 플레이메이트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고성 민통선 안에 있는 통일전망대로 가면서 골프 운동과 한반도 통일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여러 가지로 비슷한 점,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재정적으로 이를 원치 않고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 종종 거금을 들여 골프채/정책수단을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

- 사전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 반드시 현장에서, 또 이론적으로 조언을 해주는 전문가들을 두어야 한다.

- 골프공 칠 때 헤드업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통일정책에서도 사심(私心)이 개입하면 절대 안된다. 

 

- 임팩트/정책발표 순간도 중요하지만 팔로쓰루/사후관리가 좋아야 정책효과가 제대로(후크나 슬라이스 없이) 날 수 있다.

- 도중에 헤매는 것(시행착오)은 어쩔 수 없더라도 온그린 후 한두 번에 홀컵에 넣는 것, 즉 주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같이 하는 사람들이 뜻이 통하고 협조적이어야 한다. 일방적인 플레이는 파탄이 나기 쉽다.

- 상대방이 미온적일 때는 소통/연락을 자주하고 선물도 안겨주며 필요하면 제3자를 통해 자극을 주어야 한다. 

- 잘만하면 역사와 기록에 남고, 자신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 고성 통일전망대에 가려면 민통선을 통과해야 하므로 방문자 사전신고를 요한다.
* D자 모양인 통일전망대 조감도. 포스터에서는 뒷편의 금강산이 약간 과장되게 묘사되어 있다.
* 통일전망대 4층에서 바라다 보이는 동해안과 해금강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북한 땅은 일견 평온해보였으나 지금은 금강산 육로 관광길과 동해선 철도가 막혀 있는 상태이다. 북한군이 최전방 초소를 무장 요새화했다고 하니  현재 DMZ 일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여주고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듯한 조형물이 고성의 유명한 조각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바위를 뜻하는 강원도 방언 '바우'와 뮤지엄의 '지움'을 따서 만든 바우지움 조각미술관에는 거친 돌을 재료로 쓴 콘크리트 벽면과 자갈길이 컨셉으로 되어 있다. 보는 사람이 감상하고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두 전시홀을 콘크리트 벽이 가로막고 있는데 중간의 돌밭에는 DMZ 박물관에서 보았던 지뢰를 상징하는 듯한 쇠구슬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미술관 밖 야외 전시장으로 나가보니 몇 년 전 고성 산불 피해를 입은 큰 나무가 까맣게 그을린 채로 서 있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본 줄기 하나는 불에 타 고사(枯死)했지만 다른 하나는 극적으로 회생(回生)을 하여 푸른 나뭇잎을 달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 나무 본연의 생명력에 맡겨놓으면 이렇게 살아날 수도 있구나!

사람이 손대지 않아도 놀라운 자연치유력에 의해 새 잎이 돋는 것이었다.  [1]

 

그렇다면 현재 빈사상태에 빠진 한반도 통일 기운은 어떻게 될까?

북측은 핵무장을 하고 수백 문의 장사포를 전진 배치하여 수도권을 겨냥하고 있다. 

남측도 미국의 전략자산을 수시로 전개하는 외에 자체 방위수단을 대폭 증강하는 모양새다.

남한에서는 새 정부 들어 왕년의 햇빛 정책(Sunshine Policy)을 되살리려하는 움직임도 있다.

 

* 김경승, 춘몽 (1961)

 

가만 생각해보니 바우지움 한 전시실에 놓인 여성의 조각상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새터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북한의 핵무장과 장기간 계속된 UN 대북 제재로 인해 대다수의 주민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 한다. 한동안 여러 곳에 생겨난 장마당을 통해 식량을 조달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북한 당국이 서방 정보의 유입, 자본주의 사상의 오염을 막기 위해 자생적인 장마당마저 폐쇄했다는 말도 들린다.

 

독일 통일의 사례를 보더라도 한반도 통일은 외부 정보유입의 활성화,  주민들의 밑으로부터의(Bottom-up)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하다. 독일의 경우 동독 당국자의 실언으로 동독 주민의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한밤중에 도둑이 들듯이 어느 순간 통일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 냉전시대인 1950년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이 일어났고, 1960-70년대에는 남북 무력대결의 상황이 벌어졌다. 1990년대 동유럽 여러 나라의 개혁 개방이 가속화되면서 남북 대화와 화해 무드가 조성되었다.  2000년 이후 햇볕정책에 힘입어 남북교류협력이 활성화되는 듯했으나 2010년대 북한의 핵실험과 핵무장으로 다시 남북대치 상태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와 같이 남북 위정자들이 이기적인 오판과 시행착오를 거듭함에 따라 통일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만약에 소셜미디어에서 유포되는 백두산 화산폭발 같은 북한의 변고 사태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럴 경우에는 마치 갖난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것 같은 모성애(母性愛)의 심정으로 남북한간의 소통과 화합을 도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2]

그리함으로써, 통일전망대 벽에 걸려 있는 일몰(Sunset) 사진처럼, 남북 주민들이 서로 손을 잡고 해변가 바위 위에 올라 장엄한 역사적 순간을 맞게 되리라. 

 

* 고성군, 공현진 항의 일몰

Note

1] 이번 휴가 기간에 읽은 헤르만 헤세의 수필 〈나무들〉 (폴커 미헬스 엮음, 안인희 옮김, 창비 2021)에서 읽은 다음 구절에 크게 공감이 갔다. 전문은 Brunch 블로그 참조.

 

나무들의 우듬지에서는 세계가 속삭이고 뿌리는 무한성이 들어가 있다. 다만 그들은 거기 빠져들어 자신을 잃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오로지 한 가지만을 추구한다. 자기 안에 깃든 본연의 법칙을 실현하는 일, 자신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 자신을 표현하는 일에만 힘쓴다. 강하고 아름다운 나무보다 더 거룩하고 모범이 되는 것은 없다.  <중 략>

한 그루 나무는 말한다. 나의 힘은 믿음이다. 나는 조상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해마다 내게서 생겨나는 수천의 자식들에 관해서도 전혀 모른다. 나는 씨앗의 비밀을 끝까지 살아낼 뿐 다른 것은 내 걱정이 아니다. 나는 신이 내 안에 깃들어 있음을 믿는다. 내 의무가 거룩한 것임을 믿는다. 나는 이런 믿음으로 산다.

 

2] 통일전망대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는 동안 귓가에는 막스 부르흐의 Kol Nidrei의 주선율이 맴돌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울려퍼졌던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환희의 송가'와는 달리 '속죄의 날'에 기도하는 심정이 되었다.